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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호 2025년 12월] 문화 동아리탐방

“요트 타며 바람 아니라, 마음 조종하는 법 배워요”

직접 만든 배 운전이 동아리 출발 80명 회원·무동력 요트 4척 보유  
“요트 타며 바람 아니라, 마음 조종하는 법 배워요”
 
서울대 요트부(SNU Sailors) 

한강에서 세일링을 즐기는 요트부원들.매주 토, 일 난지한강공원서 정기 세일링을 한다. 
 
직접 만든 배 운전이 동아리 출발
80명 회원·무동력 요트 4척 보유  
“한강에서 요트를 탄다고요?” 캠퍼스보다는 도서관과 강의실이 먼저 떠오르는 서울대에서, 주말마다 바람을 읽는 학생들이 있다. 요트를 직접 몰고 한강을 가로지르는 이들은 바로 서울대 요트부다. 최근 회원이 부쩍 늘어난 ‘요트 타는 학생들’의 모임.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노민성(건설환경24) 주장을 직접 만나봤다. 노민성 주장은 “요트를 처음 탔을 땐 겁이 났지만, 바람을 읽는 법을 배우며 오히려 평온해졌어요”라며 웃었다. 

요트부는 1987년 창립된 서울대 스포츠진흥원 소속 공식 운동부다. 당시 조선해양공학과에 재학 중이던 이신형(조선해양86) 교수와 동기생 4~5명이 “직접 배를 만들어보자”는 뜻을 모은 것이 시작이었다. 학생들은 함께 설계하고 제작한 요트를 실제 물 위에 띄워 시운전을 했고, 그때 느낀 짜릿함이 오늘의 요트부로 이어졌다. 이 교수는 초대 주장으로 활동한 뒤 현재까지 지도교수로 남아, 한강에서 바람을 배우는 전통을 잇고 있다. 

요트부의 정기 세일링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난지한강공원 서울수상레포츠센터에서 열린다. 시험기간을 제외하면 매주 한강 위에 학생들이 선다. 참여자는 주마다 약 10명 내외로, 신입 부원은 ‘범장(조립)’과 ‘해장(해체)’ 교육을 마친 뒤 탑승한다.

요트부가 타는 배는 1~2인승 딩기형 ‘레이저(Laser)’급으로, 현재 4척을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 노후화돼 있으나 여전히 매주 수면을 가른다. “바람이 약하면 배가 멈추지만, 그조차도 배움이 돼요. 바람을 거스르지 않고 기다리는 법을 알게 되거든요.”

요트를 타면 바람을 느끼는 감각이 달라진다. 노 주장은 “다른 사람들은 그냥 스쳐 가는 바람을, 우리는 풍상,풍하(바람의 방향)으로 구분해요. 앱으로 풍속을 확인하고 몸으로 기억하죠.”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 요트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삶의 은유다. “바람이 세면 이기려 하기보다 자세를 낮춰야 배가 나아갑니다. 자연을 이길 수 없다는 걸 배우죠.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때로는 힘을 빼야 더 멀리 갑니다.”

한강을 벗어나면 요트부의 무대는 바다다. 2024년에는 부산 해양대에서, 이번 여름에는 양양 수산항 일대에서 해양훈련을 진행했다. “파도가 거세던 날, 한 번은 요트가 캡사이즈(전복)되기도 했어요. 바람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세일링 속에서 인간의 힘이 얼마나 미약한지, 그때 절실히 느꼈습니다.” 겨울엔 태국으로 요트를 컨테이너로 보내고 전지훈련을 떠난다. “대학생이 아니면 해볼 수 없는 경험이에요. 인생에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도전이죠.”

현재 부원은 약 80명. 공대와 경영대를 비롯해 인문·미술·음악·약학 등 거의 모든 단과대학 학생들이 함께하며, 학부생부터 박사과정생까지 폭넓게 구성돼 있다. 외국인 학생도 참여해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다. 활동이 없는 비시즌에는 ‘동아리 내 동아리(동내동)’ 문화가 이어진다. 맛집 탐방, 테니스 모임 등 소모임이 꾸려져 자연스럽게 친목을 쌓는다.

현재 요트부가 보유한 4척의 배는 20여 년 전, 요트부 창립 20주년을 맞아 선배들이 모금한 기금으로 마련됐다. 당시 국내에서 열린 세계 레이저 대회 경기용 요트를 불하받아 구입한 것으로, 지금도 주요 세일링 훈련에 사용되고 있다.

2024년에는 90년대 선배들이 참여한 홈커밍 행사를 열었고, 이를 계기로 발전기금 모금운동이 시작됐다. 이후 약 2천만원의 기금이 조성됐다. 그러나 현실적 어려움도 크다. 한강 보관료만 연 35만원, 요트 한 척을 새로 들이려면 중고는 약 1000만원, 신형은 그 두세 배의 비용이 든다. 학교의 스포츠진흥원 지원금(연 180만원)은 소모품 구입에 한정돼 있다. 특히 발전기금은 학교 자산 규정상 중고 구입이 어렵고 입찰 한도도 제한돼 있어, 사실상 ‘선체’ 교체에는 사용할 수 없다. 20년 넘은 배를 수리해 쓰는 이유다. “요트의 생명은 선체인데, 발전기금으로는 바꿀 수 없어요. 그게 가장 아쉽죠.”

요트부는 장차 모집을 통해 교내 구성원이 직접 요트에 탑승해 보는 ‘요트 체험주간’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노민성 주장은 “요트는 진입장벽이 높은 스포츠로 여겨지지만,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며 “체험 주간이 출발선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연 3~4회 열리는 한강 세일링 대회에 전부 참가해 ‘서울대의 바람’을 이어간다는 목표도 세웠다. “요트는 바람을 읽고 균형을 잡는 운동입니다. 물 위에서 균형을 배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삶의 균형도 돌아보게 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요트부가 더 오래 항해할 수 있도록, 선체 교체와 동아리방 마련에 동문 선배님들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송해수 기자


홈커밍데이에 모인 OB와 YB 회원들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