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호 2025년 9월] 오피니언 추억의창
말 없는 존재의 언어
박성수(수의06) 아이유동물메디컬센터 대표원장
말 없는 존재의 언어

박성수(수의06)
아이유동물메디컬센터 대표원장
사람은 아프면 운다. 하지만 개는, 말하지 못한다. 움찔거리는 다리, 어설픈 걸음, 보호자의 떨리는 눈빛. 나는 그 침묵을 읽는 사람이다. 수의사가 된 지 어느덧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생명을 만나며, 수술실과 진료실에서 보호자들의 눈물과 웃음을 함께 지켜봤다.
학교에 있을 때는 이야기가 달랐다. 끝나지 않는 강의와 실습, 논문과 병원 업무로 몸과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갔다. 잠은 늘 부족했고, 집중력은 흩어졌으며, 환축들이 내 앞에 있어도 그저 버겁게만 느껴졌다. 실수를 해도 내가 잘못했다는 자각보다는, 힘없이 누워 흐릿한 눈으로 나만 바라보던 아이들을 원망하곤 했다. 결국 교수님의 꾸지람 앞에서 기운이 빠져 있던 어느 저녁, 선배의 호출로 수의대를 나와 정문을 지나 무거운 발걸음으로 신림동의 허름한 호프집에 끌려갔다. 한 마리에 5천 원 하던 통닭과 500cc 맥주잔 앞에서, 선배는 없는 살림에도 나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경험을 나눠주었다. 그러한 지치고 힘든 시간들이 쌓이면서, 점차 환축을 바라보는 내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그때부터 나는 그들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그 침묵을 읽어내려 애쓰게 되었다.
이 일을 오래 할수록, 병 그 자체보다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게 된다. MRI, CT 영상보다 보호자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더 많은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동물의 고통은 말하지 못하지만, 그 곁을 지키는 사람의 표정과 간절함 속에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주 작은 몸짓이 큰 신호가 된다. 숨이 차오르는 호흡, 불편한 자세, 예전 같지 않은 행동 습관. 그 모든 것이 반려동물의 언어이며, 나는 그것을 읽어내는 일을 한다. 어떤 질병은 금세 나아가지만, 어떤 질병은 오랜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어떤 보호자는 끝까지 기다려주고, 어떤 반려동물은 묵묵히 견뎌낸다. 나는 그 곁에서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일러스트 김나은(디자인17) 그래픽 디자이너
“학창시절 나의 침묵을 읽어주던 선배처럼 나 역시 아픈 반려동물 주인들의 침묵을 읽어내려 노력한다”
얼마 전, 뒷다리를 거의 쓰지 못하던 작은 푸들이 보호자 품에 안겨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예후는 좋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보호자가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면, 우리 애도 괜찮아질 것 같아요.” 그 말에 담긴 무게를 느끼며,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실 안은 차갑고 긴장된 공기가 감돌았다. 작은 심장 박동이 모니터의 울림으로 전해졌고, 조심스레 진행한 수술의 순간순간이 손끝을 스쳤다. 두 달 뒤, 그 아이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다리는 여전히 약했고, 걸음은 더뎠지만 눈빛은 전혀 달라져 있었다. 보호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은 느리지만, 이제는 혼자 걷는 걸 제일 좋아해요.” 그 순간, 나는 어떤 위로의 말보다 한 걸음이 주는 희망의 무게를 다시 배웠다.
물론 모든 치료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수술은 기대만큼 회복을 보이지 못한다. 그럴 때면 기억을 정리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정말 도움이 되었을까?” 그러나 이내 답을 찾는다. 수의사의 역할은 단순히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동물과 보호자가 함께 견뎌낼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는 데 있다는 것을.
또 다른 작은 아이는 선천적 신경 손상으로 힘겹게 움직였다. 보호자는 매번 안쓰러운 마음에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조금만 더 버텨주면 좋겠어요.” 나는 아이의 상태를 판단하며, 조심스레 보호자와 시간을 더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했다. 그 과정에서, 단순한 치료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다시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매일 병원 문을 열고, 스크럽복으로 갈아입는다.오늘도 한 생명의 몸짓을 읽고, 보호자의 눈빛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마음을 쓴다. 수의사는 동물만 돌보는 직업이 아니다. 그 생명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함께 지탱하는 일이다. 나는 그 마음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하지 못한 고통이 조금씩 줄어드는 순간을 곁에서 함께 느끼고 싶다. 오늘도 나는 진료실에서 한 생명을 마주한다. 울지 않는 그 마음 앞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확인하며, 그 어린 학창 시절, 나의 침묵을 읽어주던 선배처럼 나 역시 침묵을 읽어내려 노력한다. 그리고 내일을 준비한다.

