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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호 2026년 2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종묘제례·판소리·김장문화·아리랑…세계 무형유산 등재의 숨은 공신

“무형문화 선진국인 한국에 세계 첫 관련 센터 세워야” 
종묘제례·판소리·김장문화·아리랑…세계 무형유산 등재의 숨은 공신

임돈희 (고고인류64) 
대한민국학술원회원·동국대 종신석좌교수
 
“무형문화 선진국인 한국에
세계 첫 관련 센터 세워야” 

대학 2학년이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집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사람들로 가득 찬 마당과 방 안에 북과 장구 소리가 울렸다. 함경북도 할머니들이 모인 굿판이었다. 아버지 임석재는 무당이 부르는 무가를 녹음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최초의 함경도 무가 채록이다.

한국 무형문화재 제도의 기틀을 세우고, 초대 무형문화재분과위원장을 지낸 임석재(경성제대 철학24·전 서울대교수)의 곁에서 자라며, 유산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지금 살아 움직이는 삶이라는 감각이 몸에 밴 순간이었다.

한국 무형문화유산 연구와 정책, 현장 경험을 집대성한 책 ‘유네스코와 한국의 무형유산 정책:한국은 무형유산 선진국’을 출간한 임돈희(고고인류64·사진) 교수를 만나기 위해 1월 말 약수동 자택을 찾았다. 

임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민속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로, 30년 넘게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국제 회의와 심사 현장에서 활동해 왔다.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단오제, 아리랑, 김치와 김장문화, 제주해녀문화 등 한국의 대표적인 무형유산 19건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오르는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

696쪽에 이르는 이 책은 수십 년간 유네스코 현장에서 보고, 듣고, 참여하며 축적해 온 시간의 기록이다. 5년 전 작고한 남편 로저 L. 자넬리(Roger L. Janelli) 교수와 함께 쌓아 온 연구 성과를 토대로, 무형문화유산 정책에 관여한 공무원과 학예연구사, 현장 연구자 등 다양한 직군의 전문가들에게 직접 기고를 요청해 엮었다. 개인 연구를 넘어 한국 무형유산 정책의 형성과 변화를 함께 겪어온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한국은 무형유산 선진국입니다. 이 점을 알리려고 집필했습니다.”

한국의 무형유산 정책은 2003년 유네스코 협약보다 40여 년 앞서 실시됐으며, 협약을만드는 데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김치가 공동체 문화라는 점, 해녀가 생업을 넘어 자연·여성·공동체의 삶이라는 점, 아리랑이 지역 민요를 넘어 한국인을 하나로 묶는 상징이라는 점 등 그가 국제사회에서 설득해 온 논의들을 정책의 언어로 정리했다.

동시에 어떤 기준과 관점으로 무형유산을 보호하고 활용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까지 제시하는 종합 정리판이다.

그의 문제의식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 사례가 아리랑 등재 과정이다. 지역별 아리랑을 따로 올리는 대신, 그는 ‘변이와 확산 자체가 유산의 본질’이라는 유네스코 정신에 따라 모든 아리랑을 포괄하는 방식을 택했다. 

“무형유산은 전시하면 죽습니다. 살아 있게 하려면 사람들이 몸으로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임 교수는 무형유산을 현재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쓰이고 변주돼야 할 문화로 본다. “BTS사례처럼 아리랑이 세계 대중문화로 확장되는 지금, 무형유산 선진국인 한국이 세계 최초의 무형유산센터를 세워 국제사회의 롤모델이 되길 바란다”며 ‘아리랑 무형유산 센터’의 건립이 필요성을 강조했다.

연구의 동반자였던 로저 L. 자넬리 교수와의 협업 역시 그의 학문 여정을 이룬 중요한 축이다. 두 사람은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만나 현장을 함께 기록했고, 그 결과물은 ‘Ancestor Worship and Korean Society’로 남았다. 한국 사회의 친족 구조와 조상 숭배를 분석한 이 연구는 지금도 국제 학계에서 고전으로 인용된다.

무형유산에 대한 학계의 관심 부족은 ‘자넬리·임돈희 한국학 학술상’ 제정으로도 이어졌다. 그는 자비로 상금 3000만원을 출연했다. 한국 문화를 다룬 연구서를 미국, 영국 등 주요 대학 출판사에서 출간한 연구자가 수여 대상이다. 아직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그는 기다린다. “누군가 반드시 나올겁니다. 그때까지 길을 만들어 놓는 것이 제 몫이지요.”

여든이 넘은 그는 여전히 바쁘다. 아버지가 평생 채록한 무가와 민속 자료를 정리하고, 1936년 봉산탈춤을 담은 희귀 필름을 디지털화해 다음 세대에 남기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무형유산을 기록에 머물지 않고, 세계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지식으로 남기기 위해서다.

굿이 벌어지던 집 안에서 시작된 한 연구자의 삶은 현재진행형이다. 임돈희 교수는 말한다. “살아 있는 유산은, 누군가 계속 살아 있게 해주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송해수 기자 



임돈희 교수 자택 거실에 걸린 사진. 굿판이 벌어지곤 했던 안암동 기와집으로 아버지와 추억이 많은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