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4호 2026년 1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이혼 판결은 감정 아니라, 사실관계에서 시작됩니다”
가사재판 20년 실무 정리한 이혼·상속 실무사례 연구 펴내
“이혼 판결은 감정 아니라, 사실관계에서 시작됩니다”

김시철 (사법84) 사법연수원장
가사재판 20년 실무 정리한
이혼·상속 실무사례 연구 펴내
사법연수원장 취임 1년. 숫자부터 부담스러웠다. 신임 법관 연수 대상자는 2024년 111명에서 2025년 151명으로 늘었다. 1년 새 36% 증가다. 연수 인원이 급증한 지금, 김시철(사법84·사진) 동문이 강조하는 판단의 기준은 가사재판 현장에서 이미 정리돼 있었다. 최대 150명 수용이 가능한 강의실, 교수 10명이 맡는 연수 구조 속에서 ‘개별 지도 중심 교육’이라는 원칙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이 질문 앞에 서 있는 김시철 동문을 서면으로 만났다. 최근 ‘이혼·상속 실무사례 연구’를 펴내며 가사재판 실무의 축적된 고민을 정리한 그는 “법관은 여론이 아니라, 사실과 법리로 판단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김 원장은 1999년 서울가정법원 단독판사로 가사사건을 처음 맡은 이후 약 20여 년간 이혼과 상속 분쟁을 다뤄왔다. 현장에서 마주한 가장 큰 변화는 분쟁의 양상 자체였다. 사건 수는 늘었고, 분쟁의 구조는 복잡해졌다.특히 혼인 시점에 따라 당사자들이 가진 결혼관의 출발점이 크게 달라진 점이 재판을 어렵게 만들었다.
1970~80년대 혼인한 부부의 이혼 분쟁에서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라는 전통적 관념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한다. 반면 2010~20년대 혼인한 부부의 경우 ‘살아보니 맞지 않으면 헤어질 수도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같은 이혼 사건이라도 기본 인식이 전혀 다른 주장들이 법정에서 충돌한다. 김 원장은 “이런 사건들을 동일한 평면에서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짚었다.
상속 분쟁도 같은 구조다. 노년층이 보유한 자산 비중이 커지면서, 법정상속인 사이에서 상속분과 유류분을 둘러싼 다툼이 잦아졌다. 그는 “피상속인의 의사를 중시하는 주장과 형평을 요구하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분쟁에서 김 원장이 강조하는 기준은 명확하다. 당사자 주장이나 사회적 여론보다, 혼인관계와 재산 형성의 구체적 사실관계를 먼저 정리하고, 유사사건과 비교해 법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관점과, 헌법과 판례로 유지돼 온 규범적 골격은 구분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고액·고위층 이혼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면서, 김 원장이 재판장으로 참여한 SK 최태원·노소영 이혼 항소심 판결 역시 큰 주목을 받았다. 고액 위자료 산정을 둘러싼 해석과 논의가 이어지며 관련 질문도 잇따랐다. 다만 해당 사건에 대한 구체적 평가를 묻는 질문에는 “개별 사건에 대한 언급은 적절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대신 그는 “사건의 규모나 당사자의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충분한 심리를 거쳐 동일한 법리를 적용하는 것이 사법의 기본”이라는 원칙을 강조했다.
사법연수원장으로서 김 원장이 마주한 과제는 연수 인원 증가 그 자체보다, 교육의 밀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있다. 판결서 첨삭과 합의 과정 훈련, 윤리 교육은 모두 개별 지도를 전제로 해야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연수 인원이 늘어날수록 교육 방식은 더 정교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취임 이후 김 원장은 연수 체계 전반을 점검하는 데서부터 일을 시작했다. 2025년 4월, 교수진 9명으로 발전계획 TF를 구성해 연수 인원 증가를 전제로 한 중·장기 교육 구조 재설계를 논의하고 있다. “기존 방식을 조금씩 보완하는 수준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물적 인프라 개선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꼽힌다. 현재 사법연수원의 대형 강의실은 최대 150명 수용이 한계다. 김 원장은 2026년 상반기 정책연구용역을 통해 강당 리모델링과 강의실 구조 변경을 포함한 시설 확충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대규모 강의와 소규모 토론이 병행될 수 있도록 공간 기능을 재편하는 것이 목표다.
교육 내용 역시 ‘양’이 아닌 ‘깊이’를 지향한다. 판결서 작성과 합의 과정 훈련, 사례 토론과 개별 첨삭을 중심으로 한 대면 집체교육을 강화하고, 평가 제도의 정밀도를 높여 연수의 실효성을 높일 방침이다.
김 원장이 말하는 변화는 새로운 구호를 내거는 방식이 아니다. 이미 운영 중인 교육 요소들이 인원 증가 이후에도 같은 밀도로 작동하는지를 하나씩 점검하는 일에 가깝다. 연수 첫날의 일정표, 밤늦게 돌아오는 판결서 첨삭 파일, 토론이 끝난 뒤 정리되는 강의실 책상까지. 그 장면들이 다음 기수에도 그대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 그것이 김 원장이 임기 동안 붙잡고 있는 과제다.
송해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