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4호 2026년 1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한국의 ‘스티브 호킹’이 전하는 희망 “삶은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어요”
차량 전복사고 딛고 학문적 성취 2027 IGGU 총회 국내 유치 한몫
한국의 ‘스티브 호킹’이 전하는 희망 “삶은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어요”

이상묵 (해양81)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차량 전복사고 딛고 학문적 성취
2027 IGGU 총회 국내 유치 한몫
2027 IGGU 총회 국내 유치 한몫
불안한 시국에, 새해라도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어떤 삶은, 설명하지 않아도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만든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 이상묵(해양81·사진)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를 만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의 이야기는 기적처럼 들리지만, 그는 그것을 기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다만 오늘도 이어지고 있는 일상의 선택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12월 29일 겨울 햇살이 스며든 자택에서 마주한 그는, 삶이 한 번 크게 꺾였음에도 여전히 웃으며 이야기를 건넸다. 그 담담함은 새해의 문턱에서 만난 가장 현실적인 희망처럼 느껴졌다.
그는 지진과 화산, 판구조 등 전 지구적 현상을 연구해 온 학자다. MIT와 우즈홀 해양연구소에서 여정을 마친 뒤, 2003년 모교 교수로 부임했다. 안정된 궤도에 올라서던 시기, 전환점은 불현듯 찾아왔다. 2006년 미국 캘리포니아 야외지질조사 도중 차량이 전복되며 4번 척추가 손상돼 목 아래가 마비됐다. 의식을 잃은 채 응급 헬리콥터로 이송됐고,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당시를 떠올리며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빠져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는 순간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무의식 상태에서 임사체험을 했다고 회상한다. 죽음을 마주한 경험은 그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죽음은 상상했던 것처럼 공포로 가득 차 있지 않았고, 오히려 질서정연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느껴졌어요.” 이 경험은 그의 인생관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걸 알게 되니, 살아 있으면서 집착하던 많은 문제들이 갑자기 작아졌습니다.” 사고 이후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울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 경험이 450년 전 몽테뉴의 사유와 닿아 있다고 말한다. 몽테뉴 역시 죽음의 문턱을 넘은 뒤, ‘밖에서 볼 때의 공포’와 ‘당사자가 느끼는 내적 평온’이 다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후 이 교수는 죽음에 대한 고민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더 집중하게 됐다.
사고 이후 불과 6개월 만에 그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불편함은 없었어요. 비장애인 폐활량의 40%지만 말을 할 수 있고, 뇌를 다치지 않아 연구에 전혀 문제가 없었거든요.” 키보드 대신 음성 인식 프로그램과 보조 입력 장치를 활용해 자료를 만들고, 논문을 읽고 썼다.
그는 재활을 의료·사회·영적 재활로 나누며, 마지막을 “어떤 삶의 태도를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장애 역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는 조건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죠.”
이러한 인식은 교육으로 이어졌다. 그는 장애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과 전문성’이라고 단언한다. “장애 그 자체보다 교육의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가 더 크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이를 계기로 모교에 ‘계산과학 연합전공’을 만들었다. 장애 학생들이 데이터 과학과 인공지능 분야를 통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도였다.
문제의식은 교육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학문 공동체 전체에 남는 일을 스스로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연구선(硏究船) 공동 활용 제도 개선이다. 그는 2014년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가 연구선이 일부 기관에만 묶여 대학 연구자들이 활용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이는 이후 해양수산부 훈령 개정으로 이어졌다.
국제 학술 무대에서도 그의 역할은 분명했다. 그는 여러 차례 국제 지구과학 학술대회 유치전에 직접 나서 미국·영국·호주·러시아 등 선진국 도시들과의 경쟁 끝에 한국 개최를 다수 이끌었다. 특히 4년에 한 번 열리는 지구과학 분야에서 ‘올림픽’에 비유될 만큼 상징적인 국제측지학및지구물리학연맹(IUGG) 총회도 2027년 국내 유치에 성공했다. 24년 만에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개최된다. 그는 “학문적 위상과 국가의 연구 신뢰도를 함께 평가받는 자리”라며, “한국 학계가 국제 무대에서 신뢰를 얻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몸의 조건은 달라졌지만, 학문을 바라보는 시야와 책임의 범위는 오히려 더 넓어졌다.
정년을 앞둔 이후의 삶을 묻자, 그는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사고 이후에도 2000여 권의 독서를 이어왔다. “새로운 분야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은 여전합니다.” 그의 호기심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서울대와 동문 사회를 향한 생각도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는 “세상에는 ‘명품 기업’과 ‘착한 기업’이 있다”는 비유를 들며, “대학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아직 세계적인 명품 대학으로 가는 길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더더욱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는 “정부 재원이 아니라 동문과 공동체의 자발적 참여로 사회적 약자와 긴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모교가 살아남는 길이자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특별한 이야기로 포장하지 않는다. 다만 “인생은 선택하지 않은 카드를 가지고도 끝까지 플레이해야 하는 게임”이라고 말하며, 주어진 조건 속에서 무엇을 책임지고 감당할 것인가를 되짚는다. 그의 이야기가 오래 남는 이유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변화 앞에서 취할 수 있는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은 지나간 시간보다 지금의 자리,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시간에 머물러 있다. 이정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