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3호 2025년 12월] 뉴스 포럼
“피가로의 결혼은 당대 불평등·귀족제 비판한 혁명 서곡”
오페라, 시대를 흔든 조용한 혁명 음악 속의 사회·인문학 구조 설명
“피가로의 결혼은 당대 불평등·귀족제 비판한 혁명 서곡”

총동창회 수요특강
박경준 (성악88) 성악가
오페라, 시대를 흔든 조용한 혁명
음악 속의 사회·인문학 구조 설명
“한 번 들어서는 몰라요. 그런데 계속 듣다 보면 마음속에서 무언가 올라옵니다.”
바리톤 박경준(성악88·사진) 성악가는 오페라가 지닌 힘을 설명하며 강연의 문을 열었다. 그는 “한 편의 오페라가 어떻게 시대를 뒤흔들었는지 이해하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이유”라며, 반복해 들을수록 일어나는 감정의 파동과 사유의 깊이가 오페라의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12월 3일 마포구 SNU장학빌딩에서 열린 수요특강에서 세계적 바리톤이자 국내 최초의 ‘오페라 인문학자’로 알려진 박경준 동문을 초청해 ‘오페라 인문학’을 주제로 특별 강연을 열었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였음에도 행사장은 아침 일찍부터 모여든 70여 명의 동문들로 가득 찼다.
강연에 앞서 김인규(정치69) 수석부회장은 “17개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세계적 성악가이자, 오페라 속 인간과 사회를 깊이 있게 탐색해온 예술가”라며 박경준 동문의 이력을 소개했다. 박 동문은 파리 고등음악원, 베르디 음악원, 로마 AMI 국제아카데미 등에서 오페라·지휘·뮤지컬을 폭넓게 공부하며 활동해 왔다.
박 동문은 “오페라는 음악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비추는 예술이지만, 동시에 한 시대의 정치와 제도, 사상과 권력을 가장 정교하게 숨겨놓은 텍스트”라고 말했다. 이날 강연의 중심에는 모차르트의 대표작 ‘피가로의 결혼’이 있었다. 그는 이 작품이 희극적 줄거리에 머무르지 않고 당대의 불평등·귀족제의 모순·인권 의식의 성장 등을 품은 ‘혁명 서곡’이라는 점을 풀어냈다.
그는 먼저 작품의 기반이 된 원작 희곡을 언급하며 “희곡의 작가 보마르셰는 왕정 체제를 정면으로 비판한 인물로, 그의 작품은 루이 16세가 직접 상연 금지를 명령할 정도로 위험한 텍스트였다”고 설명했다. 1781년 작품이 탈고되자마자 ‘신분 전복의 가능성’을 이유로 상연이 금지됐고, 1783년 마리 앙투아네트가 개인 시낭송회처럼 이 연극을 관람했을 때도 왕이 격노하며 금지를 명령했다는 역사적 일화도 소개됐다. 박 동문은 “루이 16세는 이 작품을 두고 ‘바스티유가 파괴되지 않는 한, 이 공연은 그저 성가신 방해물에 불과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정반대의 결말을 보여줬다”며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그는 ‘피가로의 결혼’이 1786년 첫 공연을 올린 시점과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 사이의 시간 차이에 주목하며, “나폴레옹이 ‘피가로의 결혼은 이미 활동중인 혁명이었다’고 말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작품 속에서 하인이 귀족에게 정면으로 도전하고, 백작부인은 몸종과 신분을 초월해 연대를 맺는 모습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던 ‘평등’의 실천이었다. 그는 “무대 위에서 하인과 귀족이 일렬로 서서 같은 높이에서 같은 노래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은 신분제 질서의 균열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며 “이 장면만으로도 작품의 정치적 용기는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박 동문은 강연 내내 작품 속 인물들을 예술적·철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며 청중들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특히 하인 피가로의 아리아를 소개하며 “귀족 음악인 미뉴에트를 반주에 깔아 귀족을 조롱하는 ‘이중 패러디’를 선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겉으로는 코믹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귀족의 위선을 해부하는 예리한 칼날이 숨어 있다”며 음악 분석을 통해 작품의 깊이를 드러냈다.
백작 부인의 아리아에 대한 해석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백작 부인은 고발 대신 관용을 택한다”며 “이는 굴복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의 저항”이라고 설명했다. 귀족 신분의 여성이 하인과 옷을 맞바꿔 입고 남편의 부정한 행동을 폭로하는 장면은 신분제 사회에서는 파격 중의 파격이며, 이는 곧 ‘연대’와 ‘평등’의 또 다른 형태라고 풀이했다.
현대적 의미를 더한 해설도 이어졌다. 박경준 동문은 “오페라 속 인물들의 욕망과 불안, 기분 전환의 패턴은 현대인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SNS 중독, 온라인 쇼핑, 음주 등 현대인들의 기분 전환 방식을 예로 들었다. 그는 “시지프스 신화처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의미를 찾는 방식이 오페라 인물 분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며 ‘부조리 속의 선택’이라는 존재론적 문제를 흥미롭게 연결했다.
강연 후반부에서는 영화 쇼생크 탈출에 등장하는 ‘피가로의 결혼’의 이중창 ‘Sull’aria(산들바람)’을 소개하며 음악의 위로 효과를 강조했다. “이 곡은 바람이 고민을 스쳐 지나가 해결의 자리까지 데려다 놓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쓰레기통을 비우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박 동문은 자신의 저서에 수록된 ‘위로의 음악 리스트’도 소개하며 “명상처럼 가만히 듣기만 해도 파장이 마음을 안정시킨다”고 조언했다.
강연이 끝난 뒤 송우엽(체육교육79) 사무총장은 “오페라가 철학과 역사, 인간학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 시간이었다”며 “예술이 시대정신의 변화를 이끈다는 사실이 깊이 와 닿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특강 참석자 전원에게는 박경준 동문의 저서 ‘오페라 인문학Ⅳ’와 함께 다과가 제공됐다. 본회는 내년에도 다채로운 주제로 동문들과 함께하는 수요특강을 이어갈 예정이다.이정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