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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호 2026년 7월] 뉴스 포럼

설득은 기술 아니라 ‘품’입니다

비 오는 아침 70여 동문 참석 안심·환대·공명의 수사학 강조  
설득은 기술 아니라 ‘품’입니다
 
김종영 한국수사학회 명예회장 강연

 
비 오는 아침 70여 동문 참석
안심·환대·공명의 수사학 강조  

서울대총동창회는 7월 8일 오전 7시 30분 서울 공덕동 SNU장학빌딩에서 수요특강을 개최했다. 이날 강연에는 한국수사학회 명예회장이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객원연구원인 김종영 교수가 연사로 나서 ‘고전수사학으로 배우는 설득과 소통의 원리’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준식 총동창회장을 비롯해 70여 명의 동문들이 참석했으며, 이른 아침부터 내린 비에도 불구하고 강연장을 가득 메운 참석자들은 설득과 소통의 본질을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을 함께했다.

김 교수는 이날 강연을 다섯 개의 파트로 나누어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수사학의 역사와 현대적 의미를 체계적으로 풀어냈다. 그는 먼저 기원전 5세기 시칠리아 법정에서 문서가 아닌 ‘말’로 자신의 권리를 증명해야 했던 상황을 소개하며, 수사학이 단순한 화술이 아니라 “사람의 말이 어떻게 상대에게 닿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출발했음을 설명했다.

이어 ‘말이 배신하는 세 가지 역설’에서는 우리가 흔히 믿는 상식이 실제 소통에서는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주었다. 키케로의 사례를 통해 “말이 매끄러울수록 오히려 의심받을 수 있다”는 점을,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에서는 “질문이 정교할수록 상대의 말문이 닫힐 수 있다”는 역설을 소개했다. 또한 현대 심리학의 ‘역화 효과(Backfire Effect)’를 인용하며 논리가 완벽할수록 오히려 상대의 믿음을 더 강화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술이 완성될수록 관계는 무너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통해 설득의 어려움을 일깨웠다.

강연의 두 번째 부분에서는 수사학의 핵심 원리인 ‘엔튀메마(Enthymeme)’, ‘트리아스(Trias)’, ‘카이로스(Kairos)’를 소개했다. 엔튀메마는 청중이 스스로 빈자리를 채우도록 만드는 추론의 방식이며, 트리아스는 세 가지 요소가 가장 안정적인 구조를 만든다는 형식의 원리, 카이로스는 상황과 시간에 가장 적합한 순간에 말을 건네는 타이밍의 원리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페리클레스의 추도 연설,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에서 필사즉생(必死則生),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등 역사적 명연설을 사례로 들어 이러한 원리들이 실제 역사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흥미롭게 소개했다.


7월 8일 마포 공덕동 SNU장학빌딩 2층 베리타스홀에서 열린 수요특강에 70여 명의 동문이 참석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날 강연의 핵심은 이러한 기법 자체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수사학의 원리는 그 이전에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을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며 ‘안심’, ‘환대’, ‘공명’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상대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안심, 상대를 있는 그대로 맞아들이는 환대, 그리고 상대의 마음과 울림을 함께하는 공명이 선행되지 않으면 어떠한 설득 기술도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1세의 틸버리 연설, 넬슨 만델라의 화해와 용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이러한 원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됐다.

이어지는 ‘수사학으로 사는 것’에서는 수사학이 단순한 발표 기법이나 연설 기술이 아니라 삶의 태도임을 강조했다. 갈등 앞에서는 상대를 안심시키는 사람이 되고, 관계에서는 먼저 환대하는 사람이 되며, 침묵마저도 의미 있게 만드는 공명의 자세를 갖추는 것이 곧 수사학적 삶이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좋은 말은 좋은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며 설득의 기술보다 사람의 품이 먼저라는 메시지를 참석자들에게 전했다.

강연의 마지막에서 김 교수는 AI 시대일수록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소통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술은 점차 평준화 되지만 사람에게 안심을 주고, 관계를 환대하며, 마음을 공명시키는 능력은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말 ‘품’의 의미를 소개하며 이번 강연의 결론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수사학은 품을 살아내어 그 품격이 말로 흘러넘치는 자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기술보다 사람, 논리보다 관계, 말보다 품을 강조한 이날 강연은 참석한 동문들에게 설득과 소통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깊은 울림을 남겼다. 참석자 전원에게 김종영 강연자가 번역한 요아힘 크나페의 ‘현대 수사학’(진성북스)을 선물했다. 다음 수요특강은 12월 2일 같은 장소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