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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호 2026년 7월] 문화 동아리탐방

“쓰다 보면 생각이 비워집니다”

중앙동아리 서예회
“쓰다 보면 생각이 비워집니다”
 
중앙동아리 서예회

서실에서 글씨 쓰기를 연습 중인 서예회 부원들. 방학 중에도 나와서 서예를 공부한다. 사진=서울대 서예회
 
학생회관(63동) 3층, 춤을 맞춰 보는 학생들로 왁자지껄한 층계참을 지나 복도를 걷다 보면 307호 앞에 난초 화분이 하나 보인다. ‘글씨를 쓰는 곳’이라는 뜻에서 ‘서실’이라 불리는 이곳, 문을 여니 정재헌 부회장(생명과학부 23학번)과 김유진 총무(역사학부 25학번)가 초록색 부직포를 깐 서예용 책상에서 일어나며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넨다. 
 
100번째 정기 전시회를 열기까지
동숭동 교사 시절인 1964년 창립된 서예회는 이듬해 첫 정기 전시회를 열었다. 정재헌 부회장은 “마침 제100회 정기 전시회를 지난달 막 마친 참”이라며 도록을 내밀었다. 지금까지 정기 전시회는 문화관(73동) 전시실에서 여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문화관이 작년 5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사용이 어려워지자, 서울대입구역 인근 소규모 갤러리 등지를 전전하다가 이번 100회 전시에는 관악문화원 관악아트홀을 선택했다. “정문 근처인 데다 교통이 편리해 접근성이 좋았어요. 지금까지 전시한 학외 공간 중 여러모로 최고였어요. 덕분에 시험 기간이 한창인데도 7개 대학 서예 동아리와 많은 졸업생 선배께서 찾아와 주셨습니다. 조명과 와이어 설치에도 전시장 담당자분께 많은 도움을 받았고요.” 정재헌 부회장의 설명이다.

100회를 맞아 일본 도쿄대 ‘동경대학 서도연구회’에서도 특별한 손님 두 명이 찾아왔다. 지난 5월 4일, 서예회 임원진이 먼저 이메일을 보내 교류를 제안했고 도쿄대 측이 여기에 응해 불과 한 달 만에 서도연구회 부회장과 총무가 직접 전시를 찾은 것. 김유진 총무는 “이어진 회식 자리에는 서예회 임원진 말고도 일본어에 능통한 부원 두 명이 동석했다”며 “대화가 거의 일본어로 오가다 보니 내가 많이 알아듣지 못한 점만은 아쉬웠다”고 웃었다. 

“각자의 동아리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또 서도연구회는 서예회와 달리 다른 대학 학생도 종종 참여한다는 서로 다른 동아리 문화를 공유했어요. 같은 붓글씨를 두고 한국은 서예, 일본은 서도, 중국은 서법이라 부른다는 사실도 알게 됐네요.”
 
묵향의 멋을 아는 20대
서실에서 붓을 잡은 이들이 모인 경위도 각양각색이다. 어려서부터 한자를 공부하며 서예 학원에 다녔다는 정재헌 부회장은 2학년이 돼서야 ‘학교에 이런 동아리가 있었나’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서예회에 찾아왔다. 반면 김유진 총무는 수험생 시절 유튜브에서 서예회 출신 유명 강사 이지영 씨가 서실에서 후배와 붓글씨를 쓰는 모습을 봤고, 그렇게 ‘목표하는 서울대에 입학하면 서예회에 입부하리라’ 다짐했다고. 

인터뷰 도중 사진 촬영에 응하는 정재헌 부회장과 김유진 총무

그런가 하면 전통문화에 대한 애착의 연장으로 서예를 바라보는 마음만은 이들의 공통점이다. 한 번은 동아리 소개제에서 서예회에 큰 관심을 보이던 미국인 교환학생이 “한국 계좌가 없다”며 이튿날 부스에 찾아와 회비를 전달하겠다고 하는 일도 있었다. 공강 시간을 틈타 학생에게 현금을 받고 공금 계좌에 입금하는 것은 김유진 총무의 일이었다. 한국계 미국인이던 그 학생은 이후 “한국 전통문화와 밀접한 서예를 하고 싶다”며 MT와 정기 연습에도 종종 출석했다. 

글씨를 쓸 때는 극도의 몰입이 예사다. 김유진 총무는 지난 정기 전시회 직전 밥도 거른 채 8시간을 내리썼고, 정재헌 부회장은 작년 600여 자짜리 작품 한 장을 쓰는 데 12시간을 쏟았다. 한 번 흐름이 끊기면 다시 궤도에 오르기가 힘드니 쉬더라도 아주 잠시만 쉰다는 것이다. 

“뜻대로 글씨가 써지는 날은 거의 없죠. 그래도 일단 쓰다 보면 생각이 비워지는 게 서예의 매력이에요. 그냥 책상에 앉아서 한 번 글씨를 쓰면 몇 시간이고 쓰니까. 제가 한자와 한문에 능통해야 하는 동양사학 전공이다 보니, 무작정 인쇄된 책으로 배우기보다는 직접 써보면서 한문에 가까워지는 데서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요.”

한자리에 모인 부원들의 화두는 자연스레 ‘언어’로 이어진다. 지난 MT에서는 숙소 한편에서 한 무리의 부원들이 한문 밖에도 불어, 아랍어 그리고 만주어, 티베트어 등 소수어에 대한 취향을 밤새 나누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김유진 총무는 “서예회가 문자와 언어에서 비롯한 취미를 공유하는 곳이다 보니 인접 분야에서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고 말했다. 붓을 잡고 획을 고르는 시간이 이곳에서는 비워진 생각의 자리에 각자의 언어를 들여놓는 일이 되는 셈이다. 송민진 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