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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호 2025년 10월] 오피니언 논단

“부동산에 묶인 돈, 혁신산업으로 돌려야”

중국 올해 R&D예산 800조원
“부동산에 묶인 돈, 혁신산업으로 돌려야”


박선영(경제00)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중국 올해 R&D예산 800조원
중국은 더 이상 추격자가 아니다. 한국 경제의 근간을 이루던 주력 산업 거의 전반에서 중국은 이미 기술적 동등성을 확보했거나 일부 분야에서는 한국을 추월했다.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의 ‘2023년 산업기술수준조사’에 따르면 양국 간 산업기술 격차는 불과 0.3년으로, 10년 전 1.1년이던 격차가 사실상 사라졌다. 조선·철강·석유화학·디스플레이 등 전통 주력 산업은 이미 유사한 수준이고, 미래 산업에서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인공지능(AI), 전기차, 배터리, 로봇, 우주항공 등에서 중국이 앞서 있다. 2023년 기준 중국은 세계 전기차 시장의 50% 이상, 배터리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며 CATL과 BYD가 글로벌 패러다임을 주도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 산업의 보루로 여겨졌던 반도체조차 첨단 패키징을 제외하면 다수 영역에서 중국에 기술적 우위를 내주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은 내수시장이 작고, 이미 사망률이 출생률을 넘어선 ‘데드크로스’로 인구감소가 진행 중이다. 원화는 기축통화가 아니며, 자원도 부족해 달러를 벌어야 하는 구조다. 따라서 수출경쟁력은 단순한 경제 지표가 아니라 우리 미래세대의 생활수준을 좌우하는 생존 변수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주력 산업은 중국의 물량공세에 밀려 구조조정의 벼랑 끝에 서 있다.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한국의 중위연령은 30세에 불과했지만, 2024년에는 46세다. 인구는 급속히 늙었고, 생산성은 정체되어 있다. 과거 2000년대 중국의 WTO 가입으로 수출이 폭증하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교적 순탄히 넘겼던 ‘중국효과’는 미중무역갈등과 트럼프의 관세정책으로 오히려 우리경제의 역풍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한국 경제는 대외적으로도, 대내적으로도 사면초가다. 미국에 약속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투자 세부 협의가 지연되며, 일본과 유럽연합에 비해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으로 민생이 불안하다. 산업구조 개편이라는 대수술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곳곳에서 화재가 번지는 형국이다. 복지부담을 충당할 증세 논의나 연금개혁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으며, 정치권은 민생과 무관한 정쟁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다시 일어설 길은 무엇인가.
우선 자본의 물길을 바꿔야 한다. ‘부동산 투기’를 막고, ‘미래 혁신’으로 국가적 자원을 옮겨야 한다. 비생산적인 부동산 시장에 묶인 자본과 인적 자원을 혁신산업으로 이동시키는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이는 중국이 부동산 규제를 통해 첨단산업으로 자금을 유도하는 정책과 같은 맥락이다. 중국 정부는 2025년 ‘정부업무보고’와 제14차 5개년 계획의 마무리 과정에서 “신질적 생산력(新₩生₩力)” 육성을 국가 전략으로 천명했다. 주요 육성 분야는 AI, 반도체, 바이오제조, 양자기술, 6G, 상업우주, 신소재, 저탄소 산업 등 첨단산업이며, 여기에 대규모 금융지원과 R&D 예산이 집중되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미래 투자의지는 숫자로도 드러난다. 중국 중앙정부의 올해 R&D 예산은 약 4조 위안(한화 약 800조 원)으로 전년 대비 10% 증가했다. 한국 정부의 R&D 예산은 29.7조 원으로 역대 최대이지만, 중국의 4% 수준에 불과하다. 경제규모 대비로 보면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문제는 경쟁하는 산업 영역이 동일하다는 데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 사회의 관심이 ‘기술 개발’보다 ‘부동산 투자’에 쏠려 있다는 점이다. 평생 일해 얻는 노동소득보다 아파트 갭투자로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면, 누가 땀 흘린 노동과 연구개발에 몰두하겠는가. 부동산 버블에 기댄 자산 축적은 국가 전체의 창의력과 생산성을 갉아먹는 구조적 병폐이며, 사회적 불평등의 악순환을 강화한다. 뿐만 아니라 실물경제가 뒷받침되지 않는 자산가격버블은 꺼질 수밖에 없다.
중국 역시 2020년 부동산 버블과 부채 급증으로 ‘일본형 장기침체’ 재현 우려를 겪었다. 그러나 중국은 일본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30년의 사례를 철저히 연구하며 교훈을 이끌어냈다. 중국 정부는 일본으로부터의 교훈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부동산 대출 총량 규제, 담보 인정비율 조정, 신규 부동산 개발 제한같은 조치를 수시로 시행하며 부동산 시장을 긴밀히 관리 중이다. 또한 일본의 과거처럼 무분별한 내수 부양책이 자산 거품으로 이어지는 사태를 경계하여, 중국은 소비 진작책을 펼치면서도 투자는 첨단·전략 산업에 집중하는 방향을 고수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25년 8월, 중국은 ‘신형 산업화 금융지원 로드맵’을 발표해 2027년까지 첨단산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금융시스템 정비를 추진 중이다. 이웃 나라 중국은 부동산을 옥죄고 미래 산업에 올인하며 G1을 노리는데, 정작 우리는 왜 이런 이웃의 교훈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