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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호 2026년 2월] 문화 동아리탐방

“내일은 MT 날, 장소는 추리해서 오세요”

2018년 창립, 등록회원 106명, 추리와 관련된 모든 것 다뤄 
“내일은 MT 날, 장소는 추리해서 오세요”
 
추리문제풀이·제작 동아리 추러스

정기모임에서 각자 역할에 맞는 옷을 입고 머더 미스터리 게임에 참여 중인 추러스 회원들.
 
2018년 창립, 등록회원 106명  
추리와 관련된 모든 것 다뤄 

누군가는 범인이고, 누군가는 그를 숨기고 있다. 네 명은 각자 용의자를 맡고, 나머지 서른 명은 말없이 상황을 지켜본다. 사건은 미궁에 빠졌고, 용의자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그 순간, 책이 덮인다.

서울대 중앙동아리 ‘추러스’의 정기모임 풍경이다. 추러스는 ‘추리 러브 스토리’의 약자로, 추리를 사랑하는 학생들이 모여 만든 동아리다. 대체 뭐하는 동아리일까. 1월 23일 관악캠퍼스에서 조준호(응용생명화학24)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조 회장은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각자가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추러스는 추리소설과 퀴즈를 함께 읽고 풀며, 머더 미스터리(murder mystery), 크라임씬(역할극 기반 추리 게임), 퍼즐런트(puzzle hunt) 등 다양한 추리 게임을 직접 즐기고 제작한다.

추러스는 2018년 2월 4일 창립됐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던 고재준(조경지역시스템18) 동문이 중심이 되어 동아리를 만들었고, 송인홍(농업토목92) 교수가 지도교수를 맡아 중앙동아리로 등록했다. “결말 전까지 읽고, 직접 범인을 맞혀보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모임은 8년 만에 회원 100명 이상이 활동하는 동아리로 성장했다. 현재 등록 회원은 106명이며, 정기모임에는 많을 때 40명 안팎이 참여한다.

운영진은 9명, 추리 퀴즈와 게임을 직접 제작하는 ‘문제팀’은 11명으로 구성돼 있다. 문제팀은 정기모임에 사용할 콘텐츠를 자율적으로 기획·제작한다. 조 회장은 “문제팀은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각자 문제를 만들어온다”며 “자기가 만든 문제를 다른 사람들이 풀어주는 과정을 가장 재미있어한다”고 말했다.

정기모임은 매달 넷째 주 토요일에 열린다. 이번 학기부터는 둘째 주 토요일 ‘미리 정기모임’을 신설해 한 달에 두 번 만나는 구조로 운영 중이다. 추리소설을 결말 직전까지 읽고 토론하거나, 머더 미스터리·크라임씬·퍼즐런트 등 인원과 난이도에 맞춘 콘텐츠를 진행한다. 특히 인원 제한이 있는 크라임씬을 변형한 ‘협동 크라임씬’은 추러스만의 방식이다. 소수의 플레이어가 용의자를 맡고, 다수의 회원은 관전자로 참여해 범인을 추리한다.

MT 방식도 독특하다. 장소는 사전에 공개되지 않고 문제로 시작된다. 첫 번째 문제의 답이 ‘신림’이라면, 신림역에 도착했을 때 MT 준비 TF 팀원이 기다리고 있다. 정답을 확인한 뒤 새로운 문제를 건네는 방식이다. 이후 답이 ‘용산’이면 용산에서 다시 다음 문제가 주어진다. 같은 과정을 거쳐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다. 조 회장은 “정답 여부를 확인한 뒤 다음 장소로 보내기 때문에 MT 장소를 못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동 자체가 하나의 추리 게임이 된다.

추러스의 활동은 ‘소비’에 머물지 않는다. 추리소설 소모임, 창작 소모임, 머더 미스터리·퍼즐 제작 모임, ‘바다거북스프’와 같은 구술 추리 게임 모임, 고난도 전략 보드게임 소모임 등으로 세분화돼 있다. 회원들은 관심에 따라 여러 소모임에 자유롭게 참여한다. 방탈출·보드게임 번개도 월 1~2회 진행하며, 예약이 까다로운 고난도 테마를 선호한다.

추러스는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그동안 제작한 추리 게임과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 회원들이 만든 퍼즐과 추리 콘텐츠를 아카이브 형태로 정리해, 동아리 밖의 사람들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열어둔 공간이다. 문제를 만들고 소비하는 과정이 동아리 내부에만 머무르지 않고 외부로 확장되는 셈이다. 조 회장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즐기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추리의 재미를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추리의 매력을 “정답보다 과정”이라고 말한다. “GPT는 검색은 잘하지만, 새로 생각하라고 하면 약하다”며 “저희가 만드는 추리 문제를 GPT에 넣으면 아직 답을 못 찾는다”고 했다. 추리는 한 방향으로 수렴하는 계산 문제가 아니라,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펼쳐 놓고 그중 하나를 좁혀가는 사고의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모든 활동이 물질적 이익과 효율로 평가받는 시대다. 그럼에도 추러스는 ‘재미’를 목적으로 움직인다. 문제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들이고, 정기모임을 한 달에 두 번으로 늘리고, MT조차 추리로 설계한다. 완성한 게임과 문제는 동아리 안에만 남기지 않고 온라인에 공개한다. 조 회장은 “이 재미를 아는 사람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과로 환산되지 않아도, 이익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좋아하는 일을 함께 이어가려는 선택. 추러스의 활동은 재미가 여전히 충분한 동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송해수 기자
 
▷ ‘추러스’ 자체개발 게임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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