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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호 2025년 10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팔십평생 수수께끼 개천절에 풀리다

팔십평생 수수께끼 개천절에 풀리다


이기태(불어교육59)
베스텐북스 대표

 “무지껄리스 따바르넥”
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 무슨 말일까? 이 의문을 늘 갖고 살기 70여년! 이 의문이 드디어 풀렸다. 공교롭게도 단기 4358년 개천절, 하늘이 열린 날 이 수수께끼도 풀렸다. 이름도 성도 없는 어느 박사님 덕분이다. “maudit calice tabarnak” 내 귀에 “무지껄리스 따바르넥” 이라고 들리던 이 말을 캐나다 군인들이 자기들 사이에 한 말인데 하도 인상 깊게 들렸기에 단 한번 들은 말이 70여 년 동안 귀에 쟁쟁히 남아 있었다. 
캐나다 퀘벡시 사람들이 많이 쓰는 프랑스 말 이라는 것이다. “maudit calice”는 “빌어먹을” 의 뜻이고 “tabernacle” 도 교회용어에서 비롯되었는데 “젠장!” 이라는 감탄사란다. 그래서 두 가지가 합성된 일종의 퀘벡식 감탄사라는 것이다. 퀘벡시에는 프랑스계 인들이 많이 살아 주로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이 “모디 깔리스 따바르낙”이라는 소리가 13살짜리 한국소년에게는 “무지껄리스 따바르넥”으로 들린 것이다. 여러 번 들은 것도 아니고 딱 한번 들은 것인데 귀에 단단히 박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Music girl is Tabarneck 인가 뭔가 수 십 년을 두고 알려고 고민해 왔었다. 왜냐하면 다른 말들은 내가 불어를 공부하면서 유추해서 알 수가 있었는데 이것 하나만은 해결이 안 됐기 때문이다. 
1953년 휴전이 될 임시에 경기 양주 송추 근처에 불타버린 장흥초등학교(현 송추초) 자리에는 캐나다 하사관학교 부대가 들어와 있었다. 캐나다, 호주군이 섞여 있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이 부대 앞을 지나곤 했는데 캐나다 군인들이 식당 텐트로 가면서 하는 말들 중의 한마디였다. 그때 그들이 하는 말 중에는 이상한 한국어 비슷한 것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들을 예로 들자면: 어느 병사가 “꺼먼쌀밥” 그랬더니 다른 병사가 “쌀밥이유”하고 대답했다. 또 어떤 병사는 “메루치 볶구” 라고도 했다. 지금은 한국에 꺼먼 쌀이 있지만 그때는 상상도 못 했다.  
잘 있었어 하고 묻는 “Comment a va?(꺼멍싸바?)”가 “꺼먼쌀밥”으로 들린 것이다.  응 잘 있었어 하는 “a va bien(싸바비엥)”이 “쌀밥이유“로 들린 것이다. 매우 고맙다고 하는 “Merci beaucoup(메르씨보꾸)”가 “메루치 볶구”로 들린 것이다. “잘 지내니” 또는 “잘 지내” 하는 “a va?(싸바)”가 “싸봐” 로 들린 것이다. 뭘 싸봐.  
대학서 전공을 선택하게 됐을 때 불어를 선택하게 된 것도 이렇게 은연중 이미 불어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무지껄리스 따바르넥” 이라고 들린 70여 년 묵은 이 수수께끼는 이렇게 오늘 마침 개천절에 기적과 같이 풀리게 됐으니 평생의 숙제가 풀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