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0호 2026년 7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잃어버린 우리맛 되찾고 K푸드 세계화로”
철학과 교수에서 사업가 변신, 한국식품산업협회장 맡아. 샘표식품 올해 창립 80주년, 사원 800명 중 20%가 연구원, “연구 중심 기업으로 발돋움”
“잃어버린 우리맛 되찾고 K푸드 세계화로”

철학과 교수에서 사업가 변신
한국식품산업협회장 맡아
샘표식품 올해 창립 80주년
사원 800명 중 20%가 연구원
“연구 중심 기업으로 발돋움”
박진선(전자68·사진) 샘표식품 대표이사 사장은 좀처럼 언론 인터뷰에 나서지 않는 경영인으로 알려져 있다. 샘표 창업주 박규회 회장의 장손이자 1997년부터 30년 가까이 회사를 이끌어 온 그는 식품기업 최고경영자(CEO)이면서도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회사와 연구원, 제품 뒤에 머물기를 택해 왔다.
서울대총동창신문은 샘표 창립 80주년을 맞아 7월 2일 서울 중구 샘표 본사에서 박 사장을 만났다. 대담은 김광덕(정치82) 본지 편집인이 진행했다. 박 사장은 “샘표가 하는 일은 단순히 간장을 더 많이 파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식생활을 개선하고 업그레이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약해진 전통 음식의 맛을 오늘의 입맛에 맞게 되살리는 일을 샘표의 중요한 사명으로 꼽았다. 박 동문은 지난해부터 한국식품산업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전공 동기와 학창 시절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시죠.
“당시 사회 분위기 상 공대 쪽, 특히 전자공학 쪽을 한참 밀던 때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진로를 선택하게 됐죠. 당시 서울 공릉동 공대 캠퍼스까지 다니는 길은 쉽지 않았어요. 집에서 종로 2가까지 걸어가 버스를 탔는데, 한 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그때 버스가 완전히 짐짝이었습니다. 한 번 서 있으면 움직일 수가 없을 정도였죠. 그래서 가능하면 학교에 안 가든지 늦게 가려고 했습니다. 대학 1, 2학년 때는 밴드도 했습니다. 4인조 밴드였고, 저는 베이스 기타를 맡았습니다. 즐겁게 지냈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철학으로 전공을 바꿨습니다. 이유가 궁금합니다.
“공학이 재미가 없었어요. 학교를 그만두고 나와서 뭘 할 것도 없고, 전공을 좀 바꿔 볼까 생각했습니다. 이과 쪽은 별로 관심이 없었고, 석사과정 때 문과 쪽 강의를 여기저기 들었죠. 그러다 우연히 경제학과의 공공재정학 강의를 수강하게 됐는데, 교수님이 읽어야 할 책과 논문 목록을 나눠주셨어요. 맨 앞부분에 공정성, 자본주의 체제, 정의와 관련된 책들이 있었습니다. 제목을 보니 읽고 싶은 책들이었죠. 그런데 교수는 그 부분은 강의에서 다루지 않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혼자 읽어보라고 했죠. 그 책들을 어디서 읽을 수 있는지 찾아보니 철학과에서 보더라고요.”
-철학 공부에서 가장 크게 남은 것은 무엇이었나요.
“철학을 하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특히 플라톤의 소크라테스 이야기를 읽을 때였어요. 소크라테스는 당시 사람들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불리웠죠. 그런데 정작 자신은 내가 모르는 게 많은데 나를 제일 현명한 사람이라고 하나, 이해가 안 가죠. 소크라테스는 이해하지 못하면 걷다가도 한참을 머물러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고 해요. ‘내가 이렇게 모른다는 것을 아는데 최소한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는구나’ 그런 문장이 나오는데 온몸에 벼락을 맞은 듯했어요. 지금까지 살아온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문장이었어요. 그다음부터 겸손해지는 것이 제 인생의 화두가 됐습니다. 행동을 넘어 마음속 생각까지 전체가 겸손한 게 중요하지요.”
-빌라노바대 철학과 교수까지 하다 샘표에 합류하셨습니다. 과정이 궁금합니다.
“원래 사업을 물려받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유학을 갔어요. 사업이 적성에 안 맞는다고 생각했죠. 한국에 돌아올 생각도 별로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17년 정도 살면서 미국 사회가 변하는 것을 쭉 지켜봤어요. 사업에 마케팅이 도입되고 사회가 많이 변했습니다. 한국에 나와 회사를 보니 세상은 저렇게 변하는데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회사가 없어지거나 완전히 쪼그라들겠다 싶더군요. 제가 장손이어서 할아버지가 저를 굉장히 예뻐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만든 회사니까 망하지는 않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샘표에 합류해 1997년 대표에 오른 박 동문은 선진 마케팅 전략과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샘표를 연매출 4000억 규모의 탄탄한 식품회사로 발전시켰다.
-샘표가 80년 동안 경쟁력을 지켜온 힘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기본적으로 저는 회사를 하면서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회사는 당연히 돈을 벌어야죠. 돈을 벌지 못하면 회사가 망하고, 직원들에게도 피해가 갑니다. 직원들에게도 잘해줄 수 있는 한 잘해야 하고요. 세상은 계속 변하기 때문에 같이 발전해야 합니다. 그것은 주어진 조건이에요. 우선 목표가 돈이 아니라는 거죠. 우리의 핵심 가치는 구성원의 행복과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식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들의 식생활에 좋은 변화를 만드는 일인 거죠.”
-연구개발(R&D) 투자를 많이 하는 회사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전체 직원의 20%가 연구 인력이라고요.
