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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호 2026년 4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국민격을 다시 찾아

스페인에서 다시 느끼는 국격, 검소한 사생활·진선미 가치 추구
국민격을 다시 찾아
 
임효빈(화학공학65졸) 
전 대학신문 학생편집장
 
스페인에서 다시 느끼는 국격
검소한 사생활·진선미 가치 추구
 
1930년대 군주제와 공화제의 유혈대결속에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내전에 휘말리던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Ernest Hemingway의 명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 작가가 배역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썼다는 동명 영화의 두 주인공 게리 쿠퍼 - 잉그릿드 버그만이 라 만차(La Mancha)의 고도(古都) 톨레도(Toledo) 의 험악한 골짜기 게릴라전에서 벌이는 명연기를 보고 나면 아이러닉컬하게도 스토리의 무대 스페인의 황량하고도 대책없는 미래가 내다보이는 뒷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결국 내전 끝의 정국 혼란을 요리한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 독재 체제가 현실로 자리를 굳히면서 스페인은 제2차 세계대전에도 깊이 휘말리지 않고 국내적으로도 비교적 정치적 안정을 누리는 것 같아 보였지만, 1975년 그가 죽었을 때 40년 1인 철권정치가 남긴 것은 경제적 피폐 그리고 이에 따른 국민적 비전의 상실감뿐이었다. 

그러나 오늘 날, 수도 마드리드, 예술 스포츠의 중심 바르셀로나는 물론, 지방색이 유난히도 강한 이 나라 전국 구석구석을 눈여겨보라.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짙게 드리워져 있을 법한 근대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는 간 곳 없고, 오히려 콜럼버스 무리가 대서양을 건너 신세계로 향하던 대항해시대의 글로벌 마인드,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앞선 이슬람 왕조 시절 이래의 국민적 영화(榮華)가 지금 다시 재현되고 있는 듯한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그것이 오로지 1인당 국민소득의 5만불이 넘는 물질적 부유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분명한 사실은 오늘의 스페인은 아메리카에서 실어 온 금과 은이 넘치던 이사벨라 여왕의 나라도, 민족주의 이름아래 국민 정서를 말살시키던 독재자 프랑코의 그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알타미라 동굴 속에 1만년 후의 피카소를 예고하는 듯한 채색벽화를 남긴 마드렌느(Magdalene) 문화의 발상지, 여러 명의 로마제국 황제와 교황, AD 1세기 불세출의 철학자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를 배출한 고장, 북에서 쳐내려온 게르만족 서고트(Visigoth) 왕조를 거쳐, 지중해를 건너와 500년간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한 이슬람 왕국, 다시 기독교국가로의 통일,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으로 온 지구를 주무르던 흥망성쇠의 어지러운 역사를 살아온 나라 - 무엇보다도 2천년에 걸친,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의 정치적 문화적 갈등을 극복한 백성들이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수직적 수평적 다문화사회의 본보기를 보여준다. 

정열적이면서도 감정조절이 체질화된 듯한 스페인 사람들의 무뚝뚝해 보이는 표정 속에 감추어져 있는 참된 보배는 동키호테 같은(?) 동키호테 스토리도,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가우디(Antonio Gaudi)의 건축물도, 수많은 투우장이나, 훌라멩코 춤- 그런 유형(有形)의 것들이 아니라, 개인의 삶과 자유에 배타적일 정도로 충실하면서도 공공생활의 절대적 룰로 지켜지는 정직과 의리, 물질적 여유에 우선하는 검소한 사생활, 진선미의 가치를 추구하고 간직해 온 품격있는 국민성인 듯싶다. 망명왕가의 후안 카를로스(Juan Carlos)1세가 1975년에야 영국에서 돌아와 정체(政體)상으로는 왕정을 복고하면서도 민주공화정부와 자유시장경제체제의 후원자가 되어, 잃었던 국민의 긍지를 되살리고 민초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 선도자 역할을 그 아들 Felipe 6세가 아버지보다 더 발전시키고 있는 점 또한 스페인 국민에게 내린 하늘의 축복일 것이다. 독불장군이 아닌, 따뜻이 의지할 수 있는 국가지도자와 함께 살아가는 순박한 백성들의 행복한 애국심이여. 

겨레의 얼을 담아 애국가가 담긴 한국환상곡(Korea Fantasy)을 작곡한 안익태 선생이 고뇌 속의 30대 성숙기 몇 해를 스페인 땅에서 보낸 사연을 오늘의 화두에 두다 보면, 1970년대 거의 같은 시기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품고 다시 일어난 지구 반대편의 두 나라를 언뜻 비교하게 된다. 무엇일까? 온갖 어거지를 써서라도 ‘수천년 고분(古墳) 위에까지 개미집 같은 아파트를 짓고 살아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말 못할 연민이 문득 스치는 까닭은… 국격(國格)을 말하려거든 한사람 한사람 국민격(國民格)이 마땅히 우선해야 하는 것이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