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9호 2026년 6월] 오피니언 추억의창
청춘은 혼돈이다, 그러나 별이 태어난다
청춘은 혼돈이다, 그러나 별이 태어난다

고화자(약학63)
수필가
나의 60년대 학창 시절은 유난히 다사다난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은 한 편의 흑백영화 같기도 하다. 배경음악은 늘 배고픔과 이상이 함께 연주되곤 했다.
우선 약대생의 자존심에 불을 지펴주셨던 홍문화 교수님 이야기부터 꺼내야겠다. 당시 홍문화 교수님은 약대의 전설이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TED 강연자와 스타 창업 멘토, 인기 유튜버를 한 몸에 합쳐놓은 인물이었다.
교수님 강의가 있는 날이면 강의실에는 묘한 전율이 흘렀다. 학생들은 필기보다도 “오늘은 또 어떤 폭탄 발언이 터질까”를 더 기대하며 자리에 앉았다. 교수님은 약국 조제대 안에서 평생 계량스푼만 들고 살지 말라고 하셨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제약산업 시대가 옵니다. 드럼통에 양잿물을 담아놓고라도 뭘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들으면 약간 위험하고, 식약처에서 들으면 심장이 철렁할 창업론이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산업화 시대 청춘들에게 내려진 일종의 계시였다. 그 말씀을 듣고 나오면 학생들 눈빛이 달라졌다. 당장 실험실 뒤편에서 세계적 신약 하나쯤 몰래 탄생시킬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난했던 학창 시절에는 전화기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시절 전화기는 단순한 가전제품이 아니었다. 거의 사회적 신분증이었다. 전화번호가 있다는 것은 집안 형편과 사회적 연결망을 동시에 인증하는 일이었다. 전화기가 없던 우리는 학림다방과 낙산다방을 사실상의 ‘인력시장 고객센터’처럼 이용했다. 다방 한구석에 앉아 가정교사 연결 전화를 기다리는 일이 일상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학생이면서 동시에 1960년대판 플랫폼 노동자였다. 다만 플랫폼이 스마트폰 앱이 아니라 믹스커피와 다방 마담의 기억력이었을 뿐이다. 약대생의 삶은 낭만보다 생존에 가까웠다. 하얀 가운을 입고 일주일에 48시간 넘게 실험과 강의 속에 처박혀 살아야 했다. 특히 약용식물학은 학문이라기보다 기억력 고문에 가까웠다. 식물의 학명을 외우는 구술시험은 거의 두뇌 체력장이었다. 교무실 앞 복도에 줄지어 서 있다가 이름이 불리면, 마치 운명의 문 앞에 끌려가는 죄수 심정이 되곤 했다. 그리고 단 8분. 그 짧은 시간이 학생의 자존심과 기억력을 탈탈 털어갔다.

일러스트 김나은(디자인17) 그래픽 디자이너

일러스트 김나은(디자인17) 그래픽 디자이너
하지만 우리 63학번은 단순히 공부만 하던 세대가 아니었다. 6·3 항쟁의 한복판을 지나간 세대였다. 강의보다 데모가 더 뜨거웠고, 젊음은 늘 과열 상태였다. 치맛폭에 돌을 나르고, 한일협정 반대 구호를 외치며 목이 쉬도록 대학로 거리를 뛰었다. 수업은 휴강이 더 많았고, 어느새 학림다방과 낙산다방은 백수들의 철학 살롱이 되어 있었다. 운이 좋으면 중국집 ‘진아춘’에 들러 짜장면 한 그릇으로 혁명가 흉내를 냈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았지만, 배만은 잠시 든든해졌다.
나를 누가 끼워주었을까. 아직 미스터리인 사건이 있다. 여학생 둘, 남학생 네 명, 총 6명의 서클 건이다. 그중에는 문리대 화학과 학생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괜히 뒷목이 당긴다. 첫 미팅에서 누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간 화학 잡지로 토론하며 연구합시다.” 처음에는 우리 모두 지적 항해를 떠났다. 거대한 지성의 범선에 승선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막상 출항해보니 나는 난해한 이론의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거렸다. 토론은 시작되는데 내 머릿속만 종강 상태였다. 결국 나는 조용히 하선했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말했다. “청춘은 혼돈이다. 그러나 그 혼돈 속에서 별이 태어난다.” 돌아보면 우리의 청춘도 꼭 그랬다. 혁명도, 사랑도, 학문도 한꺼번에 품겠다고 팔을 걷어붙였지만, 정작 손안에 남은 것은 다방 커피 냄새와 실험실 알코올 향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생은 결국 그런 냄새로 기억된다. 고급 향수보다도, 젖은 교정의 먼지 냄새와 오래된 다방의 믹스커피 향이 더 오래 영혼에 남는다. 철학자 마르셀 프루스트가 마들렌 과자 냄새로 시간을 소환했다면, 우리 세대는 짜장면 춘장 냄새와 에탄올 향으로 청춘을 복원해내는 셈이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나는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린다. 불안했고, 가난했고, 무지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때 우리는 지금보다 미래를 더 굳게 믿었다. 무엇 하나 완성하지 못했어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맨몸으로 돌진하던 시간. 넘어질 준비도 없이 뛰어들었고, 가진 것 없어도 이상만은 늘 과잉 보유 상태였다. 어쩌면 청춘이란 자기 인생의 첫 문장을 서툴지만 가장 뜨겁게 써 내려가던 시간인지도 모른다. 심장만은 누구보다 진심인 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