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8호 2026년 5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김광석 ‘서른 즈음에’를 다시 듣다
김광석 ‘서른 즈음에’를 다시 듣다

김경락(정치96)
한겨레신문 전략기획실 부실장
50살 문턱에서 들으니 묘해
그때 서른살이 현 쉰살 아닐까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봄기운이 움튼 3월 어느 날 퇴근길. 마을버스 안 스피커에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흘러나왔습니다. 마흔살 넘어서부턴 찾아 듣지는 않던 노래입니다만 그날은 한 줄 한 줄, 한 음 한 음이 귀에 꽂히더군요. 유튜브를 열어 오랜만에 그의 쓸쓸하면서도 찬란한 목소리에 흠뻑 빠졌습니다.
울산에서 줄곧 자란 저는 서울로 대학 오면 꼭 하고 싶었던 바람이 있었습니다. 앳된 시절 저의 버킷리스트 맨 윗자락엔 ‘김광석 콘서트’가 줄곧 자리했더랬죠. 해질 무렵 어둑어둑해진 교실에서 노래를 종종 불러주던 친구는 저에게 서울로 유학 가면 꼭 김광석 콘서트에 함께 가보자고 했습니다.
이 약속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뤄질 수 없었습니다. 1996년 1월 8일 고려대에서 본고사(대학별 고사)를 치르고 나오던 길. 전봇대에 나붙은 김광석 콘서트 홍보 전단지를 볼 때만 해도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의 사망은 사흘 뒤 서울대 본고사를 치려고 서울행 고속버스에서 스포츠신문을 집어든 후에야 알아챘지요. 신문에는 고려대 시험일보다 이틀 앞서(1월 4일) 김광석은 유명을 달리했으며, 사인을 놓고 경찰이 수사 중이라는 소식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 때 느낀 충격과 뒤이은 낙담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50살 문턱을 갓 넘은 현재 ‘서른 즈음에’를 들으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서른살이란 젊은 나이에 청춘과의 이별이라니’. ’다 산 것 같은 저 감성은 치기 아닌가’와 같은 생각도 스쳐 갑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 때’ 30살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 노래를 부를 당시 김광석의 나이와 작사/작곡가의 나이부터 찾아봤습니다. ‘서른 즈음에’는 김광석이 딱 30살이던 1994년 6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더군요. 노래가 완성된 시점은 이보다 이른 1989년이었습니다. 작사/작곡을 한 강승원이 30살이던 때죠.
치기 어린 감성이라고 치부해선 안된다는 느낌은 당시의 중위 연령을 파악하고 나서야 들었습니다. 1994년의 중위 연령은 28.9살, 1989년 중위 연령은 이보다 낮은 26.4살이었습니다. 인구 사회학 관점에서 정점이 지난 나이에 ‘서른 즈음에’를 김광석은 불렀고 강승원은 노랫말을 썼습니다. 오늘날 중위 연령은 46.7살입니다. 그 때의 서른살 감성은 오늘날 오십살의 그것과 비슷하지 않겠냐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그러고 보니 오늘날 50·60세대가 20대일 땐 오늘날 20대가 마주한 세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실업률은 낮았고 경제성장률은 높았습니다.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은 지금보다 크게 낮았지요. 취업 걱정은 덜 해도 됐고 부를 늘릴 수 있는 기회는 많았다는 얘기입니다. 대학 진학률이 50%가 채 되지 않은 시절이었으니 대학생은 더 많은 기회를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사회가 대학생에 거는 기대도 컸습니다. 대학가 곳곳에 시대와 민족, 국가의 운명이나 지성인의 사명 같은 무거운 주제로 고뇌하는 이들이 즐비했던 건 그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많았던 만큼 사회적 책무감도 컸던 셈이지요.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서른 즈음에’도 이전과는 달리 다가왔습니다.
내친 김에 작은 다짐을 해봅니다. 기회를 듬뿍 누렸던 제 20대를 잣대 삼아 오늘날 20대를 섣불리 재단하지 않기로.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실업률이 높은 시대에 분투하는 오늘날 젊은 영혼들을 아낌없이 응원하자고. 얼마간은 그들에게 미안해하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