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6호 2026년 3월] 오피니언 추억의창
서울대입구역 호프집에서 아시아를 논하다
서울대입구역 호프집에서 아시아를 논하다

임명묵
(아시아언어문명13)
칼럼니스트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전격 침략하며 재앙과도 같은 전쟁이 찾아왔다. 전 세계의 눈이 이란에, 그리고 이란이 틀어막은 ‘세계의 식도’ 호르무즈 해협에 쏠려있다. 나는 나름 이란 전공자라고 할 수 있다. 인문대학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서아시아 지역을 전공했고, 같은 대학원에서 이란과 인접한 아제르바이잔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썼다. 최근에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을 중심으로 이란 현대사를 계속 연구 중이다. 그래서 최근에 전쟁의 향방과 이란의 미래를 묻는 연락을 굉장히 많이 받고 있다.
석사급 연구자인 나에게도 연락이 많이 온다는 것은 한국의 이란학 토양이 참으로 척박하다고는 증거일 테다. 중동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주로 번영하는 걸프 아랍국가에 치중돼있다. 이란 핵문제와 대미 외교를 둘러싸고 정치학, 국제관계학 등이 관여하지만, 이란인들의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깊이까지 사람들이 관심을 쏟지 않는다. 하지만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의 폭사에 분노해 중동에 복수 혈전을 감행하는 이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문학과 지역학에 기반한 접근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대학원까지 공부를 계속하며 이란학 연구자로 훈련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내 지적 여정에서 참으로 커다란 행운이었다. 내가 병역 의무를 마치고 복학했을 때 우리 학과에 이란 출신 시야바시 사파리 교수님이 부임을 해오셨다. 혁명의 시대에 태어난 젊은 학자인 사파리 교수님은 이란인의 심성, 역사의 무게를 이슬람과 중동의 넓은 맥락과 함께 알려주셨다. 이런 뛰어난 젊은 이란인 학자 밑에서 5년 이상 수학할 수 있었기에, 나는 이란을 ‘야만적 신정 체제’를 넘어서는, 인간이 사는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일러스트 김나은(디자인17) 그래픽 디자이너

일러스트 김나은(디자인17) 그래픽 디자이너
동료들의 역할도 무척 컸다. 우리 학과 대학원에는 정말이지 다양한 관심사를 다루는 학생들이 마치 ‘전우’처럼 뭉치는 문화가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서울대입구역의 맥주집으로 향해 일본, 인도, 카타르, 이란, 중국 등 아시아의 광대한 공간과 장대한 시간을 소재로 끝도 없는 토론을 벌였다. 열띤 토론이 새벽 5시까지 이어질 때도 많았다. 교수님과의 대화, 동료들과의 토론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내가 기고하는 모든 글에는 그들의 관점이 알게모르게 살아숨쉬고 있다. 아마 우리 학과가 다른 학과처럼 고도로 전문화된 연구 분위기를 가졌더라면, 이 드넓은 아시아를 모두 시야에 넣는 학생들의 끈끈한 연대가 만들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각자의 시선은 달랐지만 우리 대학원생들의 문제의식에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아시아는 인공적 구성물이 아니라 분명한 근거가 있는 하나의 실체다. 둘째, 아시아를 바라볼 때는 ‘아시아인의 시선’으로 접근해야만 한다. 셋째, 서구의 시대가 저물고 있기에, 아시아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는 한국의 장래 생존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이는 학술적으로 체계화된 논증보다는 치기 어린 젊은 연구자들의 선언에 가까웠지만, 나는 내 동료들과 나누었던 이 생각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를 저술했는데, 러시아를 일종의 ‘아시아 국가’로 간주해 그 역사와 세계관을 분석한 책이었다. 나는 현재 전개되는 이란과의 전쟁도 나와 동료들의 시각이 적확하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입증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13학번인 나는 2013년에 개설된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의 1기생이다. 학과가 개설된 지 13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사회에서 학과 소개를 할 때는 ‘신생 학과라서 잘 모르실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여야 한다. 바라건대 우리 동료들과 후배들이 아시아의 시대를 맞이해, 한국인들이 모르는 아시아의 진면목을 더욱 진지하게 연구하고 한국 사회에 더 적극적으로 공유해줬으면 한다. 서울대입구역 인근에서 나누었던 우리의 대화가 한때의 술안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위기의 시대에 한국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적 인프라로 발전했으면 한다. 그때가 되면 ‘아시아… 어디라고요?’ 같은 질문을 더는 듣지 않아도 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지적으로 가장 전위적이고 제각기 풍부한 인생 경험을 지닌 동료들과, 인문대 5동에서 매일같이 토론할 수 있던 행운을 준 서울대학교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 보답하는 길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오늘도 참혹한 전쟁의 현장을 분석하며 역사의 깊이를 읽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