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호 2025년 9월] 오피니언 논단
미국 부활이 중국 패권보다는 이익
이근(외교82)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미국 부활이 중국 패권보다는 이익

이근(외교82)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안보는 미국에 의지하고 경제는 중국을 활용한다는 의미의 ‘안미경중’전략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 있다. 단순화하여 말한다면, 한미동맹의 대상이 북한에 국한될 때, 그리고 한국이 중국과 상호보완적인 경제 관계에 있을 때가 그 조건이다. 그런데 이 조건은 약 20년 정도의 유효기간을 지나 2010년대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미국과 국제사회에 기회의 시장이었던 중국은 2011년 경제규모에서 당시 세계 2위였던 일본을 추월하면서 초강대국 지위에 올라섰고, 2012년 최고 권력자가 된 시진핑 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구호와 ‘중국몽’이라는 매우 민족주의적이고 도전적인 비전을 제시하였다. 경제 분야에서는 안보라는 이유를 들어 중국을 미국의 인터넷 플랫폼에서 디커플링하면서 중국 테크기업 플랫폼으로 장벽을 쌓았고. 동시에 ‘중국제조 2025’라는 계획을 통하여 첨단산업을 빠른 속도로 중국화하였다. 게다가 아시아를 중국의 영향권으로 만들고 싶은 시진핑 주석은 대만, 남중국해, 동중국해 등에서 현상 변경을 시도하고 있고, 이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을 배제한다는 의미의 다극화된 국제질서를 주창하였다.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도 중국 중심의 거대 경제블록을 만든다는 의구심을 국제사회에서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상 변경을 억지한다는 미국의 안보전략상 이러한 중국의 행보는 안보적 위협이다. 따라서 아시아에서 미국은 동맹의 목표와 범위를 북한을 넘어 중국으로까지 확대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중국의 산업 경쟁력은 거의 전 분야에서 한국과 미국의 산업을 대체할 수준으로까지 성장하였다. 미래 산업을 중국에게 내 줄 수 없는 미국은 중국으로 향하는 첨단 부품 및 기술의 주요 공급망을 조정하기 시작했고 동맹국에게도 공급망 조정에 참여하도록 촉구하였다. 이 흐름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시작하여 바이든 행정부를 거쳐 지금의 트럼프 2기 행정부까지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의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우리의 안미경중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 조건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볼 때, 2025년 8월 26일에 있었던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은 안미경중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음을 확인하는 정상회담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상회담 하루 전인 25일, 미국의 전략국제연구소(CSIS)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국이 이제 안미경중을 하기 어렵게 됐다는 입장을 피력하였고, 한미동맹도 한반도를 넘어 글로벌 차원으로 업그레이드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또한 정상회담 당일에는 미국이 조선 분야뿐 아니라 제조업 분야에서도 르네상스가 이뤄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도 함께하게 되길 기대한다고 언급하였다. 대통령을 동행해 미국에 따라간 우리 재계 총수들도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한국 기업들은 미국과 글로벌 시장을 함께 견인하며 제조업 르네상스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 1500억 달러의 대규모 대미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 방문 직전 일본에 들려 한일협력을 강조함으로써, 미국의 한미일 협력 구상에 발을 맞추어 주었고, 9월 3일 열리는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대통령이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하여, 이재명 정부가 중국으로 기울지도 모른다는 미국의 우려를 씻기 위해 노력했다.
현재 미국의 경제 상황은 국가부도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4년 기준 미국의 총 재정적자 규모는 34조 7천억 달러로 GDP의 120%를 넘었고, 부채 이자로만 1년에 약 1조 달러를 지불하고 있다. 즉 1년 부채 이자로만 한국 정부 예산의 두 배 이상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과 경쟁하는 미래산업에 지속적인 투자를 하기에도, 또 동맹국에게 안보우산을 계속 제공하기에도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또한 실제로 미국이 부도가 나면 세계 경제와 국제 안보는 대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따라서 비록 견디기 힘든 수준의 관세와 대미 투자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으나, 미국이 구축한 세계질서에서 부강한 국가가 된 대한민국은 가능한 한 미국의 부활을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지금의 중국은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상대하기가 버거운 민족주의 패권국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경제적인 비상 상태에서 비상한 조치들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산업적으로 보완관계에 있고, 안보 우산을 제공해 주는 상호의존적인 동맹국이다. 만약 미국이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대미 투자나 관세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면 우리도 강력 대응해야 하겠지만, 미국의 부활이 중국의 패권보다는 우리의 이익에 더 부합한다는 점에서 중국이 아닌 미국과 함께 우리의 미래를 설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