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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호 2026년 7월] 뉴스 모교소식

서울대가 갈 길은 ‘미래 여는 질문을 던지는 대학’

AI시대 민주주의 등 6개 질문, 과제에 향후 5년간 25억 지원, 연구 자율성 전면 보장 
서울대가 갈 길은 ‘미래 여는 질문을 던지는 대학’
 

AI시대 민주주의 등 6개 질문 
과제에 향후 5년간 25억 지원
연구 자율성 전면 보장 
 
서울대가 ‘정답을 찾는 대학’을 넘어 ‘미래를 여는 질문을 던지는 대학’으로 나아가기 위한 실험에 본격 착수했다. 모교는 6월 18일 중앙도서관 1층에서 ‘SNU 그랜드퀘스트 포럼’을 열고, 인공지능·생명·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6개의 연구 질문을 공개했다. 지난 3월 출범한 ‘SNU 그랜드퀘스트 이니셔티브’의 첫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이번 포럼은 6월 15일부터 나흘간 열린 ‘SNU 그랜드퀘스트 위크’의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마련됐다. 유홍림(정치80) 총장, 이준정(고고미술사83) 교육부총장 등 주요 보직자와 교수, 학생, 외부 참석자 5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개회사와 축사, 그랜드퀘스트 공개, 기조강연, 주제강연, 대담, 질문 해설, 공모전 시상식 등으로 이어졌지만, 핵심은 분명했다. 대학이 앞으로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에 앞서,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를 공동체 차원에서 다시 설계하겠다는 것이다.
 
대학의 새로운 역할 제시
유홍림 총장은 개회사에서 한국 대학 연구의 역사적 배경을 짚었다. 한국은 압축 성장 과정에서 서구의 기술과 학문을 빠르게 따라잡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단기 성과와 실적 중심의 연구 문화가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유 총장은 “이제 추격의 정점에 서 있는 한국은 과거의 전략으로는 더 이상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무엇을 질문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를 넘어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가를 모색해야 한다”며 그랜드퀘스트 이니셔티브의 출범 취지를 밝혔다.

축사에 나선 홍원화 한국연구재단 이사장도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저성장, 기술 패권 경쟁, AI 전환, 인구구조 변화라는 복합적 위기 앞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홍 이사장은 “이제 한국은 주어진 문제를 푸는 단계를 넘어, 인류의 미래를 향해 먼저 질문을 던지는 의제 설정자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랜드퀘스트가 단순한 연구지원 사업이 아니라, 한국 학문과 대학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려는 시도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날 공개된 질문은 모두 6개다. △인공지능시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지속가능한가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망각할 수 있는가 △인공지능은 손상을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가 △생명의 시계를 제어할 수 있는가 △삶의 의지를 분자 수준에서 설명할 수 있는가 △에너지 시스템은 자율적으로 균형을 찾을 수 있는가 등이다. 인공지능, 생명, 지속가능이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삼았지만, 각각의 질문은 특정 전공의 경계 안에 머물지 않는다. 기술, 사회, 윤리, 철학, 생명과학, 에너지 시스템을 함께 묻도록 설계됐다.
 
석좌교수 등 18명 질문 도출 
질문 도출은 ‘SNU 그랜드퀘스트 디자인보드’가 맡았다. 디자인보드는 여러 단과대학의 교수와 석좌교수 18명으로 구성됐으며, 인공지능·생명·지속가능 3개 분과로 나뉘어 논의를 진행했다. 이정동(자원86) 연구단장은 “지난 5월 디자인보드 교수님들과 진지한 토의를 거쳤다”며 “우리가 앞으로 해답을 찾는 대신 도전해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 토론한 결과 6개의 질문을 도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디자인보드 구성원들은 사흘간 외부와 단절된 합숙을 통해 숙의했고, 특정 분야의 전문가에게만 의제를 맡기지 않고 여러 학문 분야가 함께 질문을 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랜드퀘스트의 뿌리는 2022년 모교 국가미래전략원에서 시작된 ‘그랜드퀘스트 프로젝트’에 있다. 당시 프로젝트는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도전적 질문을 발굴하는 사업으로 출발했다. 2023년부터 3년간 세 시즌을 거치며 다양한 질문을 제시했고, 그 결과는 책으로도 출간됐다. 올해 출범한 ‘SNU 그랜드퀘스트 이니셔티브’는 이를 인문·사회, 예술, 과학기술을 아우르는 플랫폼으로 확장한 것이다. 이번 질문 도출 과정에는 이공계 교수진뿐 아니라 역사, 철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교수진이 참여해 질문의 범위를 넓혔다.
 
