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6호 2026년 3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북한 음악에 빠진 여섯 손가락 피아니스트
건국대 무역·인하대 로스쿨 거쳐, 장애학생 복지 위해서도 활약
북한 음악에 빠진 여섯 손가락 피아니스트
김 솔 음악학과 재학생

지난 1월 31일 서울대 음악대학 콘서트홀에서 열린 피아노 리사이틀 연주회 모습.
건국대 무역·인하대 로스쿨 거쳐
장애학생 복지 위해서도 활약
지난 1월 31일 모교 음악대학 콘서트홀에서 피아노 리사이틀이 열렸다. 어린 시절 SBS 스타킹 등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여섯 손가락 연주자 김 솔(음악학23입)이 그 주인공이다. 건국대 글로벌비즈니스학과 수석 조기 졸업,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중퇴 이후 서울대 음악학과(구 작곡과 이론전공)에 입학하며 화제를 모았다.
선천적으로 왼손이 없는 상지 지체장애인인 그에게 언론은 으레 극복 서사를 기대하지만, 2월 23일 만난 그는 단호히 선을 긋는다. 장애를 앞세운 동정심 자극이나 과도한 찬사도 거부하는 그는 과거의 관행에 갇힌 한국 언론의 천편일률적인 시선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부모님도 강조했고 저도 염두에 둔 말이 ‘장애인 치고 잘한다는 소리 듣지 말고 살자’였어요. 개인적으로는 ‘손 없는 거 치고 잘한다’라는 평가를 듣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늦깎이 음악학도의 길은 평탄치 않았다. 동기들 대부분은 예중, 예고를 거치며 음악이론 등과 상대적으로 밀접한 상태였다. 취미로 피아노를 연주할 때는 감각에 의존했지만, 학문으로서의 음악은 달랐다. “지식이 없다 보니까 처음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기본적으로 좋아하니까. 음악학이 잘 맞았고 강사 선생님들과 교수님들도 잘해 주셔서 버틸 수 있었죠.”
그는 직접 빈틈을 찾아 공간을 넓혔다. 학·석사 연계 과정이 음악학과 내규에는 존재했으나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확인한 그는 음악학과 학과장(서정은 교수)을 찾아가 개설을 요청했다. 2025년 6월, 마침내 본부에서 개설 승인이 완료된 이후 그는 소정의 절차를 거쳐 이 과정의 첫 선발자가 됐다.
교내 동아리 활동에서도 그의 적극성이 엿보였다. 서울대 중앙피아노동아리 ‘SNUPia’에서 회장직을 수행하던 시기, 그는 동아리의 전반적인 체계와 재정 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대외 교류를 확대하는 등 더 큰 도약을 위해 힘썼다. 그는 “동아리 활동을 단순한 여흥으로 보지는 않았다”면서 “여러 성취를 통해 다양한 기회를 확보해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밝혔다. 다만, 그 과정에서 성과에 대한 일종의 과욕으로 동아리에서 마찰을 겪기도 했던 그는 더 겸손한 자세로 배워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체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음악학과 7학기에 접어든 그의 연구 종착지는 북한음악학이다. 음대에서도 조금은 생소한 분야다. 왜 하필 북한음악학일까. 우연이 아니다. 과거의 궤적과 학문적 갈증이 교차한 지점이다.
“건국대에서 학과명과는 달리 중국지역학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중국을 배우다 보면 북한을 약간은 배울 수밖에 없어요. 아울러 어릴 때부터 북한 사회나 프로파간다, 동구권 전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남들이 걷지 않는 길을 향한 연구자의 열망도 컸다. 독특한 주제를 찾던 그에게 북한음악학은 최적의 학문이었다. 현재 그는 학부 논문으로 김정일의 ‘음악예술론’을 다루고 있다. 과거의 경험은 든든한 무기가 됐다. “연구자로서 특색 있는 걸 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죠. 북한음악학은 이제껏 제가 거쳤던 것들에 대한 도달점 같아요. 북한 문헌은 우리가 안 쓰는 한자어가 꽉 차 있어요. 한자를 잘 아는 편이고, 중국학을 배웠고, 그러다 보니 북한에서 쓰는 중국식 어휘나 정치적 단어들이 바로 이해가 되는 거죠. 국악과 서양음악, 각종 북한의 정치사상이 섞여 있는데, 이전의 경험이 없었다면 아무리 공부하더라도 쉽게 이해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는 북한 체제를 비판하면서도, 지피지기는 백전불패라는 고사성어를 언급하며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외국에 북한의 정치나 사회, 경제를 다룬 연구는 많지만 문화, 예술 연구는 부족합니다.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한국인만큼은 느끼지 못해서 그런 것이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예술이 북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큽니다. 예술 분야도 잘 알아야 대북정책 수립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김 솔 씨는 20여 년간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은 채 연주와 학업을 병행하면서 현재 척추 등이 크게 틀어져 극심한 통증을 달고 산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손이 없고 상대적으로 짧은 왼팔을 오랫동안 오른팔과 몸에 무리가 가는 방식을 통해 억지로 맞춰왔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당분간은 건강을 관리하면서 학부 졸업 논문 작성에 몰두할 계획이다. 그는 “제가 진학 상담을 해준 장애인 후배들이 많아요. 힘들어도 계속 일어나 걸어야 해요. 제가 장애인 학생들에게 일종의 선례가 된 것도 있으니까. 좀 쉬고 제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가야죠. 사회가 나한테 해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부채 의식을 가지고 있거든요”라며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봐 줄 것을 당부했다. 김남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