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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호 2026년 1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관악 600개 연구실·서울대 3개 병원 데이터 결합, 세계 승부처 될 것”

“서울대 생명정보 분야 세계 최고 수준 ‘바이오 마커’ 발굴의 허브로 도약”, 퀀타매트릭스 CEO이자 융합연구의 상징, 교통사고로 전기공학도에서 생명공학도로
“관악 600개 연구실·서울대 3개 병원 데이터 결합, 세계 승부처 될 것”

권성훈 (전기94) 
서울대 생명공학공동연구원(Bio-MAX) 원장


“서울대 생명정보 분야 세계 최고 수준
‘바이오 마커’ 발굴의 허브로 도약”  
 
퀀타매트릭스 CEO이자 융합연구의 상징
교통사고로 전기공학도에서 생명공학도로
 
서울대학교 생명공학공동연구원(Bio-MAX)은 올해로 설립 23년 차를 맞는다. ‘다학제적(Multidisciplinary)’, ‘모험적인(Adventurous)’, ‘최상의(eXcellent)’ 연구라는 이름 그대로, 서울대 내 바이오 융합 연구의 허브로 성장해 왔다. 2025년 이후 연구원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그 중심에는 11대 원장으로 취임한 권성훈(전기94·사진)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있다. 그는  정밀의료·진단 분야 기업인 퀀타매트릭스의 창업자이자 현직 CEO이기도 하다. 연구·교육·창업·조직 운영을 모두 병행하는 흔치 않은 경력이다.

1월 2일 관악캠퍼스 생명공학공동연구원 원장실에서 권 원장을 만났다. 그는 “서울대 바이오 분야의 잠재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관악캠퍼스의 연구력과 서울대병원 등 3개 병원의 데이터가 결합하면 하버드나 스탠퍼드를 넘어서는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1시간 남짓 진행된 인터뷰 동안 그는 ‘서울대 바이오 생태계’에 대한 열정을 숨기지 않았다.

-교수로서, 연구원장으로서, 그리고 상장사 대표로서 눈코 뜰 새가 없을 것 같다. 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가능한가.
“지난 15년간 해오던 일이다. 우리 연구실은 학교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성과가 좋은 랩 중 하나로 세팅이 되어 있고, 회사(퀀타매트릭스) 역시 훌륭한 임직원들이 시스템을 갖춰 움직이고 있다. 물론 몸은 고되지만, 바이오 분야는 연구와 사업, 교육의 시너지가 굉장히 크다. 연구실의 성과가 창업으로 이어지고, 회사의 자원이 다시 연구에 투입되어 네이처(Nature) 자매지 논문이 쏟아져 나오는 선순환 구조다. 이 모델이 가능하다는 것을 지난 15년 제 연구실(Core Lab)을 통해 증명했고, 이제 원장으로서 이 성공 모델을 서울대 전체로 확산시키려 한다.”

-전기공학을 전공하셨는데, 바이오 쪽 일을 하게된 동기는.
“학부 3학년 때 교통사고가 나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있다. 그 이후 의공학, 생명공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생명공학공동연구원(Bio-MAX)은 서울대 내에서 어떤 위상을 갖는가. 하버드나 스탠퍼드 같은 해외 유수 대학과 비교한다면.
“각 대학마다 바이오 융합을 위한 간판 조직들이 있다. 하버드에는 ‘브로드 인스티튜트(Broad Institute)’나 ‘비스 인스티튜트(Wyss Institute)’가 있고, 스탠퍼드에는 ‘바이오-X(Bio-X)’가 있다. 이들은 막대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병원과 공학, 기초과학을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한다. 서울대 Bio-MAX가 지향하는 바도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총장 직할 기관으로서 의대, 공대, 자연대 등 다양한 단과대학을 아우르며, 특히 기초 연구와 임상 현장을 잇는 ‘중개 연구(Translational Research)’의 메카가 되고자 한다.”

