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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호 2025년 10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3대째 이어온 판소리, 세계 무대로 나갑니다

한국 전통 성악가 첫 RSA 펠로우, 한국청년예술가협회 이사장도
3대째 이어온 판소리, 세계 무대로 나갑니다


조수황 (국악16) 국악인

한국 전통 성악가 첫 RSA 펠로우
한국청년예술가협회 이사장도

판소리 무대에서 7시간 완창을 버텨낸 집념, 피를 토하는 수련도 마다하지 않은 청년 국악인. 그가 마침내 한국 전통 성악가로는 처음으로 영국 왕립예술협회(RSA) 펠로우에 이름을 올렸다.
9월 16일 국립극장에서 만난 조수황(국악16·사진) 동문은 여전히 소리에 대한 즐거움과 세계를 향한 열정을 숨기지 않았다.
조 동문은 최근 RSA 펠로우 선정으로 국악계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RSA는 1754년 창립 이래 예술·교육·사회 혁신을 이끌어온 권위 있는 단체로, 세계 각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펠로우’로 인정한다. 한국 전통 성악가가 동등한 동료로서 이름을 올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는 “한 개인의 성취라기보다 우리 전통 성악이 세계 예술의 큰 흐름 속에서 가치를 인정받은 결과라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조 동문의 길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외가 쪽으로 대대로 내려온 소리의 기운이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장단과 소리에 익숙했고, “집안 어른들이 흥얼거리던 가락이 지금도 귀에 맴돈다”고 회고했다.
열한 살이 되던 해, 그는 운명처럼 계정 신영희 명창을 만났다. 그날, 선생은 조 동문의 손을 꼭 잡으며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야는 죽어도 소리해야 해.”
그 순간 방 안의 공기는 한순간에 무거워졌고, 어머니는 놀란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봤다. 평생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할 운명을 직감한 할머니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 눈물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전통을 이어야 하는 숙명을 대물림하는 듯한 깊은 울림이었다. 소년의 손을 감싼 그 짧은 한마디는 한 집안의 기억을 넘어 거대한 서사의 첫 장을 열어젖혔다. 조 동문은 “그날 이후 내 인생은 소리와 함께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국립국악중·고등학교, 서울대 음악대학 국악과로 이어진 길은 결국 그 한마디의 울림을 따라간 여정이었다.
조 동문은 힘겨운 수련 속에서도 소리 자체에서 행복을 찾았다. “학창 시절 남들처럼 놀기도 하고 싶었지만, 연습실에서 소리를 내면 마음이 제일 즐겁고 편안했습니다. 스트레스가 씻기듯 사라졌습니다.”
재학 시절엔 음악대학 학생회장을 3년 연속 맡아 동료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공연·축제·국악과 연합 행사 등을 직접 기획하며 학교 예술 문화의 중심을 이끌었다.
무대 위에서는 ‘춘향가’ 완창으로 7시간을 버텨내며 피를 토할 만큼 몰입했고, 무대 밖에서는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예술을 꿈꿨다. 그는 “좋은 예술은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며, 구성원들의 참여와 협력이 예술 공동체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청년예술가협회 이사장, 한국사회공헌협회 이사로 활동하며 예술을 사회와 나누려는 일을 꾸준히 이어온 것도 한 맥락이다. 봉사 무대에 설 때는 “관객 수와 상관없이 진심을 다해 부른다. 소리로 누군가가 위로받는다면 그 자체로 음악의 존재 이유”라며 진정성을 강조한다.
해외 무대에서도 판소리는 국경을 넘어 감동을 전했다. 불가리아 첼리스트 아나톨리 크라스테프와의 협연은 국악과 서양 음악의 조화를 보여준 사례였다. 낯선 소리에 놀라워하던 관객들이 공연이 끝나자 기립박수로 화답한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언어가 달라도 진심은 전해집니다. 판소리는 그 힘을 가진 예술입니다”라고 말했다.
전통 판소리 창법을 기반으로 한 뮤지컬 ‘금악’ 출연은 그가 추구하는 예술관을 잘 보여준다. “전통은 지켜야 하지만 시대의 관객과 호흡하려면 새로운 시도가 필요합니다. 판소리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현대 무대예술과의 만남을 계속 시도하고 싶습니다.”
그의 바람은 판소리가 단순히 한국의 유산을 넘어 세계인의 예술로 자리잡는 것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판소리를 “인류 모두가 지켜야 할 보물”로 여기며, 국제 무대에서 당당한 예술로 평가받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제자들을 가르치며 “너무 잘하려고만 하지 말고, 소리를 즐겨라”는 말을 늘 전한다. 즐거움이 있어야 오래 버틸 수 있고, 관객도 감동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조수황 동문은 “앞으로도 전통의 뿌리를 지키면서 새로운 장르와 접목해 판소리의 가능성을 넓히고 싶다.”며, 판소리를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이자 세계가 사랑하는 예술로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라고 전했다.
그의 삶에는 전통의 타고남과 현대적 감각, 그리고 따뜻한 인성이 함께 녹아 있다. RSA 펠로우 선정은 그가 걸어온 길의 이정표일 뿐, 판소리의 세계화를 향한 여정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송해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