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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호 2026년 2월] 문화 맛집을 찾아서

흑백 요리사 ‘4평 외톨이’…외롭기는요, 바빠요 바빠 

서촌 골목 안쪽에 작은 식당 “오로지 한국 술·공예·재료만 써”
흑백 요리사 ‘4평 외톨이’…외롭기는요, 바빠요 바빠 
 
김상훈(AMPFRI 45기) 
독도16도 대표


김상훈 독도16도 대표가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서 음식을 만드는 모습. 사진=넷플릭스

서촌 골목 안쪽에 작은 식당 
“오로지 한국 술·공예·재료만 써”

서촌 골목 안쪽, 예약 없이는 들어서기 어려운 작은 식당이 있다. 가게 이름은 ‘독도16도’. 문을 열고 들어서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각종 전통주가 진열된 냉장고. 김상훈(AMPFRI 45기) 쉐프는 혼자 운영하는 이 공간에서 식사는 ‘주안상’이라는 단어로 시작된다. 술을 중심에 두고 음식이 곁들여지는 상차림이 이 집의 정체성이다. “독도16도는 한국 술과 함께 즐기는 주안상을 하는 곳입니다. 한국의 술, 한국의 재료, 한국의 공예를 이 공간에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의 설명은 담백하지만, 이 집의 방향은 분명하다.

최근 그는 넷플릭스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서 ‘4평 외톨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해 1라운드를 통과하며 주목을 받았다. 4평 남짓한 공간에서 혼자 식당을 꾸려온 자신의 시간을 그대로 꺼내 든 이름이다. 방송 이후 가게를 찾는 발길도 늘었지만, 김 동문은 이를 새로운 출발이라기보다 지금까지 해온 시간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로 받아들인다.

김 동문이 이 길을 택하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그는 스스로를 “한국적인 것이 좋아서 빠져든 사람”이라고 말한다. 해외 경험이나 유학을 통해 한국성을 발견했다기보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며 자연스럽게 쌓인 감각에 가깝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적인 걸 추구할 수 있다는 게 저는 너무 좋았어요.” 일상 속에 늘 있었던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처음부터 지금처럼 정제된 형태의 매장은 아니었다. 조리복 매장 운영과 식당 일을 병행하던 시기에는 새벽 네 시에 시장을 나가 생선을 고르고, 낮에는 옷 작업을 하고, 다시 저녁 장사를 준비하는 생활이 반복됐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그때는 장사라기보다 그냥 밥이라도 제대로 먹으면서 이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고 말한다. 예약이 조금씩 차기 시작했고, 손님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그는 비로소 요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의 12평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고, 어느덧 5년 차를 향해 가고 있다.

현재 독도16도의 코스는 4가지, 해산물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생선과 해산물은 이 집의 맛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재료다. 그는 “해산물, 특히 생선은 다른 재료보다 ‘살아 있다’는 느낌이 더 분명하게 전해진다”고 말한다. 조리는 과하지 않다. 대신 재료의 결, 온도, 질감이 섬세하게 조율된다. 그는 이를 ‘직관적인 맛’보다는 ‘재료의 맛’이라고 표현한다. 과한 양념 없이 재료의 결을 살려낸다.

코스의 분명한 기준은 술이다. 이곳의 술은 단순한 페어링이 아니라 코스의 축이다. 음식에 맞춰 술을 고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술에 맞는 음식을 만든다. “정말 쓰고 싶은 술이 있으면, 그 술에 맞는 음식을 먼저 생각하게 돼요.” 전남 장성 해월도가에서 빚은 전통주 장성만리는 입 안에서 단맛과 산미가 천천히 번지고, 순창의 지란지교 양조장에서 만들어진 탁주와 약주는 신맛, 쓴맛, 떫은맛과 향까지 오감을 자극한다. 경산 비노캐슬에서 청수 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은 투명한 산도가 음식의 기름기를 정리해준다. 술마다 잔도 다르다. 정답이라기보다, 그 술이 가장 편안하고 온전히 전달되는 방식을 선택한 결과다. 처음 전통주를 접하는 손님들이 “한국에 이런 술이 있었냐”며 놀라는 순간은, 김 동문이 이 공간을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들기름 무침은 독도16도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메뉴다. 파주에서 압착한 생들기름을 사용하는데, 김 동문은 그 맛을 “확실히 다른 결”이라고 말한다. 일교차가 큰 지역에서 자란 들깨가 가진 향과 깊이가 요리의 중심을 잡아준다. 이 한 접시에서 독도16도가 말하는 ‘좋은 재료’의 기준이 분명히 드러난다. 김 동문에게 재료란 식재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장, 술, 그릇까지 모두 요리를 구성하는 재료다. 이 요소들이 주안상이라는 틀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때, 독도16도의 한 상이 완성된다.

음식 전체를 관통하는 인상은 ‘편안함’이다. 요리를 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은 의외로 단순하다. “먹었을 때 편안해야 한다”는 것. 과거에는 양이 많아 손님들이 끝까지 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는 그 경험을 통해 ‘많음’보다 ‘균형’을 선택했다. 음식의 순서와 양, 전체적인 흐름을 계속해서 조정해온 이유다. 손님이 몇 개월을 기다려 찾아오는 공간인 만큼, 부담보다 안도감을 남기는 식사를 지향한다.

독도16도 근처에는 김 대표가 운영하는 또 다른 공간 ‘독립식당’도 있다. 이곳의 주제는 술이 아닌 쌀이다. 한국 토종쌀을 중심으로 반상 차림을 선보이며, 술의 주안상과는 결이 다른 식사를 만든다. 두 공간은 닮아 있지만 분명히 다르다. 하나는 술의 흐름을, 다른 하나는 밥상의 구조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그의 고민이 나뉜 결과다.

김 동문은 독도16도를 두고 “참 좋은 가게로 기억됐으면 한다”고 말한다. 화려한 설명이나 강한 인상보다, 술과 음식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만족스러운 시간이 흘렀다는 기억. 독도16도는 술과 음식, 그릇과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시간을 조율한다. 이정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