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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6호 2026년 3월] 문화 나의 취미

“시계는 저보다 오래 살 물건이라 애착이 가요.”

취미로 시작한 시계 거래,  명품시계 플랫폼 창업으로
“시계는 저보다 오래 살 물건이라 애착이 가요.”


유호연(조경지역시스템22) 왓타임 대표
 
 
취미로 시작한 시계 거래 
명품시계 플랫폼 창업으로'

시계는 단순히 시간을 보는 도구일까. 기계식 시계를 분해해 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작은 톱니와 스프링, 밸런스 휠이 맞물리며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1초씩 쪼개 눈앞에 드러낸다. 중력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오래된 시계는 수리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시계를 오래 다루다 보면 ‘시계가 아프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쓰게 됩니다.”

스마트워치가 심박수와 수면까지 관리하는 시대다. 시간을 확인하는 일은 휴대전화만 있어도 충분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기계식 시계에 매혹되는 이유는 뭘까. 답을 듣기 위해 종로5가 ‘왓타임’ 사무실에서 유호연(조경지역시스템22·사진) 대표를 만났다.
유 대표가 처음 시계를 산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IT 블로그를 운영해 번 돈으로 스위스 브랜드 티쏘 시계를 샀다. 가격은 12만 원 정도였다. 몇 년간 차던 시계가 고장 나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고 시장에 내놓았다. 고장난 상태였지만 프리미엄이 붙어 팔렸다. 그는 그때 처음으로 시계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오래 남는 물건의 매력에 더욱 빠져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옷이나 장난감처럼 금세 사라지는 물건에는 큰 애착이 가지 않았다. 반면 시계는 달랐다. 잘 만든 시계는 오래 사용할 수 있고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도 있다. 그는 “변하지 않는 가치의 매력을 어린 나이에 직감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며, “AI로 많은 것이 빠르게 바뀌는 시대일수록 불변하는 가치에 중요성에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취미는 자연스럽게 안목으로 이어졌다. 유 대표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수십 종의 시계를 사고팔았다. 브랜드와 모델, 가격 흐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온 뒤 바로 시계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IT 분야 창업을 고민하기도 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투자 심사 과정에서 들은 한마디였다. “창업은 어른의 세계다.” 학생 창업이라는 이유로 봐주는 시장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는 그 말을 ‘나만의 무기를 찾아야 한다’는 조언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오래 좋아했고 누구보다 잘 아는 분야가 시계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종로의 시계 명장들을 찾아갔다. 기계식 시계를 완전히 분해해 세척하고 다시 조립하는 ‘오버홀’ 과정과 감정법을 배웠다. 그는 “시계를 팔려면 시계를 파는 어른만큼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호연 대표가 소장하고 있는 기계식 시계들. 까르띠에·롤렉스·파텍필립·태그호이어·지라르페르고 등 다양한 시계를 만나며 안목을 키워왔다.


기계식 시계의 구조는 정교하다. 내부의 밸런스 휠과 스프링이 시간을 일정하게 나누고, 그 움직임이 톱니바퀴를 통해 분과 시로 전달된다. 손목의 움직임으로 로터가 돌아가 에너지를 축적하기도 한다. 그는 “시계는 거대한 시간이라는 에너지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단위로 나누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시계의 세계는 생각보다 깊다. 시간을 소리로 알려주는 ‘미닛 리피터’, 윤년까지 계산하는 ‘퍼페추얼 캘린더’, 중력 오차를 줄이는 ‘투르비용’ 같은 복잡 기능도 존재한다. 그는 이런 기술이 집약된 브랜드로 파텍 필립을 꼽았다.

현재 유 대표가 운영하는 테이밍랩은 중고 명품시계를 해외 바이어에게 연결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매입한 시계를 일본, 중국, 홍콩, 미국 등 해외 사업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이다. 국가별 시세 차이를 활용한다. 지난해 매출은 70억원, 올해 목표는 200억원이다.

그러나 그에게 시계는 사업 이전에 취미다. 가장 아끼는 시계는 시장 가치가 높은 모델이 아니라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태그호이어다. 그는 “가격보다 시간이 담긴 물건이라는 점에서 가장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시계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새 제품보다 중고 시계를 권한다. 사고팔아 보는 경험을 해보면 시계를 사치품이 아니라 자산의 한 형태로 이해하게 된다는 이유다.

그는 시계를 “자신을 가장 빠르게 설명해주는 대상”이라고 말한다. “중학교 때부터 시계를 좋아해 계속 파고들었고 지금은 시계 무역업을 하고 있다.”

혹시 서랍 속에 오래된 시계가 하나 들어 있다면 꺼내보자. 먼지를 털고 오버홀을 맡겨 보는 것도 좋다. 멈춰 있던 작은 기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질지 모른다. 송해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