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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0호 2025년 9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가을에 새끼와 떠나는 ‘봄 뻐꾸기’ 

세계적인 철새도래지 곳곳에,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길  
가을에 새끼와 떠나는 ‘봄 뻐꾸기’ 
에세이


신현웅
(지리64)
웅진재단 이사장
전 문체부 차관

세계적인 철새도래지 곳곳에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길  

새를 좋아해 평생 새를 연구하고 탐조(探鳥)하는 멋진 삶을 산 윤무부 ‘새 박사님’이 지난달 15일 세상을 떠났다. 윤 박사는 생전 한 방송 인터뷰에서 “새는 환경의 바로미터”라며 “새가 먹을 수 있는 물은 사람도 먹고 새가 먹을 수 없으면 사람도 못 먹는다”고 새를 통해 친환경 메시지를 남겼다.
지난 5월 영화 ‘청명과 곡우 사이’를 촬영 중인 배우 박정자씨의 생전 장례식에 초대받아 강릉 선교장에 머물 때다. 장대 같은 봄비가 쏟아진 밤을 지새우고 동이 틀 무렵 뒷동산에서 뻐꾸기의 애잔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올해 첫 뻐꾸기 노래에 너무 반가워 뒷동산에 올랐으나 뻐꾸기는 눈에 띄지 않았다. 초여름에는 강원도 숲길과 헤이리 노을동산을 산책하며 테너 뻐꾸기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노래를 즐겼다. 그 여운이 마음에 남아 내내 행복했다.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는 뻐꾸기의 ‘뻐꾹 뻐꾹’ 소리는 2음절 3박자로 완전4도(c~f) 음악이라고 했다. 어린이 동요 ‘뻐꾸기’와 김건모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우리에게 친숙한 뻐꾸기 노래지만 요나손의 ‘뻐꾸기 왈츠’를 비롯해 베토벤, 슈만, 말러 등 유럽 작곡가들도 뻐꾸기 소리를 아름다운 선율로 표현했다. 뻐꾸기는 봄을 알리는 전령이자 사랑과 기다림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뻐꾸기는 봄에 먼 대륙 아프리카에서 1만여 km를 날아 태어난 고향 한국을 찾아온 진객이라고 한다. 아프리카의 최고봉 킬리만자로산의 정기와 세계 3대 폭포 빅토리아호수의 웅혼한 기상을 품고 탄자니아, 케냐, 모잠비크에서 50여 일간 날아온 여름 철새다. 수만 년 동안 내비게이터도 없이 지구를 반 바퀴 돌아 한국을 찾아온 뻐꾸기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며 자연의 타우마제인(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DNA에 새겨진 이동 정보, 태양과 북극성을 이용한 항법장치와 지구의 자기장 감각을 결합해 부모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한국에서 아프리카까지 먼 길을 찾아간다고 한다.



뻐꾸기 울음소리는 수컷이 암컷에게 구애하는 노래이고 갓 태어난 새끼에게 부모 확인 교육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기르는 탁란으로 ‘얌체 새’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탁란하는 뻐꾸기는 25%에 불과하고, 이는 긴 여행에 지친 새의 에너지를 아끼는 생존전략이라고 한다. 뻐꾸기는 가을을 남기고 한국에서 낳은 새끼와 함께 따듯한 나라 아프리카로 70여 일 간의 긴 여행을 떠난다. 오묘한 자연의 섭리다. 뻐꾸기여, 봄이 오면 다시 오라 부탁하노라 !
우리나라는 텃새뿐 아니라 여름 철새와 겨울 철새의 도래지가 많아 탐조하기 좋은 탐조 천국이라 할 수 있다. 한강 밤섬, 강화 화도면, 파주 탄현면, 철원 평야, 속초 영랑호, 서산 천수만, 금강 하구, 순천만, 창녕 우포늪, 주남 저수지, 낙동강 을숙도는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다.
1차 세계대전 기간 중 10여 년간 영국의 대외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영국 외무장관 에드워드 그레이는 전쟁 중에도 탐조를 즐기며 여유를 갖고 큰 정치 외교를 하였다고 한다. 
최근 여야 지도자가 서로 악수도 하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나란히 행사에 참석한 삭막한 광경을 지켜보며 젊은 세대가 보고 배울까 마음이 무겁다. 우리 정치인들도 삶, 우주, 자연에 대한 철학적 관심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자연의 소리도 향유하며 상생의 정치를 펼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새와 함께 반평생을 살다 보니까 마음이 너무 편안하고 새만 보면 세상의 꿈이 다 이루어지는 것 같다”는 윤 박사의 말씀처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