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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호 2025년 12월] 오피니언 교직원의 소리

새로움에 대한 용기

새로움에 대한 용기

임정묵(수의82)
서울대학교교수회 회장
농생명공학부 교수
 
얼마 전 한 일간지가 전국 대학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서울대가 여전히 1위였으나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상위권 대학과의 격차가 크게 좁혀졌다고 한다. QS나 THE 등 세계 대학평가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확인된다.

교육과 연구의 가치는 정량 지표만으로 판단하기 어렵기에 세계적 수준의 대학들이 외부 기관의 평가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해방 이후 인재 양성의 중심 역할을 해온 서울대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일부 분야에서는 경쟁 대학이 국내 최고 자리를 차지하는 현실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가 정부 예산을 가장 많이 받는다는 점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법인화 이후에도 대학 운영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정부나 사실 확인 없이 포퓰리즘식 비판을 일삼는 언론의 책임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 성찰해야한다. 서울대의 오래된 관행과 체질이 발전을 저해했는지 확인할 때이다.

지금은 한 명의 탁월한 리더가 조직을 이끌던 시대를 지나 각자의 역량이 모여 공동체의 성과를 만드는 다양성의 시대이다. 서울대가 모든 것의 중심에 설 수 없는 구조에서, 경쟁 대학을 존중하고 배움을 구하는 태도가 바람직 하다. 관행과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질서 속에서 서울대가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종합화에 종언을 고하고 다양성과 공정을 중시하는 분권형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본부는 ‘주도하는 기관’이 아니라 ‘지원하는 기관’으로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단과대학이 교수와 학생의 지원과 예산 집행의 중심이 되도록, 본부 직원은 교육과 연구 현장에서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 본부는 공통시설 운영, 재정과 예산, 그리고 캠퍼스 관리 등에 집중하고, 분권형 거버넌스를 위해 이사회-평의회-발전재단 고유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

둘째, 실질적 경쟁력을 갖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서울대가 대형 정부 프로젝트 수주에 왜 잇따라 실패했는지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교수에 대한 과감한 지원과 대학 운영 방식의 체질 개선을 미룰 수 없다. 교수들 또한 서울대라는 울타리에 안주하거나 역차별을 탓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노력과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셋째, 국가적 차원의 학문 경쟁력 제고에 앞장서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아직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 현실은 냉엄하다. 국내 상위권 대학이 모두 힘을 합쳐도 중국이나 미국의 유력 대학 한 곳을 넘어서기 어렵다. 대학 간 경쟁을 넘어, 국가적 연구 역량을 결집해야 할 시점이고, 서울대는 이를 위한 공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다른 대학과의 협력 네트워크 구축에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학업 우수자 다수가 서울대에 입학하고, 많은 연구자가 서울대에서 일하거나 서울대 출신이다. 서울대가 새로운 질서를 용기있게 받아들이는 것이 대학 경쟁력 강화는 물론, 우리나라 학문의 도약을 이루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