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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호 2026년 4월] 뉴스 포럼

“현대전은 실제보다 사람들 머릿속에서 누가 이기고 있느냐 중요”

‘전쟁과 국제 정세의 변동’ 주제, 한국 방산 활용한 외교 펼쳐야
“현대전은 실제보다 사람들 머릿속에서 누가 이기고 있느냐 중요”

신범식 (외교85)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
 
‘전쟁과 국제 정세의 변동’ 주제
한국 방산 활용한 외교 펼쳐야

이준식(기계72) 제31대 총동창회장 취임 후 첫 공식 행사로 열린 수요특강이 4월 1일 마포 SNU장학빌딩 2층 베리타스홀에서 개최됐다. 

   이 회장은 이날 모임에 직접 참석해 참석자 전원에게 모닝 커피를 대접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80여 명의 동문이 강연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신범식(외교85·사진) 모교 사회과학대학장이 ‘전쟁과 국제 정세의 변동’을 주제로 1시간에 걸쳐 열강을 펼쳤다.

서울대에서 정치학 학사·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신 학장은 유라시아 정치, 러시아 외교안보, 에너지 국제정치 전문가다. 

신 학장은 강연 서두에서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명제 ‘전쟁은 무질서한 폭력이 아니라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다’를 인용하며 강연의 문을 열었다. 그는 “전쟁의 본질은 폭력성 자체가 아니라 국가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선택하는 수단으로서의 성격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대 전쟁의 특징으로 하이브리드전과 함께 최근 가장 주목받는 ‘인지전(認知戰)’을 강조했다. “실제 전장의 결과보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누가 이기고 있다고 인식되느냐가 훨씬 중요해졌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전쟁에서 출구를 모색할 때도, 사람들 뇌리 속에 ‘미국이 이겼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빠져나오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또한 현대 전쟁을 분석하는 데 있어 △국제 구조(강대국 경쟁·패권 경쟁) △지역(동맹·대리전·지역 패권 경쟁) △국내 정치(리더십·민족주의 동원)라는 세 가지 층위를 동시에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 학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단순한 양국 간 충돌이 아니라 ①러시아 대 우크라이나의 영토·주권 전쟁, ②러시아 대 서방(NATO·EU)의 국제질서 재편 전쟁, ③2014년부터 이어진 돈바스 내전이라는 세 겹의 전쟁이 동시에 전개되는 복합 구조로 규정했다.

그는 “푸틴은 단기간에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오판했고, 바이든은 강력한 경제 제재만으로 러시아를 주저앉힐 수 있다고 오판했다”며 두 지도자의 실책을 짚었다. 바이든 대통령 오판의 핵심으로는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을 꼽았다. 그는 “인도를 비롯해 아프리카, 중남미, 동남아의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러시아의 침략 전쟁을 규탄하면서도 경제 제재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이 국가들은 이제 미국과 서방, 중국과 러시아라는 두 세력이 충돌할 때 어느 한쪽의 의도를 좌절시킬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준 가장 확실한 국제질서 변화의 증거”라고 말했다.

전쟁 초기인 2022년 2월부터 3월 사이, 양국 대표가 벨라루스·튀르키예·이스라엘에서 7차례나 만나 휴전 초안까지 마련했으나, 바이든 대통령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끝까지 지원하겠다”며 젤렌스키를 독려하면서 협상이 무산되고 고강도 전쟁으로 전환됐다는 뒷얘기도 전했다. 현재는 미국의 지원 중단과 러시아의 협상 의지가 맞물리며  휴전 협정 체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나, 유럽이 지원을 지속하면서 협상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결말을 속단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현재 진행 중인 미국·이스라엘 대 이란 전쟁에 대해서도 같은 세 층위 분석을 적용했다. 신 학장은 “이란의 핵심 전략을 ‘수평적 확전’으로 규정하며 ‘저비용 드론으로 미국의 고비용 요격을 유도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으로 전쟁 비용을 중동 전역으로 분산시키는 방식으로 미국을 장기 수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딜레마에 대해서는 “지상군 없이는 정권 교체가 불가능하고, 지상전에 나서면 이라크 전쟁의 악몽이 재현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현재 하루 20억 달러에 달하는 전비를 쏟아붓고 있으며, 불과 한 달여 만에 우크라이나 전쟁 4년치 지원액에 육박하는 비용을 지출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33%까지 떨어진 상황을 들어 “미국 국내 정치가 장기전을 감당할 여건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그는 핵·미사일 시설 파괴 등 소정의 성과를 거둔 뒤 승리를 선언하고 철수하는 ‘타협적 출구 전략’이 가장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라고 전망하면서도, “이란 역시 자신들의 성과를 부풀려 선전할 것이기 때문에 인지전의 결말을 예단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신 학장은 마지막으로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을 짚었다. 원유·가스 해외 의존도 95%, 중동 경유 원유 수입 비중 60~70%에 달하는 구조적 취약성을 지적하면서도, 원전·수소·재생에너지 포트폴리오 강화와 핵심광물 공급망 다변화, K-방산 수출 확대 등에서 성과가 축적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K2 전차, FA-50 경공격기, 천무 다연장로켓 등 K-방산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을 계기로 세계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특히 KF-21 전투기 엔진 공동 개발을 미국이 제안해 온 사실을 언급하며 “F-35 개발 당시 한국을 배제했던 미국이 이제 한국과 차세대 전투기 엔진을 함께 개발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는 방산 분야에서 미국이 한국을 대등한 파트너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매우 큰 변화”라고 역설했다.

신 학장은 “냉전 시기에는 안보와 경제가 같은 방향으로 갔지만, 지금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두 가지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구도”라며 “공급망 다변화, 에너지 믹스 재편, 글로벌 사우스와의 외교 강화를 통해 전략적 자율성을 넓혀 나가는 능동적 중간국 외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위기이자 기회의 시기”라며 “한국이 가진 강점이 세계의 위기 속에서 오히려 빛을 발하고 있다. 비관할 이유가 없다”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해 참석 동문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