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8호 2026년 5월] 문화 나의 취미
“사건보다 사람이 흥미롭죠” 홈즈와 20년째 지내는 중입니다
읽고 모으고 번역하는 셜로키언, ‘바스커빌가의 사냥개’40권 모아
“사건보다 사람이 흥미롭죠” 홈즈와 20년째 지내는 중입니다

최파일(언론정보97) 번역가
읽고 모으고 번역하는 셜로키언
‘바스커빌가의 사냥개’40권 모아
한 사람을 오래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한 인물을 향한 애정은 어느새 책장 몇 칸을 넘어 하나의 작은 세계가 됐다. 영문 원서와 번역본, 아동용 판본, 만화책, 주석본, 파스티시와 비평집까지. 최파일(언론정보97·사진) 번역가의 서가에는 셜록 홈즈가 산다.
“처음에는 홈즈 시리즈를 여러 판본으로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다 보니 희귀본과 절판본, 헌책방 책들까지 관심이 넓어졌습니다.” 책 이야기가 시작되자 그의 목소리는 한층 밝아졌다. “이건 꼭 이 판본으로 사야 했다”, “이 표지는 이제 안 나오니까 모아야 한다”는 설명이 책마다 따라붙었다. 그에게 셜록 홈즈는 읽고 끝내는 고전이 아니라, 다시 읽고 모으며 오래 곁에 두는 즐거움이다.
그와 홈즈의 첫 만남은 초등학생 시절. 단편 몇 편이 묶인 아동용 책으로 처음 접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빠져든 것은 성인이 된 뒤다. 2006년 무렵, 우연히 코난 도일을 다룬 BBC 드라마를 본 것이 계기였다. 그는 “코난 도일이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책을 읽게 된 것이 홈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가 셜록 홈즈에 끌리는 가장 큰 이유는 ‘사건’보다 ‘사람’에 있다. “당연히 캐릭터죠. 이보다 더 훌륭한 캐릭터가 나올 수 있을까 싶어요.” 홈즈 시리즈는 추리의 구조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탐정이라는 인물을 전면에 세운 작품이다. 최 동문은 “홈즈는 모든 것을 척척 알아내는 초인적인 인물이지만, 동시에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인간적인 결핍도 지닌 현대적인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완벽해 보이지만 결코 평면적이지 않은 인물, 비범함과 불안정함을 함께 지닌 입체적 캐릭터라는 점이 오늘날까지 홈즈를 살아 있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왓슨에 대한 애정도 빼놓을 수 없다. “홈즈 없는 왓슨도, 왓슨 없는 홈즈도 말이 안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 주는 관계죠.” 왓슨은 사건을 기록하는 관찰자이자 독자의 눈높이를 대신하는 인물이다. 홈즈가 비범한 시선으로 세계를 읽어낸다면, 왓슨은 평범한 인간의 감각으로 그 비범함을 받아낸다. 최 번역가는 이 관계를 “버디물의 정석”이라고 표현했다.
애정은 자연스럽게 수집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모은 셜록 홈즈 관련 책은 430여 권. 셜록 홈즈 원전의 다양한 판본은 물론, 후대 작가들이 홈즈와 왓슨을 주인공으로 새롭게 쓴 파스티시, 관련 평전과 비평서, 팬클럽에서 펴낸 동인지 성격의 책들까지 포함된다.
그의 수집 목록에는 1992년 나온 옥스퍼드 셜록 홈즈 하드백 시리즈, 펭귄 북스의 여러 판본, 1920년대 코난 도일 관련 도서, 1940년대 셜록 홈즈 팬 출판물 등 오래된 책들이 여럿 있다. 판형과 표지, 삽화가, 출판사, 주석과 해설, 출간 시기까지 책마다 다른 맥락이 있다. 그는 “내용은 같아도 판본마다 책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다르다”고 말한다.

하루 한 장씩 이어가고 있는 영어 원문 필사 노트.

하루 한 장씩 이어가고 있는 영어 원문 필사 노트.
셜록 홈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도 있다. ‘셜로키언’이다. 홈즈와 왓슨을 오래 사랑해온 독자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홈즈의 매력을 글로 쓰고, 퀴즈를 만들고, 후대 작가들이 홈즈를 주인공으로 한 새로운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최 번역가의 서가에는 이런 셜로키언 문화의 흔적도 적지 않다. 미국의 대표적인 셜록 홈즈 팬클럽인 ‘베이커 스트리트 이레귤러스’ 관련 책, 1930~40년대 팬들이 쓴 에세이와 팬픽션을 모은 책도 있다. 그는 이를 두고 “선배 셜로키언들의 덕질의 역사”라고 했다.
특히 아끼는 책으로는 처음으로 모은 옥스퍼드 셜록 홈즈 시리즈를 꼽았다. 또 ‘바스커빌가의 사냥개’는 단일 작품으로만 40권가량 모았다. 그만큼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는 무서워서 밤잠을 설치게 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판본을 모으게 했으며, 최근에는 직접 번역까지 하게 됐다. 문학동네에서 ‘바스커빌가의 사냥개’ 번역 의뢰를 받았을 때 그는 기뻤지만, 동시에 새삼 문학 번역의 어려움을 느꼈다. 역사책 번역과 달리 대화와 분위기를 살려야 했기 때문이다. “예스러운 느낌을 살리면서도 요즘 독자들에게 너무 낡게 들리지 않게 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번역은 그에게 홈즈를 다시 읽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팬으로 읽을 때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갔다면, 번역가로 읽을 때는 한 문장 한 문장을 뜯어보게 됐다. 그는 코난 도일의 문장에 대해 “간명하고, 빙빙 돌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편에서는 밑밥을 길게 깔지 않고 빠르게 전개해 마지막 반전으로 독자를 끌고 가는 힘이 돋보인다고도 했다. 좋아하는 작가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그는 필사도 시작했다. 2024년 1월부터 영어 원문으로 홈즈 시리즈를 하루 한 장씩 써 내려가고 있다.
처음 홈즈를 읽는 독자에게는 무엇을 권할까. 그는 먼저 ‘주홍색 연구’를 권했다. 홈즈라는 캐릭터가 처음 등장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장편으로는 ‘네 사람의 서명’과 ‘바스커빌가의 사냥개’를, 단편집으로는 ‘셜록 홈즈의 모험’과 ‘셜록 홈즈의 회상’을 추천했다.
그에게 셜록 홈즈는 한때 읽고 지나간 고전이 아니다. 서가에 꽂힌 430여 권의 책은 한 인물을 향한 오래된 애정의 기록이자, 한 독자가 셜로키언으로 살아가는 방식의 증거다. 사건은 책 속에서 끝났을지 몰라도, 그의 책장 속 베이커가 221B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이정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