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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호 2026년 2월] 오피니언 논단

피지컬 AI, 대한민국 재도약의 ‘천재일우’

피지컬 AI, 대한민국 재도약의 ‘천재일우’

윤의준(금속79) 
서울대 재료공학부 특임교수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인공지능(AI)의 거센 파고가 위협적이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AI 기술은 산업을 넘어 우리 삶의 양식까지 송두리째 바꿀 태세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AI가 가진 파괴적 잠재력을 전 세계 그 누구보다 먼저, 가장 가까이서 목도한 특별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정확히 10년 전인 2016년 3월, 서울 광화문 모 호텔에서 열린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의 역사적 대국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당시 사전 인터뷰와 언론의 예측은 인간의 무난한 승리를 점쳤으나, 결과는 알파고의 4대 1 완승이었다. 이는 AI가 우리에게 던진 첫 번째 거대한 충격이었다. AI가 몰고 올 문명사적 변화의 서막을 현장에서 가장 먼저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를 깊이 되새겨 남보다 먼저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2022년 말, 인류는 생성형 AI라는 두 번째 거대한 파도를 맞이했다. 오픈AI의 ‘챗GPT(ChatGPT)’로 대변되는 이 변화는 텍스트를 넘어 음성, 영상까지 이해하고 생성하는 멀티모달(Multi-modal) 시대로 진입했다. 이제 전문가들은 AI 에이전트를 넘어 범용인공지능(AGI), 나아가 인공초지능(ASI)의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견한다. 18세기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을 촉발하여 세상을 급변시켰듯이, AI는 인류 문명의 모든 것을 혁명적으로 재편할 것이 자명하다. 이 거대한 변화에 적응하는 국가는 번성할 것이요, 그렇지 못한 국가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의 중심에 AI가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딥마인드의 허사비스 CEO는 인터뷰에서 미·중 간 AI 기술 격차가 고작 몇 개월에 불과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급변하는 AI 생태계에서 몇 개월은 따라잡기 힘든 초격차일 수 있으며, AI의 핵심 인프라인 GPU와 HBM을 통제하는 미국의 기술 선도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긴박하게 돌아가는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대한민국은 어떻게 응전해야 하는가? 다행히 현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AI의 문명사적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이를 핵심 국정과제로 채택하여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내각과 대통령실에 기업 출신의 AI 전문가들을 전진 배치했고,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를 신설해 컨트롤타워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특히 AI는 전 산업과 사회 영역에 영향을 미치기에 부처 간 협업이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 17년 만에 과학기술부총리제를 부활시킨 것은 국가 연구개발 거버넌스 정립을 위한 의미 있는 결단이다. 

또한, 연구개발 투자의 효율성과 일관성을 높이기 위해 기획예산처와 과기정통부가 R&D 예산 협의회를 상설 운영하기로 한 점, 그리고 출연연의 오랜 족쇄였던 연구과제중심제도(PBS)를 폐지하여 국가 임무 중심 체제로 전환하고 비현실적인 예비타당성조사 제도를 폐지한 것은 고무적인 변화다. 

이제 우리는 시선을 사이버 공간 너머 ‘물리 세계(Physical World)’로 돌려야 한다. AI는 지금 모니터 속을 벗어나 로봇, 자동차 등 하드웨어와 결합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 단계로 무섭게 진입하고 있다. 가장 근접한 사례는 자율주행이다. 구글 웨이모는 이미 무인 로보택시를 상용화하여 주행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으며, 지난 1월 CES 2026에서 엔비디아는 완전 자율주행을 위한 혁신적 플랫폼 알파마요를 선보였다. 디지털 트윈과 결합해 센서 데이터를 언어 논리 구조로 변환, 운전 상황을 판단하고 설명하는 이 모델은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예고한다. 휴머노이드 로봇 경쟁 또한 뜨겁다. 과거 공중제비를 돌던 로봇을 넘어, 이제는 집안일을 돕고 인간과 공존하는 휴머노이드의 등장이 목전에 와 있다.

이러한 피지컬 AI는 산업 현장, 특히 제조업의 미래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구매, 물류, 생산 등 전 과정에 AI가 접목되면 효율성이 극대화될 뿐 아니라, 디지털 트윈을 통해 양질의 데이터를 생산하고 이를 다시 AI가 학습하는 선순환 구조가 완성되어 지능을 비약적으로 높이게 된다. 향후 한 나라의 제조업과 산업 경쟁력은 바로 이 피지컬 AI 수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산업통상부가 제조 AX(M.AX)를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목할 점은 이 분야야말로 대한민국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사실이다. 양질의 제조 데이터를 보유하면서 독자적인 AI 모델을 가진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조선 등 대한민국이 보유한 세계적인 제조 경쟁력은 피지컬 AI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강력한 무기다. 

알파고의 충격은 놓쳤을지 모르나, 피지컬 AI라는 더 큰 파도가 우리 앞에 와 있다. 대한민국에게 찾아온 이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도약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이제는 국가적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