“연구소를 지을 때 욕을 많이 먹었어요. 그때 매출이 한 2000억원 정도였는데 연구소 짓는 데만 300억원 정도 들었습니다. 지금은 전체 직원 800여 명 가운데 약 20%가 연구원입니다. 무엇을 연구해야 하는지 저는 참견하지 않고 100% 지원만 합니다. 연구원들이 굉장히 열심히 합니다. 믿고 맡깁니다.
요리의 핵심이 세 가지입니다. 식재료가 있고, 식재료를 다루는 기술이 있고, 식재료가 최상이 아닐 때 모자라는 것을 채워주는 소스가 있죠. 간장도 소스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소스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맛, 새로운 맛을 만들어가는 연구를 하는 겁니다.”
-‘잃어버린 우리 맛’을 되찾는 일을 강조하셨습니다. 어떤 뜻인지요.
“한국 음식 맛이 굉장히 많이 망가졌어요. 일제강점기에 시작해 쌀을 다 빼앗기고,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먹을 게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아무거나 배 채우는 것이 먹는 것의 중심이 됐죠. 한국전쟁 뒤에도 산업화 속에서 식량 문제 해결 차원에서 분식을 장려했습니다. 그러면서 맛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사회가 됐어요. 라면 먹고 김밥 먹고 맛있다고 생각하지만, 그전 한국 음식 문화에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있는 음식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거죠. 옛날 것을 그대로 복원하자는 게 아닙니다. 짜고 매운 것으로 맛을 감추는 방식에서 벗어나 맛을 즐기는 쪽으로 가야 해요. 그것이 문화가 발전하는 것이고, 우리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샘표가 가장 내세우고 싶은 제품이나 사업을 꼽는다면요.
“제품으로는 ‘연두’입니다. 정말 놀라운 제품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주력은 간장이지만, 기존 제품만으로는 해외 시장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기 쉽지 않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연두는 콩 발효의 깊은 맛은 살리면서도 특유의 향이나 강한 맛은 덜어낸 제품이거든요.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요리에도 잘 어울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세계 최초의 요리과학 연구소인 스페인의 알리시아와 공동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연두가 서양 요리에도 잘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죠. 그 과정에서 맛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방식을 접하며 ‘우리는 왜 우리맛을 이렇게 연구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알리시아와의 협업이 계기가 돼 우리도 자체적으로 우리맛 연구를 시작했어요.”
-‘새미네부엌’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브랜드인가요.
“사람들이 시간이 없고 맛을 내기 어렵다 보니 요리를 하고 싶어도 쉽게 시작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외식이나 배달에 의존하게 되는데, 외식이나 배달 음식은 영양이나 품질 면에서 한계가 있고 환경 측면에서도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반면 직접 요리하면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은 줄이고, 자신에게 필요한 재료를 선택해 음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새미네부엌은 이런 요리를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도록 돕는 브랜드입니다. 웬만한 음식은 20분 안에 간단하고 맛있게 만들 수 있고, 자신의 취향과 필요에 맞게 요리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우리맛으로 세계인을 즐겁게’라는 비전도 인상적입니다.
“제조업이라는 마인드에서 벗어나 문화적인 쪽으로 나간다는 얘기입니다. 문화 업그레이드에 우리가 역할을 한다는 뜻이죠. 전 사원의 공감을 받아 슬로건으로 쓰고 있습니다.”
-K푸드와 K식문화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식품업체들이 수출하고 해외에 진출하는 과정에는 기업의 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그런 부분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와 기업뿐 아니라 셰프, 글로벌 마케터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힘을 모은다면 세계 시장에서 더 큰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식품산업협회장으로서 식품업계의 어려움도 많이 보실 것 같습니다.
“요즘 식품업계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삼양식품이나 오리온처럼 해외에서 큰 성과를 내는 일부 회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기업은 영업이익률이 5%를 밑돕니다. 원재료비와 물류비, 인건비는 계속 오르고 있고요. 기업들도 많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마지막으로 서울대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좀 겸손했으면 합니다. 명문대 출신이라는 기대에 취해 실제보다 자신을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그런 것에서 벗어나 더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정리=김남주 기자

대담 : 김광덕(정치82) 본지 편집인
가족 모두 서울대인…설거지 즐기는 CEO
박진선 동문의 이력은 한 줄로 설명하기 어렵다. 모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전공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경제학 강의의 읽기 목록에서 철학의 세계를 만났고, 결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빌라노바대 철학과 교수로 지내다 1990년대 샘표에 합류해 1997년부터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가족 중에 서울대 동문이 많다. 부인은 서울대 수학과 출신이고, 아들은 컴퓨터공학과, 딸은 식품영양학과를 나왔다. 며느리도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판사를 지냈다. 박 사장은 자녀 교육에 대해서는 “강제로 공부하라고 하면 더 안 한다”며 “과외를 강제로 시킨 적은 없다”고 말했다.
식품회사 CEO로 요리를 즐기냐는 질문에 “와이프가 원하지 않아 요리는 못 하고 대신 설거지는 신혼 초부터 지금까지 내 담당”이라며 “식사 후 움직이면 소화에 도움 되고 깨끗한 그릇을 보며 느끼는 희열도 있다”고 했다.
건강 비결은 특별하지 않다고 했다. 큰 걱정 없이 잘 자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음식을 따로 조절하지도 않고, 운동을 즐기지도 않는다. 다만 60대 중반 이후 필라테스를 시작했고, 지금은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한다. 담배는 결혼할 때 ‘결혼 선물’로 끊고, 술은 조금 마신다.
박 동문의 삶을 관통하는 말은 겸손이다. 철학 공부 중 소크라테스를 접하며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고, 그 뒤로 겸손은 인생의 화두가 됐다. 그는 겸손이 심신의 편안함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