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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호 2025년 1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한화의 2025년을 기억하며

한화의 2025년을 기억하며


김희원(인류89)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실장
본지 논설위원

나는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평생 LG 트윈스를 응원해 왔다. 올해의 우승팀이다. 그러나 이번 시즌만큼은 준우승팀 한화 이글스에 더 마음이 간다. 어째 미안한 감정마저 든다. 그럴 수밖에 없는 해였다. 모든 드라마와 기록의 주인공은 단연 독수리들이다.

한화가 어떤 팀인가. ‘만년 꼴찌’ 아니었던가. 한화가 꼴찌로 떨어진 2009년 이후만 봤을 때 2009~2010년, 2012~2014년, 2020~2022년 정규시즌 기록이 최하위였다. 그 외의 해에도 8~9위가 많았다. 지난해까지 16시즌 동안 한화가 가을 야구를 한 것은 2018년뿐이었고 한국시리즈에는 오르지 못했다. 40년의 KBO 역사에서 한화의 우승은 단 한 번. 20세기인 1999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한화의 스토리를 만들어 온 것은 꼴찌 기록이 아니다. 만년 꼴찌를 포기 못하는 팬들이다. 마리화나, 한화보살로 불리며 스포츠 응원에서 가능한, 아니 가능하지 않은 온갖 좌절과 고통과 체념과 득도를 온몸으로 견디는 이들이다. 온갖 밈을 생산하고, 꼴찌로 시즌을 끝내도 불꽃놀이를 즐기고, 역전패에 상처를 입어도 다시 경기장을 찾는 그들이 한화의 스토리를 써 왔다.

올해는 한화가 우승할 수 있는 절호의 해였다. 하위권에 머무는 동안 우선 지명권으로 확보한 강속구 투수 문동주, 거포 노시환 등이 안정적으로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외국인 투수 1, 2선발은 ‘리그 최강’을 넘은 ‘KBO 역대 최고’였다. 한화는 정규시즌 내내 강했다. 믿기 어려운 승리를 계속했다. 한때 2위 팀을 5.5게임 차로 앞선 단독 1위로 질주했고, 시즌 끝까지 치열한 1위 경쟁을 벌였다. 정규시즌 승률 0.593. 그들은 약팀이 아니었다.



올해는 한화가 우승해야만 하는 해였다. 역대 기록을 죄다 갈아치운 전설의 투수 코디 폰세는 단 1년 계약이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눈독을 들인 터라 내년에도 그가 있으리라 기대하기 어려웠다. 2만 석 규모의 새 구장을 3월 개장했고 팬들은 정규시즌 73경기 중 68경기를 매진시켰다. 팬들은 긴 어둠의 시절을 모두 잊었으리라. 벅찬 꿈에 부풀었으리라. 한화는 트레이드 마감일인 7월 31일 저녁 손아섭을 영입해 우승을 향한 마지막 퍼즐 조각을 끼워 넣은 듯했다.

한국시리즈는 허망했다. 아니 충격적이었다. 와이스가 117구나 던지며 8.2이닝 1실점의 인생투를 던진 경기를 9회에서 역전당하다니. 돌풍의 주역, 33세이브의 마무리 김서현이 무력하게 얻어맞다니. 폰세와 와이스라는 강력한 원투 펀치를 플레이오프에서 소모해 한국시리즈 1, 2차전에 내지도 못하다니.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야구이고 인생인 것을. 28년이라는 긴 기다림 끝에 LG가 우승하리라 믿었던 2022년 그 허망한 가을을 기억한다. 15승 투수가 2회에 강판되고 번트로 안타 치던 타자가 희생번트조차 실패하는 난국 끝에 LG는 3위 팀에 플레이오프를 내주고 한국시리즈에는 올라가지도 못했다. LG 우승을 죽기 전에 볼 수나 있을까 하는 심정이었다.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더 이상 한화를 응원하지 않겠다’는 어느 팬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 그들은 돌아올 것이다. 계속 구장을 메운 채 승리를 기원할 것이다. 환희로 가득한 2025 시즌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응원을 응원한다. 우승까지 시간이 더 걸려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29년 만에 우승을 맛본 LG 팬도 있고, 1992년 우승이 마지막인 롯데 팬들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