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0호 2026년 7월] 뉴스 본회소식
‘인왕제색도’의 그 산 둘레길 동문 함께 걸었다
총동창회 여름 등산·트레킹 황학정 관람·퉁소 연주도
‘인왕제색도’의 그 산 둘레길 동문 함께 걸었다

6월 18일 인왕산에서 열린 동문 하계 트레킹에 30여 동문이 함께했다.
총동창회 여름 등산·트레킹
황학정 관람·퉁소 연주도
6월 18일 인왕산둘레길에서 본회가 주최한 등산대회가 열렸다. 초여름의 열기가 서서히 짙어지는 가운데, 동문들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숲길을 함께 걸으며 건강과 친목을 다졌다.
이날 행사에는 이동호(교육59) 동문부터 이일화(교육00) 동문까지 30여 명의 동문이 함께했다. 이날의 등반 코스는 경복궁역을 출발해 사직단과 단군성전, 황학정, 수성동계곡, 사직동으로 이어지는 인왕산둘레길으로, 약 3시간 동안 이어진 산행 뒤에는 통인시장에서 오찬을 함께하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왕산둘레길은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잠시 걸음을 들이면 도시의 소음이 옅어지는 길이다. 경복궁과 사직단, 오래된 골목과 숲길이 가까이 이어지고, 곳곳에는 조선의 역사와 서울의 시간이 겹겹이 남아 있다.
참가자들은 사직단과 단군성전을 차례로 둘러본 뒤 황학정으로 향했다. 고종황제의 어명으로 세워진 황학정은 우리 전통 활쏘기 문화를 이어온 공간이다. 참가자들은 이곳에 자리한 국궁전시관을 찾아 성봉주 대장의 설명을 들으며 활의 역사와 국궁 문화에 대한 이해를 더했다. 이어 활터에서 실제로 활을 쏘는 이들의 모습도 지켜봤다. 팽팽히 당겨진 시위와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은 산행 중 만난 또 하나의 볼거리였다.
인왕산은 겸재 정선의 대표작 ‘인왕제색도’에 담긴 산이기도 하다. 비가 갠 뒤 짙은 먹빛으로 우뚝 선 산세를 그린 그 그림처럼, 이날 동문들이 바라본 인왕산도 서울 한복판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수백 년 전 화가가 바라봤던 산과 오늘의 동문들이 함께 걸으며 마주한 산은 같은 풍경이면서도, 각자의 시간 속에서 다른 표정으로 다가왔다. 고층 건물과 도로가 가까이 있는 오늘의 서울에서도 인왕산은 여전히 오래된 산의 기품을 간직하고 있었다.
날은 다소 더웠다. 오르내리는 길마다 이마에는 땀이 맺혔고, 참가자들은 그늘을 찾아 잠시 숨을 고르며 음식을 나누기도 했다. 그래도 산길 곳곳에는 바람이 불었고, 나무들은 초여름의 볕을 부드럽게 걸러냈다. 이준웅(행대원73) 동문은 “오늘 날씨도 좋고 계곡도 좋아 즐거운 하루였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날 처음 등산·트레킹 모임에 나온 김명진(조경78) 동문도 “땀은 많이 흘렸지만 인왕산을 잘 걷고, 선후배님들을 만나 좋았다”며 웃었다.
다만 이름만으로도 시원한 물길을 떠올리게 하는 수성동계곡에는 아쉽게도 물이 흐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동문들은 마른 계곡의 돌길과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걸음을 늦췄다. 오히려 비어 있는 계곡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표정을 느끼게 했다. 동문들은 아쉬움을 나누면서도 인왕산이 품은 고즈넉한 풍경을 천천히 눈에 담았다.
산길 위에서는 대화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삼삼오오 걸음을 맞추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오랜만에 만난 선후배들은 금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김명진 동문은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남아공 드라켄즈버그 등 해외 산행 경험을 들려줬고, 누군가는 젊은 시절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씩 산을 탔던 추억을 나눴다. 산을 좋아해 오래 걸어온 이들의 이야기는 무용담처럼 웃음을 자아냈다.
정기인(영문60) 동문은 산행 내내 씩씩한 걸음으로 후배들의 감탄을 받았다. 월남전에 해병대 소대장으로 참전했던 그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한때 100m도 걷기 어려울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날 그는 인왕산둘레길을 끝까지 함께 걸었다. 그는 “지금 이렇게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이런 모임이 있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나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날 산행의 백미는 하산길에 찾아왔다. 김찬근(철학69) 동문이 퉁소를 꺼내 연주를 들려준 것이다. 김 동문은 재수 시절 퉁소를 배워 틈틈이 연습해왔다고 했다. 숲길 위로 낮고 깊은 퉁소 소리가 퍼지자, 참가자들은 귀를 기울였다. 바람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머물던 길 위에 퉁소 선율이 더해지자, 인왕산 산행의 끝자락은 한층 운치 있는 장면이 됐다.
연주가 끝나자 동문들은 아낌없는 박수와 칭찬을 보냈다. 김 동문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각자 자기 풍류를 즐기며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산을 오르며, 누군가는 오래된 유적을 둘러보며, 또 누군가는 젊은 시절 배운 악기 한 자락으로 자신의 시간을 나눴다. 걷는 방식도, 즐기는 방식도 달랐지만 이날 동문들은 한 길 위에서 저마다의 풍류를 나눴다.
다음 총동창회 등산트레킹은 11월 5일 남산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이정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