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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호 2026년 6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수석 입학 → 전공 변경 → 노동자창업…다음은 우주 산업입니다

남영동 대공분실 다녀온 뒤 인생 궤도 틀어, 가전·배터리 소재 만드는 강소기업 일궈, 다롄에 우주항공 소재 합작법인 설립, 총동창회에 장학금 10억원 약정
수석 입학 → 전공 변경 → 노동자창업…다음은 우주 산업입니다

임무현(화학공학61) 대주전자재료 회장 
 
남영동 대공분실 다녀온 뒤 인생 궤도 틀어
가전·배터리 소재 만드는 강소기업 일궈
다롄에 우주항공 소재 합작법인 설립
총동창회에 장학금 10억원 약정
 
경기도 시흥 정왕동. 대주전자재료 본사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낯선 안내를 받았다.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 부분에 테이프를 붙여 주십시오.” 방문객에게 건네는 작은 검정색 테이프 한 조각이 이 회사가 무엇을 지키고 사는지를 단번에 말해준다.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된 실리콘 음극재 기술이 이 건물 안에서 살아 숨쉰다.

5층 접견실에는 사진 몇 장이 걸려 있다. 함께 노동운동을 했고 회사를 일구다 먼저 세상을 떠난 후배들의 얼굴-박중희(경제66)·최한배(경영71)·노병직(경영72)-이다. 

6월 1일 만난 임무현(화학공학61·상학65) 회장은 인터뷰 시작 전 그 후배들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요즘 들어 이들의 소탈한 웃음을 떠올리다가 북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닦곤 하는 일이 잦아졌다”고 했다. 이들과 인연에서 임무현이라는 사람의 인생이 본격 시작된다.

올해 85세. 몇 년 전 심장 혈류 장애에 인지 기능 저하 경고까지 겹쳐 오랫동안 현장을 떠나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로 만난 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3주 전부터 정상적으로 회사에 출근하고 있습니다. 6월에는 다롄에 있는 합작 법인에도 직접 가볼 생각입니다.” 다롄이라고 했다. 중국 북동부의 항구도시다. 대주전자재료가 지분 40%로 참여한 우주항공 태양전지 소재 합작법인이 있다. 임 회장이 다음에 갈 곳은 우주 소재 공장이다.
 
공대 졸업 후 상과대학으로 편입
임 회장은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촉망받는 학생이었지만 그의 관심은 곧 공학 밖으로 뻗어 나갔다.

-화학공학과 수석 입학을 하셨는데, 왜 전공을 바꾸셨나요.
“경제학, 철학 등 사회과학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이렇게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대 교수님의 소개로 상과대학 정병휴 교수님을 추천받아 학사편입을 했습니다. 당시 상과대학은 사회주의적인 분위기가 강했어요. 주변에 만나는 사람들이 전부 다 그쪽이었고, 저도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노동운동을 결심하신 거군요.
“생활 자체가 노동자적인 생활을 하지 않고는 노동자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공장으로 뛰어드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1969년 마포의 자동차 정비공장을 시작으로, 현대자동차 서비스 공장, 사당동 범진여객 버스 차고지까지 약 10년을 공장 노동자로 보냈다. 범진여객에서는 밤새 낡은 버스를 정비하다 “이러다 일하기 전에 죽겠다”며 스스로 나올 만큼 혹독했다.

-요주의 인물로 감시를 받거나 하지는 않으셨나요.
“범법 행위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노동자로 사는 것, 노동운동을 내 삶의 기초로 삼겠다는 것뿐이었으니 아무런 제재 없이 10년간 비교적 안전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초, 동료들과 함께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300명가량이 연행됐다. 2~3주의 구금과 고문. 그러나 이북과의 연관이 없었고 자생적 운동이었기에 혐의는 성립되지 않았다.

-어떻게 나오셨나요.
“이북과 관련된 일이 없으니까 사건이 성립이 안 됐어요. 이감되기 직전에 경찰들한테 농담으로 ‘실컷 패고 고문했으면 소주라도 한 병 사야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진짜로 통닭에 소주를 사 왔어요. (웃음) 사회주의 운동가 치고 소주랑 통닭 얻어먹은 건 저 처음 봤을 겁니다.” 석방 이후 그는 오랫동안 쌓아온 사상의 궤도를 틀었다.

-그 이후 생각이 바뀌신 건가요.
“사회주의라는 게 우리나라 현실에 맞지 않는구나, 지금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이익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세상이 많이 바뀌어 버린 거죠. 공과대학을 나왔으니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잖아요. 정상적인 사람으로, 사업가로, 기술자로 인생을 한번 살아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1981년, 대주교역의 문을 열었다. 창업 초기는 맨손이었다.
 
뱀탕 한 그릇으로 일본 기술 전수 

-어떻게 창업 자금을 마련하셨나요.
“고향(대구)의 두 친구가 자기 집을 담보로 해서 1000만원씩을 대줬습니다. 45년 전에 자기가 살던 집을 몽땅 담보 잡아서 줬으니 주는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마운 친구들이죠. 그리고 국민은행 지점장을 지낸 친구 형님이 경남은행에서 퇴임할 때까지 수십 년을 무조건 자금이 필요하면 다 쓰라며 도와줬습니다. 제가 살아남은 건 결국 친구들 덕분입니다.”

-제조업 허가 받기도 쉽지 않으셨죠.
“종로 바닥에서 제조 허가를 받을 수가 없었는데, 남영동에서 풀려날 때 어떤 분이 ‘세상에 나가면 어려운 일이 세 번 있을 텐데, 한 번은 내가 봐주겠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연락했더니 하루 만에 해결해줬습니다. 그렇게 약속을 지킨 거예요.”

