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3호 2025년 12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60년 전통 폴란드 파데레프스키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36개국 234명 경쟁 뚫고 세 번째 한국인 우승자로
60년 전통 폴란드 파데레프스키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노현진 (피아노19) 피아니스트
36개국 234명 경쟁 뚫고
세 번째 한국인 우승자로
11살, 그의 첫 악보는 바이엘도 체르니도 아니었다. 슈베르트 즉흥곡이었다. 어린 노현진(피아노19·사진)은 소리를 ‘빠르게 익히는 법’보다 ‘깊이 듣는 법’을 먼저 배웠다.
이 진솔한 태도는 대학 새내기 시절 중앙음악콩쿠르 만장일치 최고득점 1위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 11월 폴란드, 36개국 234명이 지원한 무대에서, 그는 베토벤 '황제'로 세계를 설득했다. 파데레프스키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 노현진 동문을 서면으로 만났다. 지금 그는, 세계 무대와 연습실 사이의 시간을 보스턴에서 보내고 있다.
그의 음악 여정은 계획된 엘리트 코스가 아니었다. 우연과 선택이 겹쳐온 시간에 가깝다. 어머니가 피아노 전공자였지만, 그는 어린 시절 음악가의 길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친구를 따라 나간 학교 피아노 대회. “그때 결과가 좋았어요. 그 이후로 더 큰 무대에 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놀이처럼 시작된 피아노는 점차 그를 예원학교로, 서울예고로 이끌었다. 실기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주희성(피아노88) 교수를 만나게 된다. “주 교수님과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 저는 없었을 겁니다.” 노현진은 자신의 음악 인생을 선생님 만나기 전과 후로 나눈다.
“선생님의 음악관은 물론이고, 인간적으로도 정말 존경합니다. 충동적이고 무질서했던 저를 사랑으로 보듬어 주셨어요.”
대학 새내기 시절 중앙음악콩쿠르. 전 부문 최고득점, 심사위원 만장일치 1위. 결과는 화려했지만, 정작 본인은 “그 무대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결과가 아니라 진심이었다”고 돌아본다. “그때만큼 진솔하게 피아노를 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이후 국제 무대를 향한 여정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1961년 시작된 파데레프스키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폴란드의 전설적 피아니스트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를 기리는 대회다. 문지영(2013), 이혁(2016)에 이어 노현진은 9년 만에 한국인 우승자다. 이번 대회에는 예선을 거쳐 선발된 43명이 약 보름간 세 차례의 경연과 결선을 치렀다. 전 과정은 온라인으로 생중계됐다.
노현진이 결선 무대에서 선택한 곡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였다. “국제 콩쿠르 특성상 결선에서 연주할 수 있는 레퍼토리가 정해져 있었고, 그중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협주곡을 선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가장 집중한 부분은 기술이 아니었다. 작곡가의 의도였다. “악보에 충실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 안에 담긴 의도를 저만의 언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를 가장 많이 고민했습니다.”
세 개의 특별상을 함께 받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그는 세미파이널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KV.488을 꼽았다. 오케스트라와 처음 맞춰본 곡이었다. 리허설은 단 한 번. 그런데 앙상블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다. “그때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는 피아노 솔로뿐 아니라 앙상블 연주를 유난히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타지에서 힘든 순간을 묻는 질문에는 솔직한 답이 돌아왔다. “한식을 못 먹어서 힘들었어요. 된장찌개가 정말 먹고 싶었습니다.” 웃음 섞인 대답 뒤에는 보다 본질적인 고민이 이어졌다.
“이 길이 맞는지, 제가 하고 있는 선택이 옳은지에 대한 의구심은 늘 따라옵니다.” 한국의 입시 시스템을 벗어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오히려 선택의 무게는 더 커졌다.
현재 그는 미국 보스턴에서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연주자 과정에 재학 중이다. 계획을 길게 세우기보다는, 주어진 무대에 성실히 임하며 자신을 더 알아가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누구도 제 인생을 대신 책임져 주지 않잖아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음악 외의 일상은 담백하다. 독서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도구다. 닌텐도 게임 ‘동물의 숲’은 소소한 휴식이다. “너무 오래 할까 봐 타이머를 맞춰 놓고 합니다.” 웃음 어린 말투 속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가 엿보인다.
서울대 선후배와 동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 역시 그다운 방식이다. “지금 가는 길이 맞는지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각자가 지금 이 순간에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응원해 주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슈베르트 즉흥곡으로 시작해 베토벤 ‘황제’에 이르기까지. 노현진의 음악은 늘 속도보다 깊이를 택해왔다. 그의 건반 위 손끝이 다음에는 어떤 소리를 빚어낼지, 귀 기울여 기다린다. 송해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