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9호 2026년 6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썩 괜찮은 리더가 사라진 시대
인재 공급 끊긴 한국 정치 선배들 삶이 공공선 닮아야
썩 괜찮은 리더가 사라진 시대

김승련(국제경제87)
동아일보 논설실장
본지 논설위원
인재 공급 끊긴 한국 정치
선배들 삶이 공공선 닮아야
1990년대 말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태풍 상사’에서 극중 중소기업 직원들은 “회사보다 나라가 잘 되어야죠”를 입에 달고 산다. 신인 드라마 작가는 30년 전 한국 사회를 나보다 우리, 우리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정서가 존재했던 시기로 묘사했다. 공공선이란 개념이 지금보다는 더 깊게 흉중에 있던 시기였다는 것인데, 매우 낯설었다. 국가보다는 내 집단, 내 집단보다는 내가 더 중요해진 지금이다. 개탄하거나 남 탓을 할 일이 아니다. 나부터 돌아봐도 부인하기 힘들다.
공공선 부재 또는 사라짐이 아쉬운 것은 정치의 황폐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치를 왜 하느냐, 도대체 정치는 누가 해야 하는가를 묻게 되는 요즘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언제부턴가 썩 괜찮은 리더가 눈에 띄지 않고 있다. 그걸 30년 전 힐러리 클린턴이 예견한 일이 있다. 백악관 안주인이던 그가 외신기자 클럽에서 “백악관 생활을 오래 한 당신이 볼 때 미국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더 이상 최고의 인재가 워싱턴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답이었다.
자신의 재능을 돈벌이 말고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일에 쏟아붓고 싶은 이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들이 싸움질하는 워싱턴 정치, 관료주의로 숨 막히는 워싱턴 연방정부가 아니라 거대기업을 선택하는 ‘인재 대이동’을 힐러리는 느꼈던 것이다. 왜 아니겠나. 월급도 많고, 근무 환경도 좋고,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을 하기엔 덩치가 웬만한 나라 정부만큼 커진 글로벌 기업이 맞춤한 곳이 돼 버리던 시기다.
이런 모습은 인재의 공급이 뚝 끊긴 것 같은 2026년 한국 정치와 묘하게 겹친다. 우리네 젊은 공공 인재는 여의도와 정부 청사를 꿈을 펼칠 곳으로 예전만큼 여기지 않는다. 그곳에서 자기 삶이 더 풍성해지고, 세상의 진일보에 기여할 수 있다고 덜 느끼고 있다. 뜨거운 가슴을 지녀서 예전 같았다면 정치와 정부 영역에서 (혹은 언론에서) 일하길 원했을 일꾼들이 부(富)를 창출하는 곳에 몰리고 있다. 정치의 하향평준화가 이런 맥락에서 진행중이다. 정치와 행정으로 풀어야만 하는 수많은 공공 난제는 쌓여가고 있다.
지금 서울대 캠퍼스, 강의실, 도서관에서 어떤 가르침과 공부가 쌓여가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모교의 교수님들, 재학생 후배님들은 어떤 공(公)과 공(共)을 꿈꾸고 대화하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정치를 백안시하고, 그곳에 발 담그는 걸 품위를 잃고 욕망을 드러내는 일로 여기는 식의 ‘정치 거부’ 현상이 지속된다면 누구 말처럼 ‘더 후진 이들의 지배를 받는 일’을 견뎌야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린 후배들에게 정치에 도전하라고 권할 수 있나. 말로 권할 게 아니라 선배들의 삶이 공공선을 닮아야 하는 일 아닌가. 그렇노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점이 참 아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