-‘중개 연구’라는 말이 일반인들에게는 조금 낯설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쉽게 말해, 실험실에서 나온 연구 결과가 논문으로만 끝나지 않고 실제 환자에게 쓰이는 약이나 진단 기기, 치료법으로 이어지게 하는 연구다. 서울대는 관악캠퍼스의 엄청난 연구력과 더불어 서울대병원(본원), 분당서울대병원, 보라매병원이라는 세계적인 병원 3곳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관악에는 중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연구실이 약 600개나 된다. 이들이 병원의 임상 데이터, 의사들의 현장 노하우와 결합한다면 폭발적인 시너지가 난다. 우리 연구실이 지난 15년 동안 중개 연구에 100% 투자해 성공을 거뒀다. 만약 관악의 600개 연구실이 10%씩만 중개 연구에 투자한다면, 단순 계산으로도 내 연구실 성과의 60배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하버드나 스탠퍼드를 능가하는 규모다.”

-의사와 공학자가 만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서로 언어도 다르고 관점도 다를 텐데, 이 장벽을 어떻게 허물고 있나.
“맞다. 박사(PhD) 교수님들이 정년 퇴임하실 때까지 의사(MD) 교수님 얼굴 한번 못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만든 것이 ‘바이오 커넥트(Bio-Connect)’ 사업이다. 연구원이 관악의 연구자와 병원의 의사를 매칭해주고, 초기 연구비(Seed Money)로 6000만원 정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연구원과 병원이 각각 3000만원씩 매칭한다. 액수는 크지 않지만, 서로 만나서 ‘이런 걸 해보자’고 킥오프(Kick-off)를 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된다. 경쟁률이 8대 1을 기록할 만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보라매병원에서 과제 수 확대를 요청할 만큼 프로그램에 대한 현장 수요가 높아, 현재 과제 수를 늘려 운영 중이다. 이렇게 만난 팀들이 나중에 수십억, 수백억원짜리 대형 국책 과제를 수주하고, 창업으로 이어진다.”

-현재 Bio-MAX가 내세우는 가장 경쟁력 있는, ‘플래그십(Flagship)’ 연구 분야는 무엇인가.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첫째는 ‘바이오 인포메틱스(생명정보)’ 분야다. 황대희 교수, 김선(계산통계82) 교수가 이끄는 생명정보연구소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둘째는 제가 집중하고 있는 ‘패스-맵(Path-Map)’ 프로젝트다. 병리과에는 환자의 암 조직 등을 찍은 병리 슬라이드가 수억 장 쌓여 있다. 이건 그냥 데이터가 아니라 ‘금광’이다. 기존에는 병리과에서 진단에 제한적으로 활용되던 데이터이다. 여기에 AI와 공간 오믹스 분석 기술을 결합해 대량의 ‘바이오 마커(Biomarker 질병의 지표)’를 발굴하는 것이다. 이는 신약 타겟 발굴이나 정밀 진단으로 직결된다. 셋째는 신영기(약학92) 교수가 이끄는 항체 생산 코어랩이다. 학교 실험실 수준을 넘어 전임상, 동물실험이 가능한 수준의 고품질 항체를 생산해 연구자들을 지원한다.”

-연구 성과가 창업으로 이어지는 ‘랩 스타트업(Lab Startup)’ 지원에도 적극적이라고 들었다. 구체적인 구상이 있나.
“서울대 교수님들이 창업한 바이오 벤처 중에 상장한 곳이 꽤 많다. 고바이오랩, 바이로메드 등 성공 사례가 쌓여 있다. 하지만 초기 창업 기업이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을 넘기는 건 여전히 어렵다. 바이오 창업과 기술사업화 프로그램,  SNU BIO-Day 등 바이오 컨설팅 프로그램 중심으로 투자자와 랩 스타트업 간 연결을 확대하고, 장기적으로는 학교 차원의 펀드 조성도 구상하고 있다. 초기 유망 랩 스타트업에 10억원 정도를 시드 투자하고, 시리즈 A 투자를 받을 때 절반 정도 지분을 매각해 원금을 회수하고 재투자하는 구조다. 거액의 돈이 필요한 거라 쉽지는 않다.”

