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3호 2025년 12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요리·조리, 야채·채소
요리·조리, 야채·채소

김병연(생물교육69)
하늘삼나무 식물원지기
조선이 제물포를 열자 일본인들이 들어와 차린 음식점이 ‘요리음식점’(한성순보,1886.10.4)이었다. 일본은 중국말 ‘랴오리’(料理)(일을 처리하다, 돌보다, 삶다, 술안주라는 뜻)를 들여 ‘료리’로 발음하며 우리말 음식에 해당하는 말로 쓰고 있다. 절묘하게 떠오른 ‘요리’에 조선사람들은 신식문물에 대한 호기심과 힘센 나라에 품게 되는 사대주의적 허영에 깊이 빠져들었다,
1913년 방신영여사선 ‘조선요리제법’이 나왔는데 한자표기 오른쪽에는 ‘죠션료리만드는법’이 쓰여 있다. 거리에서 보는 ‘중화요리’라는 붉은 걸게간판 안의 요리도 일본 ‘료리’의 변신일 수 있는데 강점기 때는 물론 지금까지도 쉽게 쓰이며 ‘음식’을 짓누르고 있다.
조선은 중국에서 먹을거리의 문화적 분야를 표현하는 말 ‘인스’(음식)를 받아들였다. ‘번역박통사’(1510)에 처음 보인 뒤 1670년 쯤 장계향이 쓴 조리서 ‘규곤시의방’의 속표지에 ‘음식디미방’으로 쓰이고 오늘에 이른다. 우리는 먹을거리를 익히고 데쳐 무치는 일을 넓게 ‘음식하다’로 말했고 일본은 ‘료리하다’와 식자층에서 쓰는 ‘쵸리’가 있는데 중국의 ‘탸오리’(調理)(몸을 추스르다, 돌보다, 길들이다 같은 뜻)가 그 뿌리이다. 일제 때 음식업계 종사자들을 위한 교재로서 ‘조리사 교정’이 나왔고 대한조리사연합회(1953)도 있었다.
조리학이라는 용어는 ‘조리학 상/하’(이순애,1973)에 처음 쓰였다. 이제 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도 조리이다.
채소의 순우리말은 푸성귀나 남새이다. 성에 차지 않았는지 중국의 슈차이(소채)와 차이슈(채소) 가운데서 채소를 들여 와 ‘증보산림경제’(유중림,1766)에 처음 썼다. 대학에서는 ‘채소학’을 배우며 북한에서는 남새를 문화어로 쓰고 있다. 일본은 식자층에서 수차이를 들여 소사이(소채)로 썼고 보통사람들은 야사이(야채)를 쓴 것 같다.
조선 말 황성신문(1884.1.8)에 ‘야채를 파는 노점상’으로 처음 올랐는데 들나물이라는 뜻의 말이므로 가정의 남새밭이나 텃밭에서 기르거나 농부들이 대량 길러 장에 내다 파는 농산물에 붙일 이름은 아니다.
그런데 1946년 기본한자 1850자를 정할 때 획 수가 많은 풋나물 ‘소’자가 빠지자 소사이는 쓸 수 없게 됐고 야사이만 쓰고 있다. 그런 말을 고급말이거나 유식한 이들이 쓰는 말로 여기며 쓰는 이들이 적지 않다. 표준국어대사전은 1999년, 야채를 ‘학문적으로 또는 공식적으로 쓰이지 않는 용어로 판단하여’ ‘채소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로 풀이했다.
이제 한국 음식이 이른바 ‘케이푸드’로서 중국음식과 일본음식에 이어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음식만의 독창성을 알리려면 핵심용어의 차별성이 꼭 필요하다. 적어도 대중매체에 나가거나 글을 쓰는 이들은 ‘요리’나 ‘야채’를 쓰지 않아야 한다. 한국이 컸다. 요즈음 ‘식문화’라는 말을 듣는데 ‘음식문화’라야 우리말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