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호 2005년 11월] 기고 감상평
서울대병원, 보건복지부 이관 안된다!
전문성․자율성 침해로 의료경쟁력 확보 못해
서울대학교병원의 앞날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행정부와 여당 일각에서 공공의료 확충의 명분을 내세워 서울대병원을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려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학 발전을 위해서는 `교육-연구-진료'가 분리할 수 없는 대명제인데도, 국립대 병원을 의과대학에서 떼어내려는 이러한 시도는 마땅히 철회되어야 한다. 외국의 사례와 함께 복지부 이관의 부당성을 짚어 본다. 〈편집자 주〉 成 明 勳 (의학76 82) 모교 이비인후과 교수 병원 기획조정실장 지나친 간섭․비효율적 체계가 문제 공공의료정책 기구 별도 구성해야 지난 5월 정부는 국가 공공보건의료를 확충하기 위해 앞으로 5년간 총 4조3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공공의료 공급수준을 10%에서 30% 확대하겠다는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그 세부 내용으로 국립대병원들을 권역별 공공보건의 중심기관으로 운용하고 주무부서를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보건복지부로 이관한다는 계획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국민의 건강권을 확대하기 위한 정부의 의지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앞으로 더욱 투자가 확대돼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 방향이나 국립대병원의 부처 이관 정책은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주 목표가 공공시스템이 직접 투자․운영하거나 민간투자 병상 중 공익적 기능수행 비율이 높은 병상(노인전문요양시설, 응급의료병상 등)의 비중이 OECD 최하위권인 18.5%에 불과하므로 이를 30%까지 높이겠다는 것인데, 이 문제는 단순한 입원실 부족이 아니라 저소득층 진료와 중증질환 등에 대한 보장성 부족이므로 이러한 분야에 대한 직접 지원이 바람직하다. 이미 우리 나라는 급성병상 수에서 OECD 평균의 두 배 이상의 병상을 확보하고 있다. 공공의료의 확대를 위해서는 재원의 투자 확대와 함께 적정 수가를 통해 병원이 합리적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나라의 의료제도는 국민이 싸고 좋은 진료를 받는다는 점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바람직한 측면이기도 하나, 원가 보전조차 어려운 일부 불합리한 수가제도(중환자실, 응급실, 소아진료 등)에 의해서 경영압박을 받는다면 그러한 분야에 대해 병원들은 최소한의 진료 투자만을 할 것이며(의료 윤리나 병원 특성상 할 수 없이 투자하게 됨), 수익이 가능한 분야에 매달리지 않으면 병원 경영이 어려워 질 것은 뻔한 일이다. 더욱이 이는 상대적으로 수가가 낮게 책정돼 있는 산부인과․외과를 비롯한 중요 핵심 분야의 진료 수준을 떨어뜨리고 전반적으로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분야에 우수한 사람들이 몰리고 투자가 이루어지는 현상이 일어남으로써 이미 국민의료의 왜곡과 질적 저하를 가져오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공공성 있는 의료를 수행하는 것이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되면, 자연히 공공의료의 수행이 늘어나고 의료시스템의 공공 보장성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국립대병원들을 교육인적자원부 산하기관에서 보건복지부로 이관하자는 생각은 국립대병원의 의료인력을 양성하고 의학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이 아닌 단지 3차 병원으로만 인식하는 데서 기인한다. 공공의료에 관련된 사업들은 대학병원의 교육-연구-진료라는 핵심 기능 중 일부이며 대학의 역할은 공공의료 개념보다 넓은 상위 개념이다. 현재의 국립대병원들이 본연의 연구, 교육 업무를 잘 수행하도록 교육인적자원부가 지원해 주고, 보건복지부는 국립대병원의 지식 노하우와 인력 지원을 받아 공공의료관리 체계를 운용하면서, 그 기여도 평가에 따른 적절한 지원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현재의 교육인적자원부 소속은 그대로 두고 공공의료에 관련된 부분에 대한 정책협의 추진기구를 정부와 국립대병원이 구성하여 진행한다면 기존의 역할도 효율화하면서 공공의료 수준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보다 효율적인 모델이 될 것이다. 현재 국립대병원들이 법인체로서의 조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서울대학교병원의 경우는 1977년, 다른 국립대병원들은 1991년에 제정된 각각의 설치법에 근거한다. 당시에 국립대학교부속병원들을 별도의 설치법에 의해 법인의 형태를 갖추도록 한 것은, 급변하는 의학과 의료의 발전에 적응하기 위해서 운영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현재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보건복지부로의 이관은 대학의 일원인 대학병원이 자율적 운영을 통해 대학병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대단히 큰 부담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대학병원 본연의 임무인 교육과 연구에 비해 공공의료의 수행이 강조되다 보면 정부나 정치권의 간섭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에 따라 조직 운영의 비효율과 성과 하락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병원의 정당한 의료 행위에 대한 적절한 보상 없이 불합리한 삭감이나, 국가적 공헌에 비해 과도한 간섭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보건복지부로의 이관은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로 인한 의료 왜곡 현상을 더 나쁘게 할 가능성이 많으며, 대학병원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해칠 가능성이 높다. 