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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호 2026년 6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정부·대학·기업…중국 도시 경쟁력 키우는 3박자

정부·대학·기업…중국 도시 경쟁력 키우는 3박자


선전 전경(왼쪽 사진)과 항저우 알리바바 모습


동문 기고
박성연(국문11)
우버 아시아 북아시아 담당 선임 매니저 
 
홍콩에 거주하다 보면 자연스레 중국을 자주 방문하게 된다. 때로는 업무차 때로는 환승차 다양한 도시들을 방문하게 되는데, 도시별로 분위기는 제법 다르다. 워낙 방대한 국가다 보니 지역마다 다른 역사와 문화가 만들어 낸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하기에는 인접 도시들 간에도 외형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홍콩에서 주하이로 향하는 강주아오 대교를 건널 때와, 선전 지하철역을 통과할 때 느껴지는 공기의 밀도가 전혀 다른 것처럼 말이다. 차로 한 시간 거리 안의 도시들이 이토록 다른 내러티브를 갖게 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도시의 성격은 물리적인 위치나 인프라 투자뿐만 아니라 자본, 인재, 그리고 산업의 연쇄 반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중국의 도시는 그 도시를 대표하는 산업, 기업, 대학, 인재, 자본이 중국 정부의 방향과 만나 도시의 성격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제조와 혁신의 도시 선전 
그 점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도시는 단연 선전이다. 홍콩과 바로 시계를 맞닿고 있는 선전은 오늘날 중국을 대표하는 테크 도시이자 세계적인 하드웨어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불과 40여 년 전만 해도 선전은 인구 30만 명 수준의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 1980년 중국 정부는 개혁개방 초기 선전을 경제특구로 지정하며 시장경제 실험을 시작했다. 이를 기점으로 전국에서 근로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며 한적한 어촌 마을이던 선전은 유동인구 2000만 명의 메가시티이자 세계의 하드웨어 중심지가 됐다. 선전의 성공을 경제특구 정책으로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도시를 직접 둘러보다 보면 경제특구 지정은 도시가 성장할 수 있는 마중물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전의 진짜 경쟁력은 제조업 그 자체보다 제조업을 둘러싼 생태계에 있었다.

이 생태계의 시작점에는 홍콩과의 절묘한 역학관계가 있었다. 1980년대 당시 홍콩은 강력한 자본력과 세계적인 수출 항구를 가졌지만, 치솟는 인건비와 토지 비용으로 인해 더 이상 제조 효율을 내기 힘든 한계에 봉착해 있었다. 이때 홍콩의 바로 밑 배후지인 선전이 문을 열자, 홍콩의 자본·물류 역량과 선전의 값싼 노동력이 결합하며 폭발적인 시너지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선전은 단순한 하청 기지에 머무르지 않았다. 홍콩 자본을 타고 밀려 들어온 전자부품 업체와 조립 공장, 물류기업과 설계 인력들이 한곳에 뭉치기 시작하면서 도시 자체가 스스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새로운 기업들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구축할 필요가 없어졌다. 필요한 부품을 구하고, 시제품을 만들고, 생산라인을 확보하는 과정이 한 도시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선전에서는 제조업이 단순한 생산 활동에 머무르지 않았다. 제조는 혁신의 기반이 되었고 공급망은 새로운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화웨이, 텐센트, DJI, BYD와 같은 기업들이 등장한 배경에도 이러한 환경이 자리하고 있다. 선전에서는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이 훨씬 짧고 빠르게 반복될 수 있었다.


알리바바 도시 항저우 
항저우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장한 도시다. 항저우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알리바바다. 실제로 알리바바는 항저우의 성장을 설명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정말 흥미로운 지점은 알리바바의 성공 이후 형성된 ‘자생적 생태계’에 있다. 알리바바가 성장하면서 전국의 인재들이 항저우로 밀려들었다. 이들은 플랫폼 비즈니스와 디지털 경제의 최전선을 경험했고, 그중 일부는 다시 야생으로 나와 새로운 기업을 창업했다. 연쇄 창업이 늘어나자 자본과 벤처캐피탈(VC)이 모였고, 자본이 모이자 더 많은 스타트업이 탄생했다. 이렇듯 항저우는 알리바바라는 단일 기업이 아니라, 인재와 자본이 쉼 없이 도는 이 ‘선순환 구조’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순환 구조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다른 한 곳이 바로 저장대학교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KBS 다큐멘터리 ‘인재전쟁’을 포함하여 중국 테크 산업을 다룬 자료들에서 저장대학교가 단골로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공학과 컴퓨터공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저장대학교는 지식과 인재의 베이스캠프로 도시에 경쟁력을 더한다.

실제로 항저우의 유망 스타트업과 AI 기업들을 살펴보면 저장대 출신 창업자와 핵심 엔지니어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대학은 인재를 공급하고, 기업은 이들에게 글로벌 스케일의 경험을 제공하며, 경험을 쌓은 인력은 다시 창업 생태계로 돌아와 파이를 키운다. 선전이 촘촘한 ‘물리적 공급망’을 중심으로 성장했다면, 항저우는 철저하게 ‘플랫폼 기업과 인재 생태계’를 중심으로 성장한 도시인 셈이다.


중국의 전통 도시 베이징과 상하이
상하이와 베이징은 또 다른 유형을 보여준다. 상하이는 금융과 글로벌 비즈니스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첨단 제조와 물류의 존재감도 크다. 과거 아시아 최대 금융·상업 허브였던 역사적 DNA와 탄탄한 기존 제조 기반을 갖춘 상태에서, 1990년대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고 상하이를 중심으로 글로벌 자본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명실상부한 제1의 경제 도시가 되었다.

베이징은 인재와 연구 역량의 도시다. 이곳에는 칭화대, 베이징대를 정점으로 하는 고등교육 인프라와 국가 연구기관, 그리고 바이두, 바이트댄스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촘촘한 연계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 집약적 첨단 산업에서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지적 자산의 밀도’가 곧 도시의 생존력이 된다. 정부가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세우면, 대학이 세계적 수준의 연구 인력을 공급하고, 기업이 이 지식을 상용 기술로 전환한다. 

선전이 공급망의 도시라면, 항저우는 플랫폼의 도시이고, 상하이는 자본의 도시, 베이징은 인재의 도시라고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도시가 같은 방식으로 성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통점도 있었다. 각 도시는 자신이 가진 조건과 강점을 바탕으로 산업과 기업, 인재가 모일 수 있는 방향을 찾아갔다는 점이다. 선전은 홍콩과 제조업을 발판으로 성장했고, 항저우는 기업과 대학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상하이는 금융과 글로벌 비즈니스의 중심지가 되었고, 베이징은 연구개발과 인재의 도시가 되었다. 
이처럼 도시를 성장시키는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각 도시가 가진 조건과 강점을 이해하고, 그것을 산업과 기업, 인재의 성장으로 연결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획일적인 특화 도시나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관성에서 벗어나, 우리의 도시들만이 가질 수 있는 독점적 경쟁 우위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결국 도시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선행되는 인프라 투자나 기업 이전이 아니라, 각 도시의 상황에서 시작되는 정교한 생태계 설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