-학교가 직접 투자를 한다는 게 리스크가 있지 않나.
“바이오 기업이 최종적으로 신약 개발에 성공해 상장할 확률은 5% 미만이다. 거기에 베팅하면 안 된다. 하지만 서울대 교수들의 검증된 기술력이라면 ‘시리즈A 투자를 받을 확률’은 70% 이상으로 높일 수 있다. 우리는 기술을 검증하고, 창업자를 멘토링해서 그 단계까지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미 시장에는 후속 투자를 하려는 벤처캐피털(VC)들이 줄을 서 있다. 이 구조가 만들어지면 학교 재정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고, 교수들의 창업도 획기적으로 활성화될 것이다.”

-많은 동문, 특히 퀀타매트릭스의 주주들은 원장님이 학교 보직 때문에 회사 경영에 소홀하지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바이오 분야는 현장의 니즈(Needs)와 최신 기술 트렌드를 모르면 도태된다. 제가 학교에서 최첨단 연구를 이끌고 병원 의사들과 매일 회의를 하기 때문에 회사의 기술적 방향성을 더 명확히 잡을 수 있다. 퀀타매트릭스는 응급 패혈증 환자에게 적합한 항생제를 신속하게 선별하는 진단 장비를 개발·상용화하고 있다. 기존 며칠씩 걸리던 것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켜 생명을 살리는 기술이다. 이미 유럽 40여 개 병원에 도입됐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가산동 본사와 파리 지사에 100여 명의 훌륭한 임직원이 있고, 저는 CEO로서 밤낮없이 화상 회의를 하며 경영을 챙기고 있다.”

-경쟁상대인 중국의 추격이 매섭다. 한국 바이오, 특히 서울대의 경쟁력은 유효한가.
“솔직히 말해 양적 지표나 인프라, 규제 환경 면에서 중국이 앞서간 지 오래다. 중국은 환자 샘플 확보가 용이하고 임상 수행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 R&D 센터도 중국으로 많이 갔다.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새로운 접근’ 뿐이다. 실패 확률이 높더라도 남들이 안 하는 혁신적인 시도를 해야 한다. 서울대병원들의 임상 수준은 여전히 세계 톱클래스다. 이들의 퀄리티 높은 데이터와 관악의 창의적인 공학 기술을 결합하는 것, 그 ‘질적 우위’가 우리의 유일한 승부처다.”

-미래 바이오 인재상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이제는 단일 전공의 시대가 아니다. 최소 두 분야에서 실질적으로 경쟁력 있는 ‘파이형 인재’가 돼야 한다. 예를 들어 의사이면서 AI를 다루고, 생명과학자이면서 공학적 설계 능력을 갖춘 사람들. 그래야 진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정형외과 전문의였다가 관악으로 와 AI 기반 의학 연구를 하는 김신 연구원이 대표 사례다. 이 정도는 돼야 국제 무대에서도 명함을 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45만 서울대 동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미국의 브로드 인스티튜트, 비스 인스티튜트는 모두 기부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들이 수조 원을 쾌척한 이유는 바이오가 인류의 미래를 바꿀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서울대 바이오는 인재, 병원, 기술이라는 최고의 재료를 다 가지고 있다. 이것을 꿰어 보배로 만들 ‘시스템’과 ‘재원’이 절실하다. 제가 원장으로 있는 동안 내부 시스템은 확실히 다져 놓겠다. 동문 여러분께서 서울대가 대한민국 바이오 산업의 심장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인류 건강에 기여하는 세계적인 연구소가 탄생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보내주시길 부탁드린다. 2년 후에는 제가 다시 연구와 경영 현장으로 돌아갔을 때, ‘권성훈이 틀을 잘 닦아놨다’는 평가를 듣고 싶다. 온갖 악역을 자처하며 궂은일을 도맡고 있는 이유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권 원장은 다시 연구원들과의 미팅을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서울대가 지금 이 위치에 있는 것은 기적”이라며 비효율적 문화와 인프라 지원의 부족함을 토로하면서도, “그렇기에 업사이드 포텐셜(상승 잠재력)이 더 크다”고 역설하는 그의 모습에서 서울대 바이오의 비상을 기대해 본다. 특히 퀀타매트릭스라는 기업을 일구며 얻은 실전 감각을 학교 시스템에 이식하려는 그의 시도는 산학협력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