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호 2025년 9월] 문화 나의 취미
“가죽 공예 작품 만들고 팔아 기부합니다”
남은 자투리 가죽 활용해 열쇠고리 카드지갑 등 제작
“가죽 공예 작품 만들고 팔아 기부합니다”
이진희 (국민윤리교육84)
진해 세화여고 교장

자연을 벗 삼아 공예에 집중하는 이진희 동문.
남은 자투리 가죽 활용해
열쇠고리 카드지갑 등 제작
작은 가죽 조각이 모여 하나의 작품이 된다. 이진희(국민윤리교육84) 교장이 선보이는 지갑, 열쇠고리, 카드지갑은 모두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들어 쓰기 위해 시작한 가죽공예는 남은 자투리 가죽을 활용한 점묘 기법 작품으로 발전했고, 전시와 기부로까지 이어졌다. 지난 8월 25일, 안성 한겨레중고등학교에서 교장 퇴임식을 마친 그는 차분한 마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작품을 만드는 그의 방식은 생활 속 태도와 다르지 않다. “작품을 만들다 보면 버리는 게 거의 없습니다. 있는 것을 살려 쓰는 게 제 방식이에요.” 검소한 생활 습관이 가죽공예에 녹아들었고, 단순한 취미에 머물지 않고 작품 판매 수익을 학생 장학금과 기부로 이어가며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작은 손길이 모여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그는 4년 동안 안성 한겨레중고등학교 교장으로 봉직했다. 이 학교는 전국 유일의 탈북 청소년 대안교육 특성화학교다. 그는 학생별 수준에 맞춘 한국어 교육과 기초학력 강화, 방학 중 한국어 캠프, 그리고 정서적 안정과 사회화를 돕는 멘토링 프로그램 등 다양한 맞춤형 지원을 도입했다. 탈북 청소년들이 한국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그는 특유의 추진력과 따뜻한 마음으로 교사들과 협력하며 길을 열었다. “아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명이었습니다.”
그의 리더십은 따뜻함과 동시에 실행력이 있었다. 학생별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기숙형 생활에서 오는 문화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정서 지원도 강화했다. 작은 제안도 곧바로 실행으로 옮기는 그의 추진력은 교사들을 움직였고, 그 결과 학생들의 성취도와 자존감이 함께 성장하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누구보다 바쁘게 뛰었지만, 그는 늘 자신보다 아이들을 먼저 생각했고, 그 과정에서 ‘검소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안성에서 임기를 마친 후에도 그의 발걸음은 이어졌다. 나이 예순에 접어든 그는 곧바로 경남 진해 세화여고의 공모 교장직에 도전했다. 많은 이들이 안정을 택할 시기에도 그는 또 다른 교육 현장으로 과감히 몸을 던졌다. “지방 학교는 특히 혁신이 절실합니다. 그 과정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교육에 대한 열정과 멈추지 않는 도전 정신은 그의 가장 큰 에너지였다. 새로운 환경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변화가 필요하다면 앞장서는 성격 덕분에 늘 그는 현장의 리더였다.

버려질 자투리 가죽으로 만든 점묘화 작품.
그의 공헌 철학은 교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실습지에서, 한 학생이 그를 집으로 초대했다. 아이의 집은 흙바닥이 드러난 좁은 방이었다. 공부하고 싶어도 학비가 없어 늘 힘겨워하던 그 학생의 사정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마음속에 오래 남을 울림이 생겼다. “그 친구에게 뭔가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제 안에 깊이 남았습니다. 교사가 된 후 첫 월급을 받자마자 그 학생을 떠올렸습니다. 이후 몇 년 동안 매달 꾸준히 지원한 것이 제 첫 기부였습니다.”
그때의 경험은 그의 평생을 관통하는 원칙이 됐다. 그는 교직 생활 30여 년 동안 약 1억 5000만원을 학생 장학금으로 지원했다. “교사로서 받은 월급 일부를 떼어내 학생들에게 나눴습니다. 그게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때 가장 보람을 느꼈습니다.” 단발성 지원으로 끝나지 않았다.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떠나기 전 꼭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찾아 몇 년간 꾸준히 후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보여주기식 공헌이 아니라, 실제로 손길이 필요한 학생을 정해 긴 호흡으로 도운 것이다. 검소하게 살며 모은 자원을 다시 사회로 흘려보내는 선한 마음은 교직 생활 내내 이어졌다.
이 같은 철학은 취미에서도 이어진다. 가죽공예 작품 판매 수익을 장학금으로 연결하고, 전시회를 통해 나눔을 확산한다. 작품을 만드는 순간마다 ‘있는 것을 최대한 살려 쓰자’는 태도는 곧 교육 철학으로 확장된다. 버려지는 조각 하나 없이 완성하는 작품처럼, 그는 교육에서도 한 명의 학생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세화여고 교장으로서의 새로운 임기를 시작하는 지금, 그의 마음가짐은 분명하다. “세화여고는 저에게 새로운 무대입니다. 학생들과 함께 변화를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교육의 선순환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작은 가죽 조각이 작품이 되고, 작은 장학금이 학생의 미래를 바꾸듯, 그는 앞으로도 교육과 공헌의 길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는 향후 전시도 준비하고 있다. 점묘 기법으로 만든 작품을 선보이고, 판매 수익은 장학금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 다시 나눔으로 돌아가는 단순하고 분명한 길을 그는 계속 걸어가고 있다. 송해수 기자
이진희 (국민윤리교육84)
진해 세화여고 교장

