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2호 2025년 11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사법부 독립은 민주주의 마지막 안전장치”
“사법부 독립은 민주주의 마지막 안전장치”




한정훈(정치91)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전상현(언론정보91)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법관 증원, 객관적 지표 근거해야 신뢰얻어
재판소원, 헌재 심판절차 관련법 개정이 먼저
국민참여 영장제, 사법의 정치화 가속 우려
최근 여당 발 ‘사법 개혁’이 핫이슈로 부각 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대의민주주의이고 동시에 3권분립이다. 헌법 체계에서 국회와 행정부와 사법부 간의 견제와 균형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사법 개혁 및 관련법의 내용과 문제점은 무엇이며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어떤 성찰이 필요한가? 11월 10일 이경형(사회66) 본지 편집인의 사회로 모교 국가미래전략원 민주주의 클러스터장인 한정훈(정치91)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헌법학자인 전상현(언론정보91)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대담을 통해 들어봤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3권분립의 본래 의미를 어떻게 보십니까.
한정훈 교수 : 정치 체제를 구분할 때 우리는 ‘권력 융합형’과 ‘권력 분립형’을 이야기합니다. 전자는 의원내각제처럼 입법과 행정이 하나의 책임 정당 구조 안에서 결합되는 형식이고, 후자는 대통령제를 중심으로 한 권력 분립형입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이기 때문에 입법부와 행정부가 별도의 선거를 통해 구성되고, 상호 견제₩균형 관계를 이룹니다. 사법부는 여기에 더해 제3의 독립 권력으로서 법의 최종 판단을 맡습니다. 어떤 체제에서도 사법부의 독립은 민주주의의 마지막 안전장치이자 시민의 권리보호선입니다.
전상현 교수 : 프랑스혁명을 전후해 권력분립 원리가 입헌주의의 기본원리로 제시될 때, 주안점은 입법이나 행정으로부터 사법을 보호하는 데 있었다기보다는, 반대로 국민의 대표가 만든 법률 또는 그것의 집행을 사법부가 거부하거나 왜곡하지 못하게 하는 데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국왕의 개혁 시도가 이른바 법복귀족들에 의해 번번이 가로막혔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법치주의 실현을 위해 사법권의 독립이 보장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법부가 법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입법권이나 행정권을 침해하는 것도 허용될 수 없습니다
-선출 권력과 임명 권력의 위상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한정훈 : 선출권력은 국민이 직접 권한을 위임한 대표입니다. 유권자가 주권의 일부를 ‘이양’했기에 정통성이 강합니다. 임명권력자는 선출권력에 의해 간접적으로 위임된 행정집행자입니다. 그래서 국회의 국정감사나 조사 과정에서 임명직 공무원이 자신을 ‘한 사람의 유권자’로만 동일시해 선출권력과 동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제도적 오해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직무에 대해 국민에게 대신 보고할 의무를 지는 위치이지, 대표권을 주장할 위치는 아닙니다.
전상현 : ‘선출 권력’과 ‘임명 권력’을 나누어 우열을 가리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모든 국가기관은 헌법이 자신에게 부여한 권한을 행사할 뿐입니다. 임명된 기관에 비해 국민이 직접 선출한 기관은 민주적 정당성이 더 크기 때문에 더 큰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것은 결국 헌법이 정할 문제입니다. 모든 국가기관은 다른 국가기관이 헌법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것 또한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최근 대법원장 증인 출석 문제로 국회와 법원 사이의 갈등이 불거졌습니다.
전상현 : 사법권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하므로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서 질문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선거 기간 중 논란이 된 대법원 판결은 시기적으로나 절차적으로 매우 이례적이었고 많은 국민들이 의아해하는 부분이 있었으므로, 국회도 당연히 질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국회가 특정 사건의 재판부를 직접 불러서 판결의 시비를 따지는 것은 재판의 독립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재판에 관여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이 법원을 대표해 국회에 출석해 답변하는 관행도 국회의 질문권은 보장하면서도 재판의 독립 또한 지켜주기 위한 것입니다.
한정훈 : 입법부가 사법부를 견제할 수 있으려면 절차적 정당성이 전제돼야 합니다. 의혹만으로 사법부 수장을 불러 세우는 것은 헌정 질서상 매우 조심해야 하는 일입니다. 명백한 증거가 밝혀졌을 때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대법원장도 부를 수 있습니다.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기관이라면, 조사와 분석, 여야의 합의라는 최소한의 성숙이 필요합니다. 그 토대 없이 ‘정치적 압박’ 형태로 사법부를 다루면 국민들이 신뢰하지 않습니다.
-여당이 추진하는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안은 어떻게 보십니까.
전상현 : 대법관 증원의 필요성은 1950년대 후반부터 제기돼 왔습니다. 당시에도 대법원의 사건부담을 이유로 법원조직법을 개정해 대법관의 숫자를 늘리려고 했지만 대법원의 강력한 반발로 실패했습니다. 현재는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건이 늘었는데, 매년 4~5만 건이 대법원에 접수됩니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빼면 12명의 대법관 한 명당 1년 평균 4천 건을 처리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다른 대법관들과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게 과연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듭니다. 독일은 대법원이 5개로 나뉘어 있는데 법관 수는 300명 이상입니다. 프랑스도 100명이 넘고, 스페인도 80명 정도 됩니다. 미국연방대법원이 9명이라는 것과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미국연방대법원은 우리의 헌법재판소와 비교돼야 합니다.