좋은 정책은 기존 기능을 유지 발전시키고 자율적 발전을 유도하면서도 소기의 목적을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국립대병원의 공공의료 역할에 대한 현재의 문제점은 국립대병원들이 교육인적자원부에 소속돼 있어서가 아니라 정부의 투자 부족(우리 나라 인구의 10분의 1정도인 싱가포르의 연 복지의료비 예산이 1조원)과 효율적인 의료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전략의 부재에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의료기관은 자율성의 박탈로 비효율적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은 국립의료원의 사례에서 잘 알 수 있는데, 병원수입 감소(1999년 : 4백50억원, 2004년 : 3백91억원)로 자체 채산성은 약화되고 국고지원 의존률은 지속 증가하고 있다. 국립대병원들이 보건복지부로 이관됨에 따라 자율성에 근거한 발전의 비전을 잃게 되면, 젊은 후속 세대의 의료인들이 앞으로도 국립대병원을 지켜나갈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간 이루어 놓은 국립대병원의 경쟁력은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립대병원의 보건복지부 이관은 공공의료의 확충은커녕 공공의료의 최후의 보루마저 잃게 될,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교육 - 연구 - 진료 분리될 수 없어 의료기술개발과 인재양성이 중요 許 大 錫 (의학74 80) 모교 의대 내과 교수 의료정책연구실장 지난 1년간 서울대학교병원은 큰 혼란에 빠져있다. 그 원인은 서울대학교병원설치법을 폐지한 뒤, 국립의과대학은 교육인적자원부, 국립대병원은 보건복지부에서 이원화해서 관리하겠다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외형적으로는 국립대병원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주로 손해를 입게 되는 것은 서울대학교병원이다. 실제로, 경쟁적인 위치에 있는 사립대병원들이 암센터 건립 등 미래를 향한 투자를 속속 진행하고 있으나 서울대병원은 아예 손을 놓고 정부의 결정만 기다리고 있는 신세가 되어 있다. 정부의 의도는 국립대병원 → 지방의료원→ 보건소로 연결되는 의료체계를 구축하여 공공보건의료를 확충하겠다는 것인데, 보건복지부가 실패한 공공의료관리의 책임을 국립대병원에 떠넘기겠다는 발상임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이를 교육정책과 비교한다면, 공교육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대학교와 같은 국립대에 공교육관리의 책임을 맡기겠다는 것과 같은 접근이다. 근거 논리는 국립대가 국고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국립대병원의 설립 취지와 운영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를 알고 있다면, 정부의 이러한 시도는 正道를 벗어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대학소속의 병원이 있는 이유는 의과대학 학생들뿐만 아니라 전공의, 전임의 등 평생교육이 필수적인 `의학교육'의 특수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미국, 유럽, 일본의 종합대학교 내의 대학병원의 위상과 역할을 보면 어느 나라에서나 대학병원은 종합대학교의 한 부분이다. 종합대학교가 자체 병원이 없고, 정부 관리의 병원을 이용하는 형태의 기형적인 행정구조를 가진 나라는 없다. 또, 국내에서도 민간병원들이 의과대학 신설을 원하는 이유를 따져보면 대학병원과 의과대학을 따로 구분해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더욱 명백하게 알 수 있다. 경쟁력 있는 진료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교육 기능이 필수적이고, `교육-연구-진료'는 의학발전에서는 분리할 수 없는 대명제이기 때문이다. 임상의학을 기초의학과 분리할 수 없듯이, 임상의학 교육 및 연구의 場인 국립대병원을 의과대학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료시장개방-영리법인허용 등 세계화의 물결 속에 예상되는 의료환경변화까지 고려하면, 지속적으로 재투자가 가능한 사립대병원과 더욱 경직된 행정 체계로 전환될 운명에 놓인 국립대병원의 격차는 점점 더 커져 갈 것이고, 국립대병원뿐 아니라 국립의과대학들도 하향 평준화를 피할 수 없다고 본다. 보건복지부 소속으로 운영돼 왔던 국립의료원의 과거 위상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본다면, 국립의대 교수들의 우려가 근거가 없다는 주장을 펴기는 쉽지가 않을 것이다. 또한, 이 정책은 국립대병원의 역할은 의과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과학대학 등과 연계되어 생명과학의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도 간과하고 있다. 생명과학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면서 종합대학교 내에서 대학병원의 역할을 증가시키고 있는 선진국의 대학과는 달리, 국립대병원을 정부의 하부기관으로 아예 분리해 내려는 정책을 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국가의 공공의료에 기여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나, `대학의 병원'이라는 기본 틀을 무시한 채 정부가 대학병원의 경영에 개입하겠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공공의료에서 국립대병원의 역할은 신의료기술을 개발하고 유능한 의료인을 양성하는 것이며, 보건소나 지방의료원 관리의 책임은 근본적으로 보건복지부의 몫이라고 본다. 