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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호 2005년 1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수습, 아니 사회부 이지은입니다"

李 知 恩(동양사학00 ­05) YTN 사회부 기자

"마포경찰서요~"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택시를 잡아탄다. 택시 안에서 즐기는 달콤한 잠에 빠지고 싶건만, 한산한 새벽시간에 신호도 한 번 걸리지 않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들려오는 택시 아저씨의 매정한 목소리. 󰡒아가씨, 다 왔으니까 일어나요." 새벽 공기를 한번 들이마시며 익숙한 경찰서 안으로 들어선다. 다시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다.  9개월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찰서에 들어섰다. 처음에 가장 두려웠던 건 다름 아닌 형사계 철문이었다. 이 문을 어떻게 열어야하나 5분쯤 고심하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저기요. 형~님, 이것 좀 열어주세요"라고 말하자 찰칵 열렸던 문. 하지만 이제는 누가 열어주지 않아도 알아서 철창 사이로 손이나 볼펜을 넣어 잠금쇠를 풀고 내 방 들어가듯이 편안하게 들어가고 있으니 역시 하다보면 다 익숙해지는 것이 인생의 진리인가보다.  형사계와 강력계를 찾아가 얼굴에 피곤이 가득한 `형님'들을 붙잡고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지만 역시 오늘도 단순폭력 사건이 대부분이다. 왜 이리 세상에는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쳐다봤다고, 또는 부딪치고 갔다고 때리고 싸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인지. 기자가 되기 전에는 정말 몰랐던 사실이다. 혹시 있는데도 알려주지 않는 사건은 없는지 눈치껏 분위기를 잘 살펴보고 컴퓨터 모니터에 떠있는 문서들도 살짝 넘겨보는 일도 필수. 마포대교와 강변북로에 교통사고는 없었는지, 혹시나 한강에 투신 사건은 없었는지 챙기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보고 시간이 다가온다. 보고 직전의 1분 1초는 작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순간. 정신없이 보고를 올리고 전날 저녁의 주요 뉴스와 조간 신문을 확인하고 나면 잠시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경찰서로 출근하는 사람들의 행렬을 거스르며 아침을 먹으러 가는 길에 생각해본다. 이제야 보통 사람들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구나…. 아침잠이 많아 아침 수업을 듣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1교시를 스스로 `킬'시켰던 게 불과 1년 전 모습인데, 이제는 하루에 4~5시간만 자도 끄떡없다.  기자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겨우 9개월, 겨우 반올림을 해서 1년 차라고 말할 수 있는 풋내기라서 인지 아직도 전화를 받을 때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사적으로 "수습 이지은입니다"를 외치곤 한다. 하지만 전화번호를 물어보러 114에 전화해서 "YTN 수습 아무개입니다"를 외쳤다는 동기보다는 나은 게 아닌가하며 웃어넘겨 본다.  지난 6개월 수습기간 동안, 나의 주제어는 다름 아닌 `반성문'이었다. 수습 초창기 시절, 회식 끝나고 라인으로 돌아가 쉬라는 선배들의 말을 어기고 동기들끼리 `맥주 한 잔 하자'며 모였던 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다음날 들통나 버렸다.  우리에게 떨어진 벌은 반성문 10장씩 쓰기. 이렇게 시작된 나의 반성문 인생은 거짓말 좀 보태서 마일리지로 쌓으면 냉장고도 거뜬히 탈 정도였다. 수습을 위한 반성문 작법 책이라도 한 권 쓰라는 동기들의 농담 섞인 진담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왜 열심히 취재한다고 했는데도 선배의 불호령이 떨어지면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마는지, 잠깐 씻으러 가도 될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비닐봉지에 휴대전화를 싸들고 목욕탕을 향하면 하필 그 순간 일진 선배의 호출이 떨어지는지, 열심히 경찰서를 샅샅이 돌 때면 없던 큰 사건이 `괜찮겠지'하며 경찰서에 전화만 걸어봤을 때에 터지고 마는지. 정말 이건 머피의 법칙이 아닌 수습의 법칙이다.  하지만 수습을 무사히 떼고 부서 배치를 기다리던 날, 말로는 `다른 부서 갔으면 좋겠다'라고 했으면서도 막상 경찰팀에 발령이 나자 얼마나 안도의 한숨이 나왔는지 모른다. 하루 종일 접하는 각종 절도와 교통사고, 화재, 강도 등의 사건사고에 성격이 어두워지면 어떡하나 푸념도 늘어놓아 보지만 그래도 현장의 생생함을 느낄 때가 가장 짜릿한걸 보면 나는 어쩔 수 없는 경찰기자 체질인가보다.  올해 초 입사할 때 노보에 쓴 합격 소감에 이런 말을 적어냈다. `나는 마키아벨리가 말한 운명의 여신은 보다 덜 신중하고 더 대담한 젊은이의 편이라는 말을 믿는다. 이제 젊음이 주는 대담함과 용기를 가지고 기자라는 나의 꿈을 YTN에서 펼쳐보고 싶다'고. 그로부터 9개월. 회사에서 스쳐 지나가는 선배들이 묻는 재미있냐는 질문에 부족하지만 더 열심히 해보겠다는 틀에 박힌, 하지만 진심이 담긴 말로 대답하곤 한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전화벨이 울린다. 씩씩한 목소리로 이렇게 받아야지, "수습, 아니 사회부 이지은입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