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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호 2025년 11월] 오피니언 추억의창

400원 백반과 100원 커피의 추억

400원 백반과 100원 커피의 추억


임 일 (경영84)
연세대 경영대 교수

모교를 떠난 지 벌써 30년이 넘어가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학생 때 돌아다녔던 교정의 모습이 어제처럼 눈에 선하다. 얼마 전에 모교를 방문했을 때 빼곡히 들어선 건물들을 보며 발전된 모습이 기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내 젊은 날의 추억이 지워진 것 같아서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학교 다닐 때의 모교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과 주관적인 생각을 얘기해 보겠다.

모교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거대한 정문과 길고 긴 진입로이다. 그리고 점심, 저녁을 해결하던 학생식당 또한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 당시 학생회관 1층 학생식당은 식판에 받아먹는 백반이 400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허접한 음식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배고픔을 저렴하게 해결할 수 있는 소중한 곳이었다.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학교 안에서 데이트를 하면 학생식당 밥 2인분과 100원짜리 자판기 커피 2잔으로 1000원에 데이트 비용을 해결할 수 있다”고 얘기하기도 하였다. 학생식당의 밥이 싫증나면 사범대학 건물 위에 있던 ‘사대 깡통’이라고 불리던 간이 식당에서 짜장면이나 우동을 사서 아주 맛있게 먹던 기억이 있다. 가끔은 공대에 있는 간이식당(공대 깡통)에서 면을 먹기도 했는데, 공대 깡통의 면은 굵고 질겨서 학생들이 ‘고무줄’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 다음으로 기억이 나는 것은 전국 각지에서 온 다양한 친구들이다. 필자가 다니던 경영학과는 한 학년에 300명이 넘는 학생이 있었고 출신 지역들이 다양하였다. 처음에는 좀 낯설게 느껴졌던 다른 지역 출신 친구들이었지만 조금 지나서 금세 친해졌고 오히려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다고 느꼈었다. 필자도 지방에서 유학을 한 경우라서 학교 다니는 내내 봉천동 관악구청 뒤쪽에 있던 하숙집에서 생활했다. 하숙집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 카드놀이를 좋아하는 친구, 당구를 잘 치는 친구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서 재미있는 일도 많았고 배우는 것도 많았다.

학교에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고 나서는 보통 자판기 커피를 뽑아 들고 중앙도서관 통로에 있는 일명 ‘빨랫줄’이라는 층계에 앉아서 친구, 선후배들과 얘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을 하면서 소화를 시키곤 했다. 이 당시 친구, 선후배들과 했던 얘기가 인생을 사는데 큰 지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식후 ‘팩 차기’ 운동이었다. 지금은 사라져 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유팩을 동그랗게 만들어서 여러 사람이 둥글게 서서 제기 차듯이 우유팩을 차는, 서울대 고유의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일러스트 김나은(디자인17) 그래픽 디자이너

필자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사회,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대부분의 학우들이 학교 공부보다는 국가 걱정을 더 많이 하던 시절로서 사회와 국가에 대한 고민과 울분도 많았다. 여러 가지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학우들도 있었고 시위에서 다치거나 잡혀갔던 학우들은 부지기수였다. 시위가 벌어지면 캠퍼스는 최루탄 연기가 자욱하여 눈물, 콧물을 쏟았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공부를 하는 것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고, 나라 걱정에 녹두골이나 봉천동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격정적인 토론을 하곤 하였다. 한 번은 선배와 같이 신림동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돈이 없어서 학생증을 맡기고 외상을 하자고 하였다. 그랬더니 주인아저씨가 말없이 박스를 하나 보여주었는데, 거기에는 찾아가지 않는 학생증이 가득 들어있던 것이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주인아저씨는 얼굴도 찡그리지 않고 외상을 해 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주인 아저씨가 학생운동을 하다가 학교를 그만둔 모교 선배라는 소문도 있었는데 확인되지는 않았었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10시(아니면 11시였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가 되면 대학본부 앞에서 봉천동과 신림동으로 가는 학교셔틀버스가 운행되어 감사하게 자주 이용했던 기억도 있다. 그 당시 밤 늦게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던 학우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가끔 생각하기도 한다.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