이는 공교육 개선을 위해 국립대가 해야 할 일은 연구를 통해 교육정책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교육현장에 필요한 우수인력을 양성하는 것과 같다. 정부가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국립대병원을 보건복지부 산하로 귀속시키려는 시도가 자칫 국립대병원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오인하고, 그 거위의 배를 가르려는 접근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미국 민간형태의 대학병원 운영 도쿄대 병원 문부과학성이 지원 洪 慧 杰(의학85 91)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현대의학은 첨단과학의 경연장으로 사람들이 가장 많은 돈을 쓰는 자본재적 성격을 지닌 동시에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의료혜택을 고루 나눠줘야 하는 공공재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양자간 조화와 균형은 필수적이다. 전자를 강화하다보면 국내 총생산의 15%를 써서 교육비와 국방비를 합친 것보다 많은 돈을 보건의료비로 지출하지만 OECD 최하위권의 영아 사망률을 보이는 미국의 비극이 연출된다. 그렇다고 정부가 주도하는 무상의료 등 후자를 강화하면 영국처럼 간단한 수술에도 몇 개월씩 기다리다 못해 해외로 나가야하는 등 의료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오늘날 선진국은 의료 공급자간 역할분담을 통해 이러한 모순을 해결한다. 자본재적 의료의 발전을 위해 경쟁력 있는 대학병원을 육성한다면 공공재적 의료를 위해 지역사회 보건소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현재 정부의 방침처럼 첨단과학을 연구하고 양질의 의료인력을 교육시켜야 할 대학병원이 단지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보건소로서의 역할을 강요받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을 보자. 미국은 서울대병원처럼 연방정부 차원에서 설립된 병원은 없다. 미국 대통령이 아파도 워싱턴 근교 베데스다 해군병원이나 월터리드 육군병원 등 군 병원에 입원해 치료한다. 물론 각 분야 최고 대가들이 자문의로 포진해 있지만 항간에 알려진 유명병원에 입원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 유명대학병원은 의학연구와 교육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시사주간지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는 해마다 분야별 병원랭킹을 발표하기도 한다. 대개 1위는 볼티모어 소재 존스홉킨스병원, 2위는 로체스터 소재 메이요클리닉, 3위는 보스턴 소재 매사추세츠종합병원(하버드의대 부속병원)이 단골로 선정된다. 이들 병원 중엔 UCLA병원처럼 주 정부 차원에서 지원받는 병원도 있지만 대부분 주 정부보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민간병원의 형태를 지닌다. 미국의 경우 서울대병원처럼 미국을 대표하는 연방정부 차원의 병원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엔 중요한 함정이 있다. 미국 연방정부는 보건복지부 산하 3개의 유력한 연구기관을 두고 있다. 첫째가 미 국립보건원(NIH)으로, 미국 내 모든 첨단의학연구를 총괄 지원한다. 한해 예산만도 2백70억 달러(30조원)나 되며 원장은 장관급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며 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대개 노벨상 수상자들이 역임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신약허가 등을 지휘하는 미 식품의약국(FDA)과 셋째 전염병 방역을 총괄하는 미 질병예방통제센터(CDC)가 있다. 이들 세 기관은 직제상 보건복지부 아래 있지만 거의 모든 업무에서 자율적인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경우 이들 세 기관 역할의 상당 부분이 국가 중앙병원으로서 서울대병원에 맡겨져 왔다는 것이다. 이번 줄기세포 연구에서 보듯 미 국립보건원이 수행해야 할 기능의 대다수가 서울대병원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최근 식약청과 질병관리본부가 신설돼 미국 FDA와 CDC의 역할을 정부가 맡고 있다지만 이들 기관의 연구개발 기능은 아직도 상당 부분 서울대병원에서 수행된다. 서울대병원이 소외된 환자 치료에 소홀하다는 지적도 사실은 틀렸지만(서울대병원에 가보면 병실마다 전국 각지의 사투리로 가득하다) 첨단의학연구기관으로서의 서울대병원 본연의 역할을 혼동한 탓이다. 서울대병원이 가난한 환자 몇 백 명 더 진료한다는 것은 국가보건의료의 큰 틀에서 볼 때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일본의 경우 미국과 달리 정부에서 설립한 국립대병원이 많다. 일본을 대표하는 도쿄대병원도 마찬가지다. 물론 우리처럼 도쿄대병원만을 위한 특별법은 없다. 그러나 국가 중앙병원으로서의 도쿄대병원에 대한 상징적 의미만큼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국가 예산도 우리 교육부에 해당하는 문부과학성에서 지원한다.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후생노동성이 아니다. 오히려 일본은 현재 국립대학교의 방만한 운영으로 서울대병원(서울대병원은 특수법인화돼 있다)처럼 국립대학교의 법인화를 추진하고 있다. 자율권을 주는 대신 경영에 대한 책임을 묻자는 취지다. 도쿄대병원 등 대학병원도 예외는 아니다. 골자는 의료 경쟁력의 강화다. 나눠먹기식 분배주의가 아니다. 의료 산업화는 세계적 트렌드다. 선진국 뿐 아니라 싱가포르와 태국 등 동남아에서도 외화유치를 위해 의료산업 육성에 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다. 서울대병원 끌어내리기 등 현 정부의 보건정책은 세계적 트렌드에 역행할 뿐더러 의료의 질 저하란 하향 평준화만 낳게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