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1호 2025년 10월] 뉴스 본회소식
가을비 내리는 논산에서 조선 선비를 마주하다
논산 종학당·윤증고택 탐방기, 58학번부터 14학번까지 참가
가을비 내리는 논산에서 조선 선비를 마주하다


9월 25일 부슬비가 서원의 담장을 적시는 날 50여 명의 동문들이 돈암서원 강당에 모여 기념 촬영을 했다.
논산 종학당·윤증고택 탐방기
58학번부터 14학번까지 참가
“혼자 오기 힘든 기회라 소중”
“이렇게 과학적인 집이 조선 시대에 지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윤증고택의 대청마루에 둘러앉은 동문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바람이 드나드는 길, 햇살이 비치는 길, 빗물이 흘러내리는 길까지 치밀하게 설계된 고택의 구조는 전통 건축의 미학과 실용성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돈암서원까지 둘러본 이번 기행은 답사를 넘어 조선 선비들의 삶과 지혜를 온몸으로 체감하는 자리였다.
9월 25일 부슬부슬 내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전국 각지에서 모인 동문 53명이 논산으로 향했다. 행사 진행은 성봉주(체육교육84) 국토기행 대장이 맡았고, 해설은 논산시 문화유산 해설사 송재관 씨가 맡았다. 성봉주 동문은 “궂은 날씨에도 이렇게 많이 참여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참가자들을 맞았다. 비는 오전 내내 내렸지만, 오히려 옛 건축물의 기품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했다.
종학당, 조선 교육의 현장을 걷다
기행의 첫 발걸음은 종학당에서 시작됐다. 종학당은 파평 윤씨 종친 자제를 교육하기 위해 세워진 공간으로, 조선 후기 지방 사족 사회에서 가문 공동체의 학문 전승을 상징한다.
종학당 누각에 오르자, 동문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풍경을 바라봤다. 앞마당에 서면 호수와 논, 마을과 산이 차례로 시야에 포개지며 펼쳐진다. 가까이서는 연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멀리서는 구름이 산등성이를 타고 흘러내린다. 사람의 손길과 자연의 숨결이 겹겹이 어우러져 풍경 그 자체가 하나의 강의실이 되는 듯했다.
한 참가자는 “이곳에서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 같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실제로 종학당에서 수학한 인재 가운데 문과 합격자만 46명, 무과 합격자 31여 명이 배출되었고, 이들은 전국 각지의 관직에 나아가 지역 사회를 이끌었다.
심양섭(동양사학80) 동문은 “이런 기행을 통해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긍지를 새삼 느낀다”며 “급속한 산업화 속에서도 이렇게 보존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종학당의 풍광은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교육과 공동체 정신을 되새기게 하는 살아 있는 유산이었다.


종학당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동문들. 이 곳에서 바라본 마을의 풍경, 이곳에서 과거급제자 77명이 나왔다.


