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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호 2025년 12월] 뉴스 모교소식

안 걸리면 그만? 경영대 ‘통계학실험’ 중간고사에서 AI 부정행위 

대학가 뒤흔든 AI 시험 커닝 ‘지속가능한 AI 워크숍’ 개최
안 걸리면 그만? 경영대 ‘통계학실험’ 중간고사에서 AI 부정행위 

박경수 컴퓨터공학부 교수가 AI를 활용해 과제를 낸 일부 학생들이 중간, 기말 고사에서 최하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은 예를 설명하고 있다 
 
대학가 뒤흔든 AI 시험 커닝
‘지속가능한 AI 워크숍’ 개최

생성형 AI의 확산이 대학 교육의 기반을 흔드는 가운데, 서울대 학부대학은 지난 11월 21일 ‘지속가능한 AI 워크숍’을 열어 대학이 직면한 현실을 진단했다. 이날 ‘챗GPT로 숙제해도 될까요?’라는 주제로 발표한 박경수(전산과학93)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표면적으로는 간단한 질문 같지만, 실제 문제는 훨씬 복잡하다”고 운을 뗐다. AI를 금지한 수업에서 학생들이 실제로 AI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숙제는 만점, 시험은 평균 이하
박 교수는 자신의 수업 사례를 제시하며 “대학이 이미 구조적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다”고 말했다.

100명 넘게 듣는 시스템 프로그래밍 과목에서 과제 점수는 학기 후반으로 갈수록 중간값이 만점에 이르고, 가장 난도가 높은 과제까지 130점 만점에 130점을 기록한다. 그러나 AI를 사용할 수 없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평균이 50점 남짓이다.

“과제는 상향평준화되고, 시험은 하향평준화되는 흐름입니다.” 박 교수는 이 괴리가 단순한 실력 차가 아니라 “AI 활용 여부가 만들어낸 구조적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과제는 만점이지만 시험은 한 자리 점수인 학생도 적지 않았다. 표절을 적발한 사례도 있었으나, 적발되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하면 학생들의 판단 기준은 더욱 흐려질 수 있다. “걸리지 않으면 계속 써도 된다는 인식이 생기는 것 아닐까요.” 박 교수의 우려는 심각했다.

의심스러운 성적으로 화면에 보여준 학생3의 경우 과제 점수는 만점에 가깝지만 AI없이 진행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낙제에 가깝다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합의 필요
최근 서울대 경영대 ‘통계학실험’ 중간고사에서 발생한 AI 부정행위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서울대 대학신문 사설은 이를 “일부 학생의 일탈”로만 설명한 학교 조치에 대해, “AI 시대의 학문 윤리 기준을 대학이 마련하지 않은 구조적 문제를 개인 도덕성으로 환원했다”고 비판했다.

사설은 대학이 더 이상 ‘사용 금지’ 또는 ‘개인 양심’에 맡기는 방식으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AI가 평가·학습의 전제를 바꾸고 있는 만큼  어디까지 활용을 허용할 것인지, 어느 시점에 AI 사용을 공개해야 하는지, 어떤 경우를 표절로 볼 것인지 기준을 보편적으로 합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부정행위를 둘러싼 논란은 대학의 교육 환경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코로나 이후 서울 주요 대학의 온라인 강의는 6년 만에 162개에서 854개로 늘었다. 600명, 1400명이 듣는 초대형 비대면 강좌에서는 교수와 조교가 화면으로 학생들의 동선을 모두 감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문제를 입력하는 즉시 정답을 내놓는 생성형 AI의 등장과 결합해, 기존의 부정행위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형태의 ‘AI 커닝’이 확산하는 것이다.


온라인 강의 증가가 만든 위험
   각 대학은 감독 장비를 늘리거나 대면 시험을 권고하고 있으나, 공간·인력·수강 수요 등의 제약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온라인 강의를 없앨 수는 없지만, 시험만큼은 대면으로 치러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는 현실적 고민을 반영한다.

  교육부는 최근 연세대·서울대·고려대에서 잇달아 발생한 AI 부정행위 사례를 분석하며, 내년 초 대학가에서 사용할 ‘AI 윤리 가이드라인’ 개발에 착수했다.

  가이드라인은 부정행위 기준의 명료화,  AI 환각 최소화·격차 완화 방안,  교수용·학생용 이중 구조 등을 담을 예정이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대학이 자율적 기준을 설계하는 데 필요한 기본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첫 시도다. 전문가들은 “표절 판단 기준 등 핵심 요소는 명확히 하되, AI를 교육적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학생 AI 윤리 가이드라인’ 추진
  박 교수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AI 활용의 허용 범위를 구체적으로 구분하고, 학생들에게도 이를 이해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 문서 교정 수준은 허용될 수 있으나, 논지 구성·문장 재작성·아이디어 생성·실험 데이터 제작 단계로 넘어가면 학문의 근간을 건드리는 문제라고 했다.

  서울대 학부대학이 도입한 ‘지속 가능한 AI 리더십’ 인증 과정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기획됐다. 학생들이 AI의 기본 원리, AI 개발·활용 과정에서의 법·정책·윤리, 데이터 중심 인공지능을 이해해야만, AI 시대의 학문 공동체가 지속될 수 있다는 취지다. 박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AI에게 사고를 넘기기 시작하면, 우리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를 잃게 됩니다. 대학이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결국 ‘무엇을 정당한 성취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