한정훈 : 사법개혁의 명분이 실질적 근거 위에서 논의되길 바랍니다. 법관이 과중한 업무로 공정한 재판을 하기 어렵다면, 증원이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이를 ‘권력 재배치’의 수단으로 바라보면 국민들은 의심부터 하게 됩니다. 정치적 동기에 앞서 사회적 진단, 객관적 지표를 근거로 해야 개혁이 국민적 신뢰를 얻습니다.
-4심제 논란이 일고 있는 ‘재판소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상현 : 재판소원 도입 여부는 정책적인 판단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재판소원의 도입이 헌법 해석의 통일성과 기본권 보장의 강화라는 측면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재판소원을 도입하면 필연적으로 헌법재판소의 심리부담 문제가 제기됩니다. 현재 대법원이 겪고 있는 심리부담의 문제가 헌법재판소로 옮겨질 수 있습니다. 재판소원은 ‘중요한 헌법 문제’로만 제한하고 헌법재판소의 심판 절차에 관한 법개정이 선행돼야 합니다.
한정훈 : 제도 도입 자체보다 정치적 과잉입법과 제도 남발의 문제가 우려됩니다. 사회적으로 충분한 논의와 합의 없이 돌연히 제도를 만들거나 ‘옥상옥’ 구조로 쌓아가는 것은 오히려 사법 신뢰를 해칩니다. 재판소원 역시 사법 신뢰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라면 좋지만, 정치적 이해에 휘말려 추진된다면 국민의 헌법감각과 법감정 사이의 불일치를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실제 필요성과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며, 정치적 이슈로 몰아가는 식의 제도 입법은 민주주의의 성숙을 가로막습니다.
-‘법왜곡죄 신설’, ‘국민참여 영장심사법’ 등에 대한 견해도 듣고 싶습니다.
전상현 : 공무원이 직무상 권한을 남용하여 다른 사람의 자유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한다면,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판사나 검사의 권한 행사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법질서에 대한 신뢰와도 직결되는 것이어서, 부당한 권한남용을 더욱 강력하게 금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점에서 법왜곡죄의 취지 자체는 인정할 수 있습니다. 다만, 법왜곡죄에 의한 수사와 처벌이 이번에는 판사나 검사에 대한 부당한 공격이나 직무수행의 독립성에 대한 침해로 이용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에도 법왜곡죄를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 처벌의 사례는 매우 적습니다. 법왜곡죄의 도입 여부는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영장심사에 국민이 참여하게 하는 것 역시 의문이 있습니다. 영장이란 강제수사를 위한 법원의 허가장인데, 수사가 진행중인 단계에서 영장심사에 국민이 참여하게 되면 수사의 비밀성이 지켜지지 않아 증거인멸을 막기 어렵고 수사의 진행도 어렵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헌법은 영장 발부를 ‘법관’이 결정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국민이 영장 발부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한정훈 : 국민참여 영장심사제도는 ‘참여’라는 이름으로 민주적 이미지를 덧씌운 제도로 보입니다. 전문적 판단이 요구되는 절차를 일반 시민 배심이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사법의 정치화를 가속화 할 우려가 있습니다. 시민 참여가 필요한 영역은 정책 숙의 같은 공적 의사결정이지, 재판의 기술적 영역은 아닙니다. 사법의 민주화와 사법의 전문화를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판결 하나하나가 정치적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사법의 정치화, 어떻게 보십니까.
한정훈 : 정치가 사법에 의존하고, 사법이 정치의 연장선으로 해석되는 상황이 가장 위험합니다. 정치는 원래 민주적 설득과 조정의 영역인데, 정치 세력이 이를 회피하고 사법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그러면 사법부도 정치의 언어를 배우게 됩니다. 이 악순환 속에서 ‘정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고, 더 많은 법과 제도를 쌓아 올리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결국 옥상옥의 구조가 됩니다.
전상현 : 과거 70-80년대 권위주의 체제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국가권력에 의해 유린될 때, 자신의 권한으로 기본권을 보호했어야 할 사법부는 주로 침묵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오히려 사법부가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사법권도 국가권력이므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합니다. 다만, 사법부의 독립은 여전히 보장되어야 하는데, 이는 정치를 통해서가 아니라 사법의 전문성을 통해서 실현돼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입니까.
한정훈 :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자유로운 선거, 표현의 자유, 권력분립은 그 최소 조건일 뿐입니다. 그 위에 사회적 신뢰를 세우는 덕목이 ‘상호 관용과 자제’입니다. 요즘 우리는 ‘자유’를 거의 절대적인 권리로 이해하지만,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인정할 때만 성립합니다. 공공성의 제약을 무시한 자유는 방종입니다. 결국 신뢰가 붕괴된 공동체는 민주주의의 생명력을 잃습니다. 87년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절차의 민주화를 이뤘습니다. 이제는 ‘성숙한 시민의 덕목’으로 한 단계 더 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제언을 부탁드립니다.
전상현 :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여당은 자신이 지금 야당이었더라도, 야당은 자신이 지금 여당이었더라도 동의할 수 있는 입법을 추진해야 합니다. 사법개혁도 국회의원, 판사, 검사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수사나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자신에게 유리한 제도가 머지 않아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한정훈 : 남미의 대통령제는 초기에 민주화와 경제발전의 꿈으로 출발했지만, 권력 집중이 심화 되자 곧 부패로 변질됐습니다. 권력자는 사법부와 언론을 장악하고, 사회의 감시망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는 순식간에 독재로 바뀝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권력이 집중될수록 불신과 분열이 커졌습니다. 따라서 협치와 권력 분산은 거대담론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정치는 단기선거의 이익에서 벗어나 국가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정리=김남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