현택환·최재천 교수의 물음
포럼의 기조강연을 맡은 현택환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는 창의적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아이디어의 축적과 협업을 강조했다. 그는 실리카 나노 입자 연구 경험을 소개하며 “아이디어 생성을 멈추는 날은 우리 연구실이 문을 닫는 날”이라고 말했다. 또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즉시 어딘가에 기록해야만 한다”고 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 표지를 장식한 나노 다결정 연구를 언급하면서는 “19명의 공동 연구를 통해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는 그랜드퀘스트가 지향하는 연구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개인 연구자의 성과를 넘어, 서로 다른 지식과 관점이 충돌하고 결합하는 과정에서 더 큰 질문과 해답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오후 세션에서는 질문의 의미를 둘러싼 강연과 대담이 이어졌다. 최재천(동물72)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질문과 토론을 통해 남들이 따라올 수 있는 전략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인철(심리88)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질문의 사회적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질문은 상대에 관한 관심과 경청의 표현으로, 관계를 만들고 사회적 갈등을 완화한다”고 했다. 질문이 지식 생산의 출발점일 뿐 아니라, 공동체가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5개 탐색과제 선정
SNU 그랜드퀘스트는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연구지원 단계로 들어간다. 이종수 연구처장에 따르면 모교는 하반기부터 6개 연구 질문에 제시된 과제 가운데 5개의 ‘탐색 과제’를 선정한다. 6개월 뒤에는 이 가운데 2개를 ‘도전 과제’로 전환한다. 도전 과제에는 향후 5년 동안 매년 5억원씩, 최대 25억원이 지원될 예정이다. 이 연구처장은 이 사업에 대해 “성공이나 실패가 없으며, 성과 지표 또한 없다”고 설명했다. 또 “주어진 질문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경로 변경을 허용하며, 연구 제안서에 명시된 연구 계획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정해진 목표를 향해 성과를 산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질문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변화와 발견 자체를 연구의 중요한 내용으로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장민서 학생기자


6개 그랜드퀘스트는 
 
1. AI 시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지속 가능한가
AI가 사람의 일자리와 돈의 흐름, 뉴스와 여론, 선거와 정치까지 바꾸고 있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사람이 일하고 가치를 만들며 소득을 얻는 구조이고, 민주주의는 시민이 정보를 판단해 선택한다는 믿음 위에 서 있다. 그런데 AI가 일을 대신하고, 정보까지 만들고 골라 보여준다면 이 두 제도도 흔들릴 수 있다. AI 시대에 돈과 권력, 정보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어떤 사회 규칙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2. AI는 인간처럼 망각할 수 있는가
사람은 모든 일을 다 기억하지 않는다. 중요한 일은 오래 남기고, 사소한 일은 자연스럽게 잊는다. 사실 망각은 기억력이 나빠서가 아니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를 고르는 능력이다. AI도 앞으로 사람처럼 보고 듣고 움직이며 많은 경험을 쌓게 된다. 그 모든 것을 저장만 한다면 에너지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판단도 흐려질 수 있다. 잘 기억하는 AI를 넘어 잘 잊는 AI를 만들 수 있는가가 이 질문의 초점이다.
 
3. AI는 손상을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가
컴퓨터나 기계는 고장이 나면 사람이 고쳐야 한다. 하지만 사람의 몸은 작은 상처가 나면 스스로 회복하고, 뇌도 일부 기능을 잃었을 때 다른 방식으로 적응하기도 한다. AI도 앞으로 병원, 공장, 교통, 전력망처럼 중요한 곳에서 쓰이게 된다면, 작은 오류나 손상 때문에 멈춰서는 안 된다. 이 질문은 AI를 일회성 도구가 아니라 예기치 못한 손상 속에서도 버티고 고쳐 가는 자율 시스템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4. 생명의 시계를 제어할 수 있는가
생명은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 간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흐름을 되돌릴 수 없는 자연의 순서로 여겨 왔다. 그러나 최근 과학은 늙은 세포를 젊게 만들거나 손상된 조직을 되살리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생명의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면, 병든 몸을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강했던 상태로 되돌리는 의학도 가능해질 수 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 사회에서 이 질문은 수명 연장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 돌봄, 노동, 복지의 전제를 다시 묻는 과제다.
 
5. 삶의 의지를 분자 수준에서 설명할 수 있는가
사람은 누구나 힘든 일을 겪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다시 일어서고, 어떤 사람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의학은 주로 우울과 불안을 줄이는 데 힘써 왔다. 하지만 고통이 줄었다고 해서 삶의 의욕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 질문은 사람이 다시 살아가고 싶어지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것을 뇌와 몸 안의 분자 변화까지 연결해 설명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6. 에너지 시스템은 자율적으로 균형을 찾을 수 있는가
전기는 늘 필요한 만큼 만들어져야 하고, 남거나 부족하면 문제가 생긴다. 예전에는 큰 발전소가 전기를 만들고 중앙에서 조절하면 됐다. 하지만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에 따라 생산량이 달라지고, AI와 데이터센터는 많은 전기를 필요로 한다. 앞으로는 사람이 일일이 조절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생명체나 시장처럼 수많은 요소가 스스로 조정하며 균형을 찾는 에너지 생태계가 가능할까.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특히 절실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