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8호 2026년 5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직원 1900명 중 1000명의 이름과 얼굴을 다 압니다”
기술로 농업 현장 문제 해결 연구직 1200명 중 박사만 800명, 마늘·양파·고추 등 8대 작물 2027년까지 생산 전 과정 기계화, 기상 조기경보 서비스 세계 최고 K-농업기술로 79개국과 협력
“직원 1900명 중 1000명의 이름과 얼굴을 다 압니다”

농촌진흥청 첫 연구직 출신 청장 이승돈(식물병리86) 동문
기술로 농업 현장 문제 해결
연구직 1200명 중 박사만 800명
마늘·양파·고추 등 8대 작물
2027년까지 생산 전 과정 기계화
기상 조기경보 서비스 세계 최고
K-농업기술로 79개국과 협력
4월 하순 전북 전주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 청사 일대는 연둣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완전한 초록이 되기 전 연둣빛은 봄이 한창임을 알렸다. 이승돈(식물병리86) 농촌진흥청장은 “우리 직원들이 순수한 이유가 있다”며 웃었다. “연구 대상이 항상 녹색이기 때문”이란 뜻이다. 제주 서귀포에서 감귤 농사짓는 집에서 자라 서울대 농생대에 입학하고, 연구사 공채로 농촌진흥청에 들어와 31년 만에 기관장 자리에 오른 그는 농진청 역사상 최초의 연구직 출신 청장이다. 공무원 1900명 중 1000명의 이름과 얼굴을 꿰고 있다는 청장을 만나 우리 농업의 현주소와 미래를 들었다.
-공채로 입직하셔서 31년 근무하셨지요.
“그렇습니다. 고시를 보지 않고 석사 마치고 공채 시험으로 연구사로 들어왔어요. 연구직으로 입직해 직장 다니면서 박사 학위를 마쳤습니다. 보통 저 같은 정무직은 대부분 고시 출신인데, 저는 연구직 출신으로 청장 자리까지 올라왔습니다.”
-연구직 출신으로는 이례적입니다.
“농촌진흥청은 기술관청입니다. 농식품부가 법령과 예산으로 정책을 편다면, 저희는 기술로 농업 현장의 문제를 풀어줍니다. 그렇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오래 근무하신 만큼 직원들도 잘 아시겠네요.
“우리 청 공무원이 1900명인데, 1000명의 이름과 얼굴을 다 압니다.”
-농촌진흥청을 정책기관으로 알고 있었는데 연구기관 성격이 강한 것 같네요.
“일반적으로는 다 정책기관이라고 생각하시죠. 저희는 ‘기술 정책’ 쪽입니다. 영문 명칭도 ‘Agriculture’가 아닌 ‘RDA(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예요. 농업진흥청이 아니라 농촌진흥청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본청에 연구정책국·농촌지원국·기술협력국, 3대 축이 있습니다. 연구정책국은 기술 개발, 농촌지원국은 기술 보급과 지역 확산, 기술협력국은 ODA 사업과 국제협력을 담당합니다. 현재 79개국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해외 기술 협력도 주요 업무인가요.
“몽골에서 40년간 시도해서 못 했던 벼 재배를, 저희가 3년 만에 성공시켰습니다. 몽골 대통령이 직접 왔어요. K-농업기술이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중동 사막에서 벼 재배도 성공했습니다.”
K-농업기술은 국경을 넘는다. 아프리카에서는 ‘K-라이스벨트’ 사업으로 7개국에 고품질 다수확 벼 우량종자를 보급 중이다. 2027년부터는 매년 1만 톤의 종자를 공급해 아프리카 3000만 명에게 식량을 제공한다는 목표다. 2025년 기준 종자 생산량은 목표치의 134%를 초과 달성했다.
-우리나라 농업기술은 세계적으로 어느 수준인가요.
“농업의 생산성과 기술력은 전 세계에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다만 농업 기반이 취약한 거죠. 우리나라 농경지는 국토 면적의 20%밖에 안 됩니다. 산림이 70%예요. 5000만 명을 먹여 살리는 데 현재 식량 자급률은 50%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 50%는 수입이에요.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에너지가 끊기듯, 식량도 스스로 안보를 지켜야 합니다. 쌀 같은 경우는 100% 국내 생산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쌀 재배 기술과 품종 개발은 한국과 일본이 세계 톱입니다. 스마트팜도 네덜란드가 세계 최고라고 하지만 저희 기술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농사를 짓기 어려운 현실에서 농진청의 해법이 궁금합니다.
