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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호 2025년 11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이토록 소중한 보수

이토록 소중한 보수


김영희(고고미술88)
한겨레 편집인
본지 논설위원

얼마 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쿠팡의 심야배송 제한 문제를 두고 토론을 벌였다. 현역 의원이 아닌 두 사람의 존재감 과시용이라느니, 어느 쪽이 더 잘했느니 말이 나오지만, 난 이런 자리가 성사된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바로 비교될 사안은 아니지만 3년 전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의 TV 토론이 떠올랐다. 토론배틀의 ‘달인’이자 장애인 혐오주의자 지적을 받는 이준석 대표에게 이용만 당하지 않겠냐는 우려에 대해 박경석 대표는 내게 말했다. “설사 99%로부터 욕을 먹더라도 우리의 이야기 하나만 제대로 듣는 기회라면 그걸로 된다.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건, 욕먹는 게 아니라 잊혀지는 거니까. 지난 20년간 시설에서, 지하철에서, 수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비극적으로 소비되고 반복적으로 잊혀졌다.”

토론 한번으로 사회의 합의를 이끌어낼 순 없는 법이다. 이런 토론들이 제대로된 공론으로 매번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하는 의제나 ‘목소리’를 빼앗긴 이들의 이야기를 사회에 들리게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의미있는 일 아닌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몰아넣던 12.3 비상계엄 이후 1년 가까이 되어가는데도 거리의 극단적 시위와 구호가 거센 요즘, 합리적 진보 만큼이나 대화하는 합리적 보수의 존재는 무척 소중하게 느껴진다.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로 잘 알려진 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달 한겨레가 주최한 포럼 기조강연에서 “극단적 분열의 시대일수록 반대편에서 동맹이나 최소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참여한 보수정치인들의 존재를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적 양극화를 완화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면 그들이 반드시 필요한 동반자라는 것이다.

역시 포럼의 기조강연자였던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사회통합을 위해 공론의 장 회복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관용과 자제’를 실천하는 정치인에게 ‘비겁한 타협을 했다’는 평가가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비상계엄이나 서부지법폭동 사태를 옹호하고 대통령 탄핵을 부정하는 등 민주주의의 ‘선’을 넘는 세력마저 관용과 자제의 대상이 될 순 없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이들까지 적대시하거나 절멸의 대상으로 삼을 때, 보수 내 합리적 세력의 입지는 더 줄고 사회의 극단주의화는 더 가속될 뿐이라는 점이다. 

그날 작심한 듯 대법원과 여당 양쪽에 쓴소리를 이어나가던 문 전 대행은 “이런 사회를 만들고 싶어 탄핵결정을 한 것”이라며 백범 김구 선생의 글귀를 인용했다. “산에는 하나의 나무만 나지 아니하고 들에는 하나의 꽃만 피지 아니한다. 여러가지 나무가 어우러져 위대한 산림의 아름다움을 이루고 백가지 꽃이 섞여 피어 봄들의 풍성한 경치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