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4호 2026년 1월] 오피니언 추억의창
관악 터널과 봉천 터널 사이
관악 터널과 봉천 터널 사이

이대양(에너지자원03)
웹툰 작가
23년 4월, 특별한 행사가 있어 오랜만에 모교를 방문했다. 사당역에서 우측 길로 빠져 봉천 터널로 학교에 이르는 길을 처음 이용해 봤다. 썩 편리한 길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의 등굣길은 참 꾸준히 변했다. 신입생 시절 나는 서울대입구역에서 413-1 버스를 탔다. 그 추억의 노란색 버스는 내가 군대에 다녀온 사이 사라졌고, 낯선 5513번 연두색 버스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겉모습은 변해도 버스 안의 풍경은 그대로였다. 기사님이 사이드미러가 안 보인다며 연신 손을 내젓는 동안에도 학생들은 지각을 면하기 위해 계단 있는 곳까지 빼곡하게 몸을 밀어 넣었다.
몇 번의 지각 뒤 나는 낙성대역에서 2번 마을버스를 탔다. 대기 줄이 긴 건 똑같았지만, 배차 간격이 짧아 수업 시간을 맞추기는 한결 수월했다. 유독 버스 줄이 길었던 어느 날, 몇 대를 보내고서야 버스에 오른 나는 지각을 확신했다. 투덜거리며 창밖을 보던 나는 자전거를 타고 낙성대로를 오르는 여학생을 발견했다. 버스는 곧 여학생을 추월했지만, 정류장에 설 때마다 다시 따라잡혔다. 나는 자전거가 마을버스만큼 빠르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래서 나도 자전거를 샀다.
처음 자전거 등교를 시도했던 날 기숙사 삼거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나는 녹초가 되었다. 같이 출발한 버스는 고사하고 다음 버스에도 추월당한 뒤였다. 자전거가 빠른 게 아니라 그 여학생이 빠른 것이었다. 그래도 자전거값이 아까워서 자전거 등교는 계속했다. 마을버스와 비슷하게 공대에 도착하기까지 1년이 걸렸다.
대학원 박사과정 무렵부터 자가용을 이용하면서 등교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다. 사당역 사거리에서 신호를 몇 번씩 받아야 하는 게 아니었다면 예전의 절반도 가능했을 것이다. 이 문제는 2016년 관악 터널과 봉천 터널이 개통되면서 해결되었다. 이후 나는 쭉 관악 터널을 애용했다. 목적지는 같았지만, 그에 도달하는 길은 참 다양했다. 꿈을 좇는 일도 이와 같다.

일러스트 김나은(디자인17) 그래픽 디자이너

일러스트 김나은(디자인17) 그래픽 디자이너
어린 시절 나의 꿈은 작가였다. 시립 도서관 한구석에서 날이 저물도록 소설책을 읽으며, 나도 언젠가 이런 것을 쓰리라 다짐했다. 글쓰기 대회엔 늘 참가했고, 습작도 여럿 썼다. 장래 희망엔 늘 ‘작가’를 적었다.
하지만 머리가 크면서 내 진로 선택은 달라졌다. 어른들의 말마따나 취미로 글을 쓰는 것과 직업으로 글을 쓰는 것 사이의 간격이 점점 또렷이 보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수학과 과학도 좋아했기에 이과를 갔고, 공대에 진학했다.
공대에 다니는 동안에도 글은 계속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유머 사이트에 비정기로 올리던 글이 인기를 끌면서 포털에서 연재 제안을 받았다. 한 달에 몇십만원 남짓한 고료를 받았지만, 글을 써서 돈을 번다는 자부심은 그에 비할 수 없이 컸다. 2년 사이 연재하던 내용이 책으로 출판되고, 영상화 계약이 되었다. 막바지엔 학교도 휴학하고 글을 썼다. 이 길이 내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제작사의 사정으로 영상화는 갑자기 좌초됐다. 내 20대의 2년은 그렇게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이후 10년 정도 이렇다 할 작품은 쓰지 못했다. 인터넷에 가끔 유머 글을 썼고 컴퓨터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웠다. 몇몇 공모전에 참가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그사이 나는 공학 박사가 되었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2018년 말, 박사 이후 진로를 고민하던 시점에 나는 오래 품어온 꿈을 아내에게 꺼내놓았다.
“여보, 역시 나는 작가로 살고 싶어.” 반박할 이유가 차고 넘치는 말이었다. 공학 박사는 왜 땄는지, 그 근거와 자신감은 어디서 왔는지 다그쳐 묻는 게 보통의 반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내 글도 좋지만, 요즘은 웹툰이 인기니 한 번 그려보는 게 어떻겠냐고 넌지시 말해주었다.
그렇게 아마추어 리그에서 닥터베르라는 필명으로 시작한 작품 ‘닥터앤닥터 육아일기’가 네이버에서 정식 연재가 되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작품을 계기로 유퀴즈에 출연하면서 길을 가다 알아보는 사람도 생겨났다. 23년 4월에 학교를 방문했던 건 중앙도서관에서 준비해 준 나의 특별전 때문이었다. 웹툰은 내 꿈에 이르는 관악 터널이자 봉천 터널이었다.
꿈을 찾아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라고. 길에는 저마다의 장단점이 있고, 시대에 따라서도 변한다. 중요한 것은 마음속 목적지를 잃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새롭게 열린 길을 놓치지 않고 주저 없이 오를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꿈에 닿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