종학당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동문들. 이 곳에서 바라본 마을의 풍경, 이곳에서 과거급제자 77명이 나왔다.
윤증고택, 바람과 햇살의 집
이어 찾은 곳은 윤증고택, 명재고택으로 불리는 곳이다. 조선 후기 대표적 학자인 윤증(1629~1714)의 고택은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설계로 유명하다. 집 전체는 단순히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고 생활의 편리와 기능성을 극대화하도록 지어졌다.
송재관 해설사는 “바람길, 물길, 햇빛길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배치한 구조는 오늘날 건축학적으로도 주목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윤증고택은 조선 시대에 지어진 집이지만, 지금 보아도 놀라울 만큼 과학적이다. 안채와 곡간채 사이 골목에 서면 그 비밀이 드러난다. 평행하게 달린 처마 아래 길은 뒤쪽이 좁고 앞쪽이 넓다. 하지에도 햇볕은 잠시만 들고, 바람은 여름엔 빠르게 흘러 시원하게, 겨울엔 부드럽게 퍼지도록 계산된 구조다. 돌로 쌓은 배수로 또한 위는 좁고 아래는 넓어 빗물이 한 번에 빠져나간다. ‘길 하나’에 빛과 바람, 물까지 다스리는 지혜가 담긴 셈이다.
실내에는 앉은 사람의 하체를 가려주는 머름(낮은 가림판), 손님의 신분을 은근히 확인할 수 있는 대의벽(아래가 뚫린 벽) 같은 장치가 숨어 있다. 작은 세부까지 ‘사람을 편하게’ 만들기 위한 배려였다.
집 앞에는 금강산을 축소해 옮겨놓은 석가산이 자리했다. 바위와 소나무가 정교하게 어우러져 작은 산수를 담아내며 마당을 또 하나의 금강산으로 만들었다. 그 옆에는 집안 후손이 천문학을 공부하며 직접 제작한 해시계가 놓여 있었다. 생활의 도구이자 학문의 실천물이기도 했다. 우물은 북쪽 향나무와 짝을 이루었다. 향나무는 여인들의 물 긷기를 외부 시선에서 가려주고 뿌리로 물을 정화하는 역할까지 맡았다.
가장 젊은 참가자인 한준희(자유전공13)와 장원이(컴퓨터14) 동문은 창업을 함께 준비 중인 동아리 친구다. 한준희 동문은 “젊은 동문들이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많이 알게 되면 좋겠다”며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배움과 교류의 장이 되는 것 같다”고 의미를 전했다. 반대로 가장 연장자인 김경원(경제58) 동문은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후배들과 함께 이런 자리에 와서 기쁘다”며 후배들의 활약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윤증고택 곡간채와 안채 사이, 바람길·물길·햇빛길의 비밀이 담긴 골목

윤증고택 곡간채와 안채 사이, 바람길·물길·햇빛길의 비밀이 담긴 골목
돈암서원, 세계가 인정한 선비 정신
여정의 마지막은 돈암서원이다. 서원 담장과 기와에는 17세기 건립 당시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송재관 해설사는 서원의 개원 연대와 기와 문양의 변화를 직접 짚어 보여주었다. “1634년 개원 당시의 기와와 최근 복원된 기와의 차이를 보면, 시대마다 미묘하게 문양이 달라져 있습니다. 나비, 국화, 연꽃 무늬가 각각 다른 의미를 담고 있죠.”
유재원(경제76) 동문은 “기와 한 장 한 장이 다르게 보존된 걸 보니 세월의 무게가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돈암서원은 윤증과 그의 스승 김장생, 그리고 후학들을 배향한 곳으로, 선비들이 학문을 강론하고 후학을 길러낸 상징적 공간이다. 심양섭(동양사학80) 동문은 “유튜브 같은 빠른 정보에 익숙해진 요즘 세상에서, 이런 유적지는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평화롭고 힐링이 된다”고 했다.
비에 젖은 서원의 담장 너머로 보이는 산자락은 백제의 옛 땅이자 한반도의 허리춤에 자리한 논산의 풍광과 맞닿아 있다. 해설사는 “논산은 백제의 멸망 이후에도 오랫동안 그 흔적이 서려 있는 지역”이라며 “산과 들, 강이 어우러진 지형은 고대부터 중요한 교통로이자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설명했다.
비는 종일 그치지 않았지만, 오히려 고건축의 기품을 더하는 장치가 됐다. 윤증고택의 마루에 떨어진 빗방울은 마치 시간을 건너뛰어 조선 선비들의 일상을 상상하게 했다. 참가자들은 서로 우산을 씌워주고 사진을 찍어주며 웃음을 나눴다.
유재원 동문은 “이런 국토 기행은 혼자서는 절대 오기 힘든 자리”라며 “동창들과 함께 와서 보고, 배우고, 나누는 기회가 참 소중하다”고 했다.
행사 끝에 성봉주 대장은 다시 한번 참가자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부슬비도 마다치 않고 한마음으로 여정을 완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경험이 오래도록 기억 속에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이번 국토문화기행은 동문들이 함께 걸으며 선비의 지혜와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였다. 뜨거운 참여와 호응에 힘입어, 총동창회는 내년부터 국토기행을 기존 연 2회에서 2회를 추가해 총 4회로 확대 운영할 계획이다. 송해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