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79호 2026년 6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카바디 국가대표·미스코리아·특전사 장교까지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 멤버, 카이스트 석사·미 로스쿨 졸업 
카바디 국가대표·미스코리아·특전사 장교까지

우희준(대학원26) 재학생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 멤버
카이스트 석사·미 로스쿨 졸업 

우희준 동문을 설명하는 말은 많다. 전 카바디 국가대표, 미스코리아 선, 특전사 파병 장교, 방송 출연자. 하나의 이력만으로도 충분히 눈길을 끌 만하지만 본회 사무실에서 만난 우희준(대학원26 ·사진) 동문은 이력을 앞세우기보다, 지나온 선택마다 자신이 무엇을 배우고 채우려 했는지를 이야기했다. 밝고 솔직한 말투 속에서 스스로를 과장하지 않는 담백함이 느껴졌다. 현재 서울대 체육교육과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그는 지금의 자신을 소개할 때 “대학원생”이라는 말을 가장 먼저 꺼냈다.

그에게 새로운 무대는 자신에게 비어 있는 부분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실패하더라도 그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으니, 그것 역시 남는 일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저를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주시는데 사실 저는 도전을 좋아한다기보다 부족함을 발견했을 때 그걸 채우려고 하는 사람에 가까워요.”

그의 삶을 바꾼 첫 전환점은 인도 여행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동네 아이들이 즐기던 카바디를 봤다. “원하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일상 가까이에 있던 스포츠였다. 그는 “재미있어 보인다, 해보고 싶다”고 느꼈고, 유소년 시절 육상으로 익힌 순발력과 스피드를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카바디를 시작했다.

그렇게 카바디는 9년간 그의 삶이 됐다. 태극마크를 달았고 두 차례 아시안게임 무대에도 섰다. 가장 강렬하게 남은 순간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만전이었다. 8강 진출이 걸린 경기에서 팀원 6명이 모두 아웃되고 코트에는 그 혼자만 남았다. 남은 시간은 2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는 공격과 수비에서 4점을 따내며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그 경기는 그에게 승리 이상의 의미로 남았다. 이전까지는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는 데만 집중했다면 이후에는 자신의 능력이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나에게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내 능력이나 스킬을 잘 활용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큰 도움을 줄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카바디는 은퇴 후에도 그에게 사람과 용기로 남아 있다. 비인기 종목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카바디 때보다 덜 힘들다”는 기준을 얻었고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와 더 열악한 환경에 놓인 이들을 자연스럽게 바라보게 됐다.

의공학을 공부한 것도 그 때문이다. 장애인 선수들의 의족과 의수, 웨어러블 기기에 관심을 갖게 되며 그들을 도울 기술을 만들고 싶었다. 법학은 그 기술을 보호하고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공학 석사와 미국 로스쿨 공부를 거쳐 서울대 체육교육과 대학원에 온 것도 같은 흐름이었다. 겉으로 보면 여러 갈래로 나뉜 여정 같지만, 그는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일직선”이라고 했다. 모두 스포츠 현장과 사람을 향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제가 원하는 기술을 만들어서, 그것을 잘 규정화하고 선수들에게 보급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그 마지막 여정에 와 있는 것 같아요.”



미스코리아 출전 당시 사진.

카바디를 알리려는 마음은 뜻밖의 무대로도 이어졌다. 미스코리아 출전은 후배들이 장난처럼 서류를 넣은 일이 출발점이었지만, 그는 이를 카바디를 알릴 기회로 삼았다. 큰 무대에서 “카바디 선수”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낯선 종목을 알리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예상 밖의 ‘선’ 입상 이후 의류와 스포츠웨어 기업 등의 후원도 이어졌다.

장교의 길은 오래 품어온 제복에 대한 동경에서 시작됐다. 강력반 형사였던 아버지를 보며 그는 나라를 위해 일하는 제복 근무자에 대한 존경을 키웠다. 임관 뒤 강원도 삼척 해안 최전방 수색소대장으로 근무했고 이후 특전사에 지원해 레바논 파병도 다녀왔다.

전역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장교로서의 목표도 있었지만, 이루지 못한 메달의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고, 군 복무와 국가대표 활동을 병행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군대는 나중에 다시 도전할 수 있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은 지나면 다시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카바디 선수 생활을 마친 뒤에도 그의 무대는 스포츠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SBS 축구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을 통해 대중을 만나고 있다. 그는 이 역시 “카바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미디어”라고 생각해 출연을 결심했다. 처음에는 공이 오면 소리를 질렀을 정도로 낯설었지만, 1년 동안 패스와 수비, 공수 전환을 배우며 성장했다. 팔이 부러진 상태에서도 결승전을 뛰고 수술을 받았을 만큼, 축구는 어느새 그에게 진심이 담긴 스포츠가 됐다.

그의 여러 선택을 관통하는 태도는 에세이 ‘순간을 살다’에도 담겼다. 책을 쓰며 자신이 유독 ‘순간’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제야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거창한 계획보다 그때그때 찾아오는 부족함과 마음의 움직임에 충실했고, 실패마저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앞으로 우 동문은 서울대 총동창회 객원기자로도 활동할 예정이다. 스포츠 분야 동문, ROTC 출신 동문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대라는 멋진 학교와 커뮤니티의 일원이 된 것이 큰 영광입니다. 남은 대학원 생활 동안 학교 안에서 받은 도움을 잘 나누고 싶고, 졸업 후에도 후배들에게 환원할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습니다.” 이정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