“기계화와 첨단 기술 융합입니다. 벼 작물은 현재 기계화율이 99.8%입니다. 문제는 밭작물이에요. 마늘·양파·배추·무·감자·고구마·콩·고추 등 8대 밭작물에 대해 먼저 기계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것만 해도 밭작물 생산량의 70%가 됩니다. 기계화되지 않은 단계는 주로 파종·정식·수확 쪽입니다. 경운·방제 등은 이미 어느 정도 기계화돼 있고요. 양파 같은 경우 이미 100% 기계화를 완료했습니다. 내년까지 8대 작물 기계 개발은 모두 끝낼 계획입니다.”
-농기계 보급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규모 있는 농가는 직접 구입합니다. 소규모 농가는 농업기술센터나 농협의 농기계 임대사업소에서 저렴하게 빌려 쓸 수 있습니다. 시군마다 3~10개씩 임대사업소가 있어요. 국가 예산으로 기계를 사다 놓고 저렴하게 임대하는 방식입니다. 재미있는 게 기계만 개발한다고 끝이 아닙니다. 농업인들이 너무 부지런하고 머리가 좋아서 지역마다 심는 방식이 다 달라요. 8줄 심어야 하는 데서 12줄을 심는 경우도 있고. 그러면 기계가 안 맞아요. 그래서 저희가 재배 양식 표준화까지 했습니다. 몇 년에 걸쳐 농업인들을 일일이 불러 협의하고 타협했죠.”
-스마트팜은 초기 투자 비용이 크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스마트팜을 두 가지로 보셔야 합니다. 유리온실형 스마트팜은 천 평에 20억원 정도가 들어갑니다. 집 짓는 것과 똑같죠. 그런데 한국형 스마트팜은 대부분 비닐하우스 기반입니다. 스마트팜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훨씬 중요합니다. 시설 수준이 좀 낮더라도 거기에 맞는 소프트웨어 기술을 개발해서 단가를 4분의 1로 줄였습니다. 청년농이나 귀농인이 처음부터 20억원을 어떻게 투자하겠어요. 적은 비용으로 시작해서 수익을 내고, 나중에 본격적인 스마트팜으로 가는 거죠. 요즘 잘 만든 농산물은 수출도 되고 국내 가격도 나쁘지 않습니다.”
-로봇이 농작물을 수확하는 기술도 연구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딸기를 로봇이 따고, 토마토도 로봇이 따는 기술을 저희가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리퍼 기능’이라고 하죠. 피지컬 AI입니다. 저희 단독으로 하기도 하고 공대와 공동 연구도 합니다. 공대 연구자들이 농업에 들어오고 싶어도 농업을 몰라 무서워하고, 저희는 기계 기술이 무서운 거예요. 서로 무서운 사람끼리 만나니 통하는 겁니다.” 올해는 ‘AI 이삭이’를 농업 전 과정을 지원하는 박사급 AI 비서로 고도화하고, ‘AI 새싹이’를 통해 품종 육종 기간을 30% 이상 단축한다는 ‘농업과학기술 AI 대전환 프로젝트’도 본격 가동했다.
-기후변화 대응 기술은 어떤 것이 있나요.
“기후가 천천히 변하는 것은 저희가 충분히 준비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는 속도를 과거 대비 약 3배 올렸습니다. 2100년이 되면 국산 사과를 못 먹는다고 하지만, 저희는 기술로 먹여낼 겁니다. 빨간 사과 대신 노란 사과가 될 수는 있어요. 일교차가 줄면 빨간 착색이 안 되니까요. 지금 대구 쪽에서 이미 노란 사과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기후변화(Climate Change)가 아니라 이상기상(Weather Change)입니다.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가 골치 아프죠. 그래서 기상청 데이터를 가공해 ‘농업기상 조기경보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상청이 주는 5㎞ 격자 데이터를 30m×30m 격자 수준으로 세분화했습니다. 산지 계곡과 구릉 사이에도 온도 차이가 있으니까요. 기상청에서 5도라고 해도 특정 지형에서는 영하 1도가 될 수 있다는 게 계산으로 나옵니다. 이걸 4~5일 전에 농업인들에게 알림 서비스로 제공합니다. 이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저탄소·친환경 농업 기술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시죠.