박성수(수의06)
아이유동물메디컬센터 대표원장
사람은 아프면 운다. 하지만 개는, 말하지 못한다. 움찔거리는 다리, 어설픈 걸음, 보호자의 떨리는 눈빛. 나는 그 침묵을 읽는 사람이다. 수의사가 된 지 어느덧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생명을 만나며, 수술실과 진료실에서 보호자들의 눈물과 웃음을 함께 지켜봤다.
학교에 있을 때는 이야기가 달랐다. 끝나지 않는 강의와 실습, 논문과 병원 업무로 몸과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갔다. 잠은 늘 부족했고, 집중력은 흩어졌으며, 환축들이 내 앞에 있어도 그저 버겁게만 느껴졌다. 실수를 해도 내가 잘못했다는 자각보다는, 힘없이 누워 흐릿한 눈으로 나만 바라보던 아이들을 원망하곤 했다. 결국 교수님의 꾸지람 앞에서 기운이 빠져 있던 어느 저녁, 선배의 호출로 수의대를 나와 정문을 지나 무거운 발걸음으로 신림동의 허름한 호프집에 끌려갔다. 한 마리에 5천 원 하던 통닭과 500cc 맥주잔 앞에서, 선배는 없는 살림에도 나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경험을 나눠주었다. 그러한 지치고 힘든 시간들이 쌓이면서, 점차 환축을 바라보는 내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그때부터 나는 그들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그 침묵을 읽어내려 애쓰게 되었다.
이 일을 오래 할수록, 병 그 자체보다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게 된다. MRI, CT 영상보다 보호자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더 많은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동물의 고통은 말하지 못하지만, 그 곁을 지키는 사람의 표정과 간절함 속에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주 작은 몸짓이 큰 신호가 된다. 숨이 차오르는 호흡, 불편한 자세, 예전 같지 않은 행동 습관. 그 모든 것이 반려동물의 언어이며, 나는 그것을 읽어내는 일을 한다. 어떤 질병은 금세 나아가지만, 어떤 질병은 오랜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어떤 보호자는 끝까지 기다려주고, 어떤 반려동물은 묵묵히 견뎌낸다. 나는 그 곁에서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일러스트 김나은(디자인17) 그래픽 디자이너
“학창시절 나의 침묵을 읽어주던 선배처럼 나 역시 아픈 반려동물 주인들의 침묵을 읽어내려 노력한다”
얼마 전, 뒷다리를 거의 쓰지 못하던 작은 푸들이 보호자 품에 안겨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예후는 좋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보호자가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면, 우리 애도 괜찮아질 것 같아요.” 그 말에 담긴 무게를 느끼며,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실 안은 차갑고 긴장된 공기가 감돌았다. 작은 심장 박동이 모니터의 울림으로 전해졌고, 조심스레 진행한 수술의 순간순간이 손끝을 스쳤다. 두 달 뒤, 그 아이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다리는 여전히 약했고, 걸음은 더뎠지만 눈빛은 전혀 달라져 있었다. 보호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은 느리지만, 이제는 혼자 걷는 걸 제일 좋아해요.” 그 순간, 나는 어떤 위로의 말보다 한 걸음이 주는 희망의 무게를 다시 배웠다.
물론 모든 치료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수술은 기대만큼 회복을 보이지 못한다. 그럴 때면 기억을 정리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정말 도움이 되었을까?” 그러나 이내 답을 찾는다. 수의사의 역할은 단순히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동물과 보호자가 함께 견뎌낼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는 데 있다는 것을.
또 다른 작은 아이는 선천적 신경 손상으로 힘겹게 움직였다. 보호자는 매번 안쓰러운 마음에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조금만 더 버텨주면 좋겠어요.” 나는 아이의 상태를 판단하며, 조심스레 보호자와 시간을 더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했다. 그 과정에서, 단순한 치료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다시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매일 병원 문을 열고, 스크럽복으로 갈아입는다.오늘도 한 생명의 몸짓을 읽고, 보호자의 눈빛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마음을 쓴다. 수의사는 동물만 돌보는 직업이 아니다. 그 생명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함께 지탱하는 일이다. 나는 그 마음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하지 못한 고통이 조금씩 줄어드는 순간을 곁에서 함께 느끼고 싶다. 오늘도 나는 진료실에서 한 생명을 마주한다. 울지 않는 그 마음 앞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확인하며, 그 어린 학창 시절, 나의 침묵을 읽어주던 선배처럼 나 역시 침묵을 읽어내려 노력한다. 그리고 내일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