이후 오류동 70평, 반월공단 150평으로 이사를 거듭하며 사업의 뿌리를 내렸다.

사업의 결정적 도약은 일본인 기술고문 구니미네 노보루 박사와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삼화콘덴서에 다니는 대학 동기가 “칩과 기판을 접합하는 실버 페이스트를 해보면 돈 벌 것 같다”고 귀띔해줬고, 그 공부를 하던 중 삼성전기 출신 부품 회사에서 뒤에서 조용히 일하는 노인을 발견했다. 삼성전기의 한 간부가 “저 사람을 꽉 붙들어라. 그러면 실버 페이스트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 선생님을 어떻게 설득하셨는지.
“그분이 근무하는 일본 회사를 몇 번이고 찾아가 기다렸습니다. 결국 감복하셨는지 자기 집에 데려가 부인까지 소개해줬어요. 이후 한국에 쉬러 오실 때 안내를 맡아, 부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까지 여행을 함께했습니다. 그때 민박집에서 밤에 구더기가 방에 기어 나와 부인이 엄청 놀라시기도 했지요.” 여기서 그는 뱀탕 일화를 들려주었다. “여행 중에 제가 뱀탕을 사 드렸는데, 처음엔 뭔지 모르고 맛있다며 드셨어요. 이후로 굉장히 좋아하셔서 수원의 한 뱀탕집까지 모시고 가곤 했는데, 어느 날 차 안에서 ‘이거 가짜 뱀이다. 좋은 뱀은 먹으면 1시간 내에 잠이 오는데, 잠이 안 온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그 인연으로 전도성 페이스트의 일본 최고 기술이 대주전자재료로 건너왔다. 구니미네 박사는 훗날 임 회장 큰딸의 결혼 축하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가 귀국 3일 만에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임 회장은 그 이후에도 박사 부인이 세상을 뜰 때까지 생활비를 보냈다.

전도성 페이스트와 태양전지 전극재료 등을 생산하는 대주전자재료의 현재는 이렇다. 지난해 매출 약 2500억원, 직원 약 350명, 등록 특허 135건(회사 홈페이지 게시 기준). 2024년 7000만 달러 수출 탑 수상. 국내에는 시흥 본사·제2공장과 새만금 제3공장(예정), 해외에는 중국 3개 법인(둥관·상하이·칭다오)에 베트남 법인, 그리고 올해 신설한 다롄 우주항공 합작법인까지.
 
“적자 나도 버린 공장 없어”

-회장님의 경영 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요.
“일시적으로 적자가 나거나 실패를 했다고 해서 기업을 폐쇄하거나 그 제품을 없애지 않고, 끊임없이 계속 투자하고 유지한 것이 제 특징입니다. 끈질기게 버티는 거죠. 대기업이 얼마나 무리하게 중소기업들을 대하는지 우리는 너무 잘 압니다. 그래도 그 업을 버리지 않았다는 거죠.”

-사람 쓰는 방식도 그런가요.
“공장이 적자가 났다고 해서 자르지 않고, 거의 다 유지하면서 관계를 좋게 하고 북돋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상이 됐습니다. 이익이 나면 상당 부분을 연구개발(R&D)에 재투자했고요.”

 배석한 임종찬(공업화학75) 연구소장 겸 부사장이 덧붙였다. “IMF 위기 때도 생산직은 줄였지만 R&D 직원들은 다 지키셨습니다. 한때는 생산직보다 연구 인력이 더 많은 시절도 있었어요.” 2011년부터 시작한 실리콘 음극재 R&D는 7년의 인고 끝에 2018년 첫 매출을 냈다. 대주전자재료의 행동 강령은 이렇다. ‘조직으로, 치밀하게, 집요하게, 창의로써, 대담하게, 즉시 행동한다.’ 

최근 임무현 회장은 서울대 총동창회에 장학금 10억원 기부를 약정하고 이 중 2억원을 먼저 쾌척했다.

-기부를 결심하신 동기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 재벌이나 중소기업 할 것 없이 돈을 벌면 쌓아두고 가족끼리 싸웁니다. 그게 사회가 발전하는 방식이 아니에요. 좋은 기술은 싸우면서 나오는 게 아니고, 사회에 환원하고 후진들이 기술을 진보시키는 데서 사회가 발전합니다. 기술을 발전시켜 나라가 잘 되려면 후진들을 양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입니다.”
 
나라 잘 되려면 후진들 양성해야

-총동창회에 기부하게 된 이유는요.
“한동안 투병하면서 서울대병원 주치의한테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인연이기도 합니다. 자식이 넷인데, 서로 싸우지 않고 사회에 힘이 되는 방향으로 교육을 시켜왔고, 지금도 그렇게 잘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부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우리 회사의 핵심 목표는 이제 우주 산업입니다. 스페이스X 같은 미국 우주 기업들과의 관계를 확실히 해서, 거기에 도움이 되는 소재를 공급하는 것입니다. 지금 둥관 공장에서 만든 실버 파우더가 다롄 합작 법인에 공급되고, 거기서 우주선 태양열 부품 소재로 쓰입니다. 우리나라가 잘 사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주 산업이 잘 되는 것까지 당연히 봐야지요.”

노동자로 살았던 청년이 탄생시킨 소재, 이제 지구 바깥을 향하고 있다. 85세의 임 회장은 그걸 두 눈으로 보겠다고 했다.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