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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호 2026년 6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나이듦과 유머감각

나이듦과 유머감각

이지영(약학89)
중앙일보 문화스포츠부국장
본지 논설위원
 
“화요일에 할 일을 목요일로 절대 미루지 않는 사람을 보면/너무나 안타까운데,/미루면 수요일이 얼마나 편안한지,/그 사람은 절대 모르기 때문이다”

헛웃음을 자아내는 이 시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헤르만 헤세(1877∼1962)가 70세에 지은 시 ‘제안’이다.
여든을 목전에 두고 쓴 1956년작 ‘불가피함’도 피식 웃음을 부른다.

“젊음은 달아났고/더는 건강하지 못하다/자기 성찰이/전면에 나선다”

헤세가 이렇게 재미있는 작가였던가. 최근 출간된 책 ‘너무 진지하게 여기진 말아요’(피카 출판사)에서 헤세의 새로운 모습을 만났다. 책은 헤세의 미발표 산문과 시를 모아 엮은 선집이다. 이 책 속의 헤세는 인간 존재의 불안과 방황을 파고드는 사색가가 아니었다. ‘수레바퀴 아래서’(1906)와 ‘데미안’(1919) 등 초기 대표작들이 내세운 자아 성찰의 고뇌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도드라져 보이는 건 유머감각이다. 재치 넘치는 풍자와 예리한 통찰이 말년작으로 갈수록 빛이 났다.

젊은 시절의 헤세는 누구보다 진지하고 고독한 사람이었다.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1년 만에 중퇴했고,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살기도까지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무렵에는 반전(反戰) 호소문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조국 독일에서 매국노·반역자라는 비난을 받고 괴로워했다. ‘싯다르타’(1922) 집필 도중엔 정신적 위기에 빠져 한동안 창작을 중단하기도 했다. 인간 존재의 불안과 내면의 균열은 그에게 문학적 소재이기 이전에 삶 그 자체였다. 

인생의 격랑 속에서 헤세는 유머가 삶의 막다른 골목을 돌파하는 힘이란 걸 깨달았던 모양이다. 소설 ‘황야의 이리’(1927)에서 주인공 하리에게 구원의 실마리로 유머를 제시한다. 하리는 세상과 불화하고 스스로를 한탄하는 50대 지식인이다. 그런 그에게 필요한 것이 더 깊은 사색이나 더 치열한 자기 분석이 아니라 유머란 것이다. 헤세는 “세상이 없는 듯이 세상에 살기, 법을 존중하면서도 법을 넘어서기, 소유하지 않는 듯이 소유하기, 포기하지 않는 듯이 포기하기…. 자주 인용되고 사랑받는 이 모든 귀한 삶의 지혜를 실현할 수 있는 건 오직 유머뿐”이라고 소설 속에 적어 넣었다. 그리고 유머의 시작은 “자기 자신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노년의 헤세가 내놓은 유머 시들을 보며 그가 그 경지에 가까워진 것 같아 반가웠다. 완벽한 자기 성찰에 대한 집착에서 마침내 벗어나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웃어넘기는 정신적 여유가 읽혔다. 유머가 그 성숙함의 징표가 돼줬다.

지난 5월 수상작을 발표한 한국시인협회 주최 ‘제3회 어르신 짧은 시 공모전’ 결과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같은 얘기 세 번째다/처음 듣는 척해 준다/우리 둘 다 프로다”(‘친구’, 장순미·67세)

“카드 비밀번호를 자꾸 잊는다/겨우 떠올려 적어 두고는/그 종이를 또 잃는다//요즘은/내가 제일/비밀스럽다”(‘비밀번호’, 하성규·79세)

대문호 헤세와 문학적 깊이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냐만, 노년의 비애를 투정 대신 농담으로 바꾸는 솜씨는 놀랍도록 닮았다.

헤세와 어르신들의 시는 웃음의 과녁이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머의 정석을 보여준다. 누군가를 조롱하지도, 비판하지도, 가르치려 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약점과 실수,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 웃음이다. 그래서 웃음 뒤끝이 따뜻하다.

이렇게 나를 향해 웃어주는 유머감각이야말로 나이듦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값진 선물일지 모른다. 인생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려고 웃음을 만들어낸다. 젊은 날의 유머가 남을 향한 재치였다면, 노년의 유머는 자신을 향한 관용이다. 삶의 아이러니를 받아들이고 자신과 화해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지혜. 바로 그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