자연을 벗 삼아 공예에 집중하는 이진희 동문.
남은 자투리 가죽 활용해
열쇠고리 카드지갑 등 제작
작은 가죽 조각이 모여 하나의 작품이 된다. 이진희(국민윤리교육84) 교장이 선보이는 지갑, 열쇠고리, 카드지갑은 모두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들어 쓰기 위해 시작한 가죽공예는 남은 자투리 가죽을 활용한 점묘 기법 작품으로 발전했고, 전시와 기부로까지 이어졌다. 지난 8월 25일, 안성 한겨레중고등학교에서 교장 퇴임식을 마친 그는 차분한 마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작품을 만드는 그의 방식은 생활 속 태도와 다르지 않다. “작품을 만들다 보면 버리는 게 거의 없습니다. 있는 것을 살려 쓰는 게 제 방식이에요.” 검소한 생활 습관이 가죽공예에 녹아들었고, 단순한 취미에 머물지 않고 작품 판매 수익을 학생 장학금과 기부로 이어가며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작은 손길이 모여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그는 4년 동안 안성 한겨레중고등학교 교장으로 봉직했다. 이 학교는 전국 유일의 탈북 청소년 대안교육 특성화학교다. 그는 학생별 수준에 맞춘 한국어 교육과 기초학력 강화, 방학 중 한국어 캠프, 그리고 정서적 안정과 사회화를 돕는 멘토링 프로그램 등 다양한 맞춤형 지원을 도입했다. 탈북 청소년들이 한국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그는 특유의 추진력과 따뜻한 마음으로 교사들과 협력하며 길을 열었다. “아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명이었습니다.”
그의 리더십은 따뜻함과 동시에 실행력이 있었다. 학생별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기숙형 생활에서 오는 문화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정서 지원도 강화했다. 작은 제안도 곧바로 실행으로 옮기는 그의 추진력은 교사들을 움직였고, 그 결과 학생들의 성취도와 자존감이 함께 성장하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누구보다 바쁘게 뛰었지만, 그는 늘 자신보다 아이들을 먼저 생각했고, 그 과정에서 ‘검소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안성에서 임기를 마친 후에도 그의 발걸음은 이어졌다. 나이 예순에 접어든 그는 곧바로 경남 진해 세화여고의 공모 교장직에 도전했다. 많은 이들이 안정을 택할 시기에도 그는 또 다른 교육 현장으로 과감히 몸을 던졌다. “지방 학교는 특히 혁신이 절실합니다. 그 과정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교육에 대한 열정과 멈추지 않는 도전 정신은 그의 가장 큰 에너지였다. 새로운 환경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변화가 필요하다면 앞장서는 성격 덕분에 늘 그는 현장의 리더였다.

버려질 자투리 가죽으로 만든 점묘화 작품.
그의 공헌 철학은 교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실습지에서, 한 학생이 그를 집으로 초대했다. 아이의 집은 흙바닥이 드러난 좁은 방이었다. 공부하고 싶어도 학비가 없어 늘 힘겨워하던 그 학생의 사정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마음속에 오래 남을 울림이 생겼다. “그 친구에게 뭔가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제 안에 깊이 남았습니다. 교사가 된 후 첫 월급을 받자마자 그 학생을 떠올렸습니다. 이후 몇 년 동안 매달 꾸준히 지원한 것이 제 첫 기부였습니다.”
그때의 경험은 그의 평생을 관통하는 원칙이 됐다. 그는 교직 생활 30여 년 동안 약 1억 5000만원을 학생 장학금으로 지원했다. “교사로서 받은 월급 일부를 떼어내 학생들에게 나눴습니다. 그게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때 가장 보람을 느꼈습니다.” 단발성 지원으로 끝나지 않았다.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떠나기 전 꼭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찾아 몇 년간 꾸준히 후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보여주기식 공헌이 아니라, 실제로 손길이 필요한 학생을 정해 긴 호흡으로 도운 것이다. 검소하게 살며 모은 자원을 다시 사회로 흘려보내는 선한 마음은 교직 생활 내내 이어졌다.
이 같은 철학은 취미에서도 이어진다. 가죽공예 작품 판매 수익을 장학금으로 연결하고, 전시회를 통해 나눔을 확산한다. 작품을 만드는 순간마다 ‘있는 것을 최대한 살려 쓰자’는 태도는 곧 교육 철학으로 확장된다. 버려지는 조각 하나 없이 완성하는 작품처럼, 그는 교육에서도 한 명의 학생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세화여고 교장으로서의 새로운 임기를 시작하는 지금, 그의 마음가짐은 분명하다. “세화여고는 저에게 새로운 무대입니다. 학생들과 함께 변화를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교육의 선순환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작은 가죽 조각이 작품이 되고, 작은 장학금이 학생의 미래를 바꾸듯, 그는 앞으로도 교육과 공헌의 길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는 향후 전시도 준비하고 있다. 점묘 기법으로 만든 작품을 선보이고, 판매 수익은 장학금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 다시 나눔으로 돌아가는 단순하고 분명한 길을 그는 계속 걸어가고 있다. 송해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