“마른 논 써레질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기존에는 물을 댄 상태에서 써레질을 했는데, 마른 상태에서 써레질 후 물을 넣어도 똑같은 효과를 내는 기술이죠. 이렇게 하면 메탄 생성균이 사라집니다. 담수 조건에서 혐기성 세균이 메탄을 만들어내는데, 마른 상태에서는 산소가 들어가 메탄 생성균이 죽거든요. 이게 저탄소 인증으로 연결되고, 탄소 크레딧으로 돈도 됩니다. 비료도 기존에 100이 필요한 것을 기술로 70만 줘도 동일한 생산성을 낼 수 있게 개발했습니다.”
-축산 분야 연구도 하시나요.
“국립축산과학원이 있습니다. 품종 개량·사양 기술·이용 기술을 담당하고, 방역은 농식품부 산하 검역본부에서 담당합니다. 한우 예를 들면, 예전에 300~400㎏이던 한우가 지금은 최소 800㎏입니다. 1톤짜리도 많아요. 가까이 가면 무서울 정도입니다(웃음). 육질도 좋아졌죠. 사료를 어떻게, 어느 시기에 주느냐, 그게 다 기술입니다. 초음파 기기로 고기를 자르지 않아도 마블링 수준과 육질 등급을 측정합니다.”
-연구 인력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공무원 1900명 중 1200명이 연구직이고, 그중 800명이 박사입니다. 정부 부처 중 이렇게 학력이 높은 기관은 없을 겁니다. 회식 자리에서 ‘김 박사’ 하면 한두 명이 아니라 아예 고개도 안 돌립니다(웃음).”
-서울대와 협력은 어떻습니까.
“서울대 협력 사업이 많습니다. 저희는 공동연구 사업 예산의 80%를 외부 공모로 돌립니다. 내부 기관에는 20%만 줍니다. 뛰어난 연구자라면 누구나 응모할 수 있어요. 다른 부처는 외부끼리만 하지만 저희는 내부 연구기관을 연결시킵니다. 서울대 같은 경우 연구가 논문·특허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 내부 직원들이 그걸 가져와서 다시 활용합니다. 투자된 돈이 하나도 버려지지 않게, 논문과 특허로 끝나지 않고 농업 현장에서 체감 가능한 변화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 농촌진흥청 연구 시스템의 가장 큰 강점입니다. 정부 부처 어디에도 없고 농촌진흥청만 갖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 내 서울대 출신은 약 130명으로 전체의 약 7% 수준이다.
-서울대 후배들에게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다면.
“서울대 출신이 가장 많이 가 있는 곳이 대학 교수직입니다. 그래서 농진청 내 서울대 출신들도 주변 친구들 따라 논문·특허로만 끝내려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늘 말합니다. 농촌진흥청은 대학 교수와 다르다. 여기는 국립 연구기관이다. 개발된 기술은 반드시 농업 현장에 들어가야 한다고요. 논문이 나왔으면 거기서 끝낼 게 아니라, 어떻게 현장에 적용할 것인지 추가 연구를 하는 거죠. 이건 서울대 후배뿐 아니라 청 전체 직원들, 나아가 공동연구를 하는 대학 교수들에게도 똑같이 요구합니다. 논문·특허만 낼 거면 하지 마십시오. 연구재단에 가서 돈을 따십시오. 농촌진흥청은 응용 산업을 하는 곳입니다.”
-임기 중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임기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나가라고 하면 언제라도 나가야죠. 임기와 무관하게, 제가 나갈 때쯤 됐을 때 농업인들이 ‘농촌진흥청은 우리한테 필요한 기관이야’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를 직원들이 내면화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문화가 자리잡히면 청장은 가만히 있어도 직원들이 알아서 일을 합니다. 나가라고 할 때까지 그 노력을 계속할 겁니다.”
김남주 기자
이승돈 동문은
1967년생으로 제주제일고와 서울대 식물병리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식물병리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농업연구사 공채로 1995년 공직에 입문한 뒤 농촌진흥청 연구운영과 농업연구관, 국립농업과학원 기획조정과장, 농촌진흥청 연구정책과장, 국립농업과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 8월 농촌진흥청 청장에 부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