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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호 2025년 10월] 문화 신간안내

2등 기업이 1등 기업 따라잡은 비법은…

신뢰 게임, 현순엽(경영82) 작가 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등 기업이 1등 기업 따라잡은 비법은…


신뢰 게임
현순엽(경영82) 작가 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25년 4월 9일, 주요 신문들은 아래와 같은 제목의 기사를 앞다퉈 보도했다. “삼성전자까지 제쳤다…SK하이닉스, D램 세계 1위에 등극.” 
반도체처럼 규모의 경제가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산업에서 ‘이등 기업이 일등을 뛰어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경묵(경영82)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의 표현대로 ‘와해적 혁신이 없는 성숙 산업에서는 인수합병 말고는 역전의 길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하이닉스는 그 어려운 걸 해냈다.
많은 이들이 이를 두고 “HBM(고대역폭 메모리)이 그렇게 뜰지 누가 알았겠어, 운이지 운”이라며 단순하게 평가했다. 그러나 ‘신뢰 게임’의 주 집필자인 현순엽 전 SK하이닉스 기업문화 담당 임원은 “단순히 운이나 경쟁사의 부진만으로는 현 상황을 설명할 수는 없다. 적어도 3분의 1은 하이닉스 자체 요인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한다. 그 요인의 핵심을 저자들은 하나의 키워드 ‘신뢰 게임’으로 제시한다.
책은 “신뢰가 경쟁력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하이닉스라는 한 기업의 드라마틱한 승부를 통해 답하는 살아 있는 경영 스토리다.
하이닉스의 성공은 어느 한 기술적 사건의 결과라기보다, 경영·조직·문화 전반에서 ‘신뢰’를 구조화한 데 있다. CEO가 된 기술 출신 임원, 장기 보임 체제, 임원진 간의 신뢰 구축은 모두 하나의 패턴으로 이어졌다. SK가 하이닉스를 인수한 지 불과 2년 만에 이뤄진 ‘기술 CEO 임명’은 내부 구성원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 “엔지니어들을 믿는다.” 이는 기존 ‘SK 출신 CEO’라는 예상과 달랐기 때문에 더욱 강력한 믿음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P사장은 6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CEO를 맡으며 급격한 체질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는 다시 ‘Top Team(임원진)’의 안정성과 신뢰로 연결됐고, 신뢰는 하부 조직으로 확산되며 HBM과 같은 결실을 맺게 됐다.
책은 하이닉스의 구체적인 혁신 과정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실패를 자산으로 전환한 ‘실패 사례 경진대회’, ‘하이닉스 유니버시티(SKHU) 등 학습·성장시스템’, 실질적 협업을 가능케 한 ‘전 임원 Top Team 워크숍’과 원온원(1:1 대화 제도), ‘왁자지껄 스피크업’ 같은 소통 장치 등. 이 일련의 장치들은 단순히 형식적 제도가 아니라 ‘신뢰’를 강화하는 매개였다. 구성원들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조직이 나와 내 역량을 믿는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 에너지가 다시 조직 성과로 연결되는 선순환이 형성된 것이다.
저자들은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 SK그룹의 경영철학, SKMS(SK Management System)가 있음을 강조한다. SKMS는 1979년 최종현(농화학50) 회장이 처음 정립한 이후 50년 가까이 수정·보완되며 이어져온 SK의 정신적 헌장이다. 핵심은 ‘자발적이고 의욕적인 두뇌 활용’. 이는 곧 ‘사람을 믿고, 그 창의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하이닉스의 실험들은 결국 SKMS 철학이 현장에서 구현된 결과였다.
‘신뢰 게임’의 최종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HBM의 성공은 단기 수익이나 점유율에 집착하는 ‘유한게임’으로는 탄생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1등 기업이 된 이후야말로 유혹은 더 커진다. 이익, 점유율, 언론의 조명 속에서 단기 성과에 매달릴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하이닉스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끝없는 도전과 가치 창출의 무한게임’이라고 말한다. 
시장 점유율과 수익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술 생태계 전반의 혁신과 이해관계자의 행복이라는 더 큰 목표를 향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하는 유일한 경로라고 조언한다.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