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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호 2025년 10월] 오피니언 교직원의 소리

내 사무실에는 에어컨이 없다

내 사무실에는 에어컨이 없다


손석우(대기과학92)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90년대, 교정은 호젓했다. 자연대는 순환도로 안쪽에 있었다. 단과대학이지만 학생회관 주변 키 낮은 건물 십 수 개가 전부였다. 대기과학과는 24동에 있었다. 그렇다 보니 공강 시간에는 24동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24동과 학생회관 사이 작은 휴게 공간. 최근 새로 입점한 카페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그 시절에는 자판기 커피를 마시던 노천 카페였다. 등나무 그늘은 얼마나 평화로웠던가.
순환도로 바깥쪽에는 자연대 운동장이 있었다. 봄이면 흙먼지 날리고, 여름이면 장맛비에 질척이고, 겨울이면 나무 하나 없이 삭막했던 운동장. 평범하다 못해 밋밋했던 운동장을 매 주 서너 번씩 들렸다. 한 켠에 천문대와 기상관측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딴섬 같은 건물이었지만 과제를 하고 담소를 나누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간혹 밤 늦게까지 과제를 할 때면, 주변은 온통 캄캄했다. 마치 귀가하지 않은 아파트처럼.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 교정은 건물로 가득 차 있었다. 자연대 운동장에 신축건물 4개 동이 들어섰다. 위쪽으로는 농생대 건물들이 자리 잡았다. 변화는 순환도로 안쪽도 마찬가지였다. 신축 건물들이 들어섰고 오래된 건물들은 리모델링 중이었다. 건물이 늘어난 만큼 혹은 리모델링 되는 만큼 교정은 분주했다. 밤에도 많은 건물들이 조명을 환히 밝혔다. 연구시설이 늘었고 밤 늦게까지 연구에 매진하는 연구원들이 늘었다는 반증이다.
모든 변화에는 대가가 따른다. 늘어난 건물만큼 교정은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었다. 2012년, 서울대는 117,408톤(이산화탄소 환산 농도 기준)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안타깝게도 이 수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서울대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무려 20% 증가했다. 건물이 늘어나고 냉난방 시설이 보편화되면서 발생하는 문제다. 최근에는 GPU서버 등 실험장비의 증가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서울대 온실가스 배출량은 심각한 수준인가? 서울대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따라 매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할당 받는다. 지난 해 할당량은 132,440톤이었다. 실제 배출량은 150,776톤이었다. 14% 가량 초과 배출했다. 온실가스 배출은 화석연료 연소에 의한 직접배출과 전기사용 등에 의한 간접배출로 구분할 수 있다. 서울대의 경우, 간접배출이 주요 원인이다. 2023년 한해 서울대는 전기요금으로 327억원을 지불했다.
서울대 탄소중립은 가능할까? 여전히 기회는 있다. 건물 친환경화, 태양광 발전 확대, 교내 수목 활용 등 다양한 방안들이 논의 되고 있다.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사업도 있다. ‘아껴쓰기’이다. 서울대 전기 사용량의 절반은 냉방 때문이다. 냉방 시간과 온도를 최적화하는 것만으로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다. 굳이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에 냉방이 필요할까? 잠깐의 더위를 참는 것으로 서울대는 탄소중립에 가까워 질 수 있다. 참고로 필자의 사무실에는 에어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