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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0호 2025년 9월] 뉴스 본회소식

“중국 약진, 두려움 아닌 교훈… AI시대 교육·제도 국가전략 세워야”

화웨이 연구단지, 미리 온 미래 중국 현장 탐방, AI 혁명 전율
“중국 약진, 두려움 아닌 교훈… AI시대 교육·제도 국가전략 세워야”
총동창회 조찬포럼


오세정 (물리71)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
전 서울대 총장

화웨이 연구단지, 미리 온 미래
중국 현장 탐방, AI 혁명 전율

9월 4일 오전, 더프라자호텔 그랜드볼룸. ‘중국 AI 현장 탐방기’를 주제로 오세정(물리71) 전 서울대 총장의 강연이 열린 조찬포럼은 사전 신청에 200여 명이 몰려 조기 마감됐다. 행사장에는 자리를 가득 메운 동문들로 열기가 넘쳤고, 김종섭(사회사업66) 총동창회장, 유홍림(정치80) 총장, 손경식(법학57) CJ 회장, 조완규(생물48) 전 총장, 서병륜(농공69) 관악경제인회장, 김덕길(건축66) 일본총동창회장 등 주요 인사들도 참석해 무게감을 더했다.
과학자이자 정책가로서, 그리고 서울대 총장을 지낸 경험을 가진 오 전 총장은 올여름 상하이와 항저우의 AI 산업단지와 대학을 직접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AI 시대 한국의 길을 짚어냈다.
오 전 총장은 AI가 이제 단순 작업뿐 아니라 인간의 두뇌까지 대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회계·의학·교육 등 지적 노동이 빠르게 영향을 받는 만큼 “새로운 직업에 대비한 재교육과 교육 개혁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강연의 핵심은 ‘중국의 발전된 현장’이었다. 오 전 총장은 “중국은 더 이상 값싼 공장이 아니라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나라가 됐다”고 단언했다. 그는 먼저 최근 세계를 놀라게 한 ‘딥시크(DeepSeek)’를 언급했다. 중국 연구진이 미국 대비 1/10 비용으로 챗GPT급 성능을 구현하며 “아이디어와 속도의 싸움”임을 보여준 사례였다. 이어 음성인식·교육용 AI의 아이플라이텍, 안면인식의 센스타임, 뇌-기계 인터페이스의 브레인코, 사족보행 로봇의 딥로보틱스를 소개했다. 브레인코의 의수·의족은 “피아노 연주와 글씨 쓰기까지 가능할 정도로 정교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 기업들도 기술은 따라잡을 수 있지만 규제 장벽 때문에 상용화 속도에서 밀린다”는 현장 평가를 전했다.
오 전 총장이 꼽은 또 다른 충격은 화웨이의 상하이 연구단지였다. 여의도의 절반 규모 부지에 2만 4천 명이 근무하며, 연간 35조원을 연구개발에 쏟아붓는다. 그중 3분의 1은 기초과학에 투자되는데, 이는 한국 전체 기초과학 예산의 4배를 넘는다. “중국은 당장의 성과보다 기초 연구에 과감히 투자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도 소개됐다. 2017년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계획’을 발표한 뒤 2025년까지 미국과 대등, 2030년까지 세계 선두를 목표로 삼았다. 칭화대, 저장대 같은 대학은 이미 세계 최상위권 연구력을 보유하고 있다. “정부가 초기 창업과 연구를 과감히 지원하는 방식이 중국식 발전 모델의 핵심”이라는 설명이었다.


상하이 화웨이 연구소 단지 모습.

오 전 총장은 중국의 도전이 AI에만 그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철강·석유화학·조선 등 우리 제조업 대부분이 중국의 위협을 받고 있다. 과거 ‘대륙의 실수’로 치부하던 제품이 이제는 ‘대륙의 실력’으로 다가왔다.” 반도체처럼 한국이 가까스로 격차를 유지하는 분야도 있지만, 주도권을 잃는 순간 세계 경제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경고였다.
그는 “제조업 경쟁력은 결국 R&D 인력에서 나온다”고 강조하며 과거 LCD 산업 사례를 들었다. 90년대 후반 한국 기업들이 일본을 추월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 기술자들의 노령화에 비해 한국은 젊고 패기있는 연구개발 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을 위험이 크다는 우려를 전했다.
그는 한국의 이공계 기반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첫째, 인구 감소로 머지않아 이공계 대학원 정원조차 채우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둘째, 의대 쏠림 현상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 셋째, 좋은 일자리 부족으로 10년간 해외로 유출된 이공계 석·박사가 9만 6천 명에 이른다는 통계를 들며 심각성을 짚었다. 오 전 총장은 “서울대가 AI연구소를 준비하던 시절,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인 과학자 50여 명을 만나 귀국을 권유했지만 단 한 명만이 관심을 보였다”며 “연봉과 연구 자율성, 정책 예측 가능성에서 한국은 여전히 매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성과 보상과 자유로운 연구 환경, 장기적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범국가적 종합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연 후 이어진 질의응답은 김종섭 총동창회장이 “중국 연구자들은 몰입 근무가 가능하지만, 한국은 주 52시간 제도로 연구 유연성이 떨어진다”며 제도 보완 필요성을 언급하며 시작됐다. 김덕길 재일동창회장은 “중국은 5년 근무하면 아파트를 제공하는 등 국가 차원의 보상이 파격적이다. 한국도 변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지적했다. 오 전 총장은 “시장 자본주의만 고집할 게 아니라 도입기에는 국가가 과감히 지원하는 모델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전 총장은 마무리 발언에서 “90년대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은 것은 디지털 전환기를 과감히 활용했기 때문”이라며 “지금 중국은 AI 전환기를 활용해 우리를 추월하려 하고 있다. 자만하지 말고 도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중국의 약진을 두려움이 아니라 교훈으로 삼아, AI 시대 한국의 교육·